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다시 '사랑'을 쓰다.

소란스러운 남편의 다정함에 대하여

by 구름빛

나는 시끄러움을 사랑하는 조용한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서고 주목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서정적인 음악을 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시간이 내겐 오래된 습관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이 조용함을 흔드는 사람이 있다. 일요일 아침, 식탁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안방 문이 벌컥 열리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 있어? OO이 어디 갔니.”


그는 소리가 많은 사람이다. 집 안에서도 나를 찾고, 자고 일어나면 부스럭거리며 화장실까지 샅샅이 수색한다. 문고리를 살짝 돌리며 킁킁대는 모습이 꼭 주인을 찾는 강아지 같다. 그의 이런 소란스러움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우리 집의 배경음이 되었다.


나는 그 소리가 좋다. 문을 여닫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설거지하는 나를 향해 흘리는 말들. ‘아, 지금도 여전히 같이 살고 있구나’ 하고 안심한다. 어떤 날엔 조심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놀라게 하려다가 본인이 낸 발소리에 들키기도 하고,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가 집을 울리기도 한다. 그는 참 산만하고 시끄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소란이 나를 따뜻하게 감싼다.


우리는 이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결혼은 현실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내 집 마련, 재정 계획, 시댁 지원 여부 같은 단어들이 일상 대화에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그런 문제들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마음 한쪽이 기운다. 결혼을 고민하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돈이 많으면 싸울 일이 없다”, “부족하면 서로를 할퀸다”, “걸리는 게 있으면 그만두는 게 낫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흔들렸다.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너나 나나 남자 경제력 보라고 배우지 않았잖아. 우린 사람을 보라고 배웠잖아. 그게 이번 생의 업보야.”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스물다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벌써 15년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천생연분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재산을 쌓아 올리며, 한 계단 한 계단 함께 걸어가는 동안 끈끈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인스타툰 작가의 글귀도 떠올랐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고, 그것을 평생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이 남자를 감정적으로 사랑한다고 여겨왔지만, 정작 결단을 내리는 일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미 나의 부족함을 알고도 감싸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이었다. 시끄럽고 산만한 그의 모습 뒤에는 묵직한 다정함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스펙도, 풍족한 재산도 없지만 성실했고 따뜻했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데리러 나오는 사람이다. 시어머니는 감기 기운이 있는 나에게 모과차와 도라지청을 만들어 주시며 남편에게 “일하는 사람 힘들게 하면 안 된다”라고 당부하신다. 나는 어느새 이 소란스러운 가족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나는 작은 집에 사는 것에, 상급지에 살지 않는 것에 마음이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다. 내일 모레면 마흔이고, 일을 한지 십년도 넘었는데 사회 초년생처럼 이렇게 시작해도 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남겼다.

“부모님과 윤택하게 살다가 네가 나를 만나서 후회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이 돼. 하지만 나는 건강하고, 좋은 가정을 만들 자신은 있어. 우리 집은 윤택하지 않았고, 가난한 시절도 있었지만 나는 우리 집을 사랑했고 우리 가족이 좋거든."

그의 이 말에서, 이 사람은 상황이 변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오래도록 우리가 좋은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란 결심이 섰다. 그의 밝음과 건강한 마음은 재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이제 감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현실의 무게를 이기기 어렵다는 걸 아는 한편,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남편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해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 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시끄러움을 사랑하는 조용한 사람이다. 이제는 그 소란을 함께할 사람이 생겼다. 그 소란을 ‘우리의 배경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다시 사랑을 쓰기 시작한 방식이다.


최근에는 둘이 함께 나들이를 가

커피를 나란히 두고 도란 도란 이야기하는 순간이 행복하다.

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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