비워야 채우지
한 달 여간의 연락,
5번의 만남.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지만 서로 격하게 좋아했기에 여느 연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정식으로 만나보자라고 말은 했지만,
이 마저도 확신이 필요하다는 나의 말 때문에 뱉은 말 같았고
만나면 만날수록 첩첩산중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결혼을 생각했을 때 우려되는 것,
혹은 걱정되는 것이 단 두 가지라고.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하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았다.
연애를 해도 나만 힘들어질 것이 뻔히 보였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그는 말했다.
이런 남자를 만나도 될지 너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같이 생각해 보고 주말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직전, 우리는 카페 데이트를 했었다.
그날의 데이트를 통해 나는 그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오픈하였고, 눈썰미가 좋은 나는 그 외의 것들도 눈에 담아 두었다.
요즘은 사람 믿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 스스로 알아봐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다행히도 이 사람이 열심히 살았던 탓인지 여기저기 발자국을 많이 남겨놓았고, 난 그 발자국을 따라가며 방대한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 그의 카톡은 점점 보고성 메시지와 사진으로 바뀌었고,
무언가 의무적으로 연락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는 일하는 중에도 노력한 거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물론 연락도 연락이지만, 스스로 알아낸 정보들 덕분에 나도 마음이 식어갔다. 애초에 좋은 남자가 아님을 인지했지만, 잘생긴 외모와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다정함, 나를 예뻐해 주는 모습이 그를 끊을 수 없게 만들었었다.
그래서 연락을 그만하고 싶다가도 마음이 약해져 전화를 걸게 되었고, 그는 나와 한 시간 반동안 연인처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또 하루 뒤,
카톡을 쭉 보니 이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보고였다.
기분이 상한 나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그래 푹 쉬어~' 'ㅎㅎㅎ' 등으로 대충 답을 하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 보냈다.
"오빠는 내가 안 궁금한가 봐ㅠ"
이 카톡을 끝으로 그는 나의 모든 카톡을 안읽씹 하고
수 번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잠수이별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진짜 넌 천운이야. 사귀었음 어쩔뻔했어"
"똥 밟았다 생각해. 마음은 아프겠지만 빨리 털어내야지 너도 애초에 엄청 좋아한 것도 아니었잖아"
"힘들어도 잊어야지 어쩌겠어."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멘탈 회복이 필요하다.
엊그제 벌어진 이 사건으로 인해 2024년도에 만났던 남자친구 이야기를 도저히 이어갈 수가 없었다.
쉼이 필요하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