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결혼을 결심한 이들에게 존경을.

정말, 사랑이 전부일까?

by 구름빛

9월 연휴,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남자친구에게 대하를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늦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유난히 도착한 그에게 심술을 냈다. 한 시간 반이나 늦었는데, 부모님을 어디엔가 모셔다드리고 와야 한다는 이유도 갑작스러웠다. 그래도 가을날이 좋았고, 한가로운 추석 덕분에 마음이 붕 떠 막상 얼굴을 보고는 즐겁게 대하를 먹었다. 지는 해를 보며 툭툭 튀는 새우에 놀라기도 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고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타자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횡설수설하다가 말을 더듬고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결혼하면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나랑 계속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어?”


대하 잘 먹어 놓고 이게 무슨 소리람. 나랑 결혼하기가 싫다는 건가. 아니 애초에 결혼하자는 말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왜? 나랑 결혼하기가 싫어? 곧 있으면 사십인데 내가 별 생각 없이 오빠랑 연애하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결혼을 선택하면 무를 수 없으니까 그렇지.”


나이 먹어서 연애하는 것의 장점이라면 이런 것이다. 대하를 먹고 차에 올라타서 갑자기 주는 가방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 트렁크에 꽃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고 아이패드에 담긴 영상도 없었다. 하다못해 나와 결혼해줄래? 와 같은 멘트도 없었지만 나는 그 순간 울컥했다. 그러고 보니 주섬주섬 큰 쇼핑백에 담긴(브랜드 이름이 떡하니 찍힌) 가방을 내민 그는 대하를 먹으러 오는 길에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정말 나랑 결혼해도 괜찮겠어?”


계속되는 그의 질문에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건가 불안하기도 했고, 평소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가 30대 후반이고 40대 초반이기 때문이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갑작스런 그의 프로포즈가 당황스러웠고, 감동스러웠다. 그는 생각보다 우리의 만남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기에. 그래서 나의 최종 답변은 이랬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야."


결혼을 결심할 만큼 사람이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의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그는 가방을 주면서 말했다.


"환불과 교환은 일주일이래. 근데 이거 받고 나서 환불하면 결혼도 안되는거야."


그는 태어나서 명품을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시댁 식구들도 그렇고. 그런 그가 처음으로 명품 가방을 들고 나타나선 우리의 평생을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오늘 약속에 늦은 것도 웨이팅 때문이었다. 가방을 사기 위해 3시간 반이라 대기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약속에 한 시간 반이나 늦었던 것이다. 남자 혼자 백화점에서 세시간 반을 보냈을 걸 생각하니 그 마음에 큰 점수를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가방에 익숙해졌고, 나는 여전히 그의 경제력 나의 미래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가 커 갈 세상에 대해 고민스럽다. 기후 위기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이를 낳아도 되는지, 이 나이에도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내가 그 보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직장 생활을 더 해야 하는데 내 삶을 담보 잡히는 것은 아닌지. 사랑과 무관하게 그런 고민들이 영화 장면처럼 쓱 지나간다. 프로포즈의 달콤함은 2주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왜 자꾸 질문을 던졌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보다 한층 성숙한 그는 우리의 결혼이 나의 후회로 이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그 물건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진심을 보이는 방법이었다.


결혼이란 그런 것이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을 굳이 생각하게 될 만큼 삶을 뒤흔들어 놓는 일. 그 무게는 20대나 30대나 40대나 똑같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먹을수록 더 무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변화가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즐겼을 법한 도전이 이제는 버겁다. 결혼도 마찬가지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큰 도전을 해도 되는지 매 순간 걱정스럽다.


오늘 20대 초반부터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이야기했다. 그래도 역시, "사람이 중요해!" 라고. 아이를 낳게 되면 견뎌야 하는 수많은 불합리함과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경쟁심,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하려면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결혼을 한 유부들이 싱글의 마음을 모르듯, 나 역시도 결혼한 그들의 마음을 반도 몰랐다. 이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한 결정이었을 줄이야. 프로포즈를 받으면 마냥 행복해서 눈물 흘릴 줄 알았는데 눈물의 여러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을 자켓을 지르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의 결심, 반려자를 결정한다는 마음의 무게를 느끼면서.




프로포즈(반지).jpg 프로포즈 때 반지는 못받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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