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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Feb 11. 2022

이것은 울타리가 아니야


제 방식대로 운영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제 결심입니다.

- 무레 요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북포레스트  



  


느티나무는 일주일 사이에 제법 무성해져 있었다. 한 나절 봄볕이 어느 정도인지 놀랍다고 생각하다가, 봄을 놓치지 않고 끌어내고 있는 나무들의 생장력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연둣빛 잎사귀들은 느티나무의 자태를 더욱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었다.

  

늠름한 에너지를 분출해내고 있는 느티나무를 에워싼 울타리를 한 바퀴 돌며 걸음 수를 세어보았다. 102 발자국이었다. 나무 앞에 서면 버릇처럼 하듯 질문을 던졌다.

 

 “느티나무 님, 울타리가 답답하지는 않습니까?”

 

 “허허, 자네가 보기엔 답답해 보이는가? 갇혀 있다고 생각하네그려. 나를 둘러쳐서 좀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괜찮다네.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울타리라 생각하지 않네. 내가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되지 않지. 뿌리를 내리거나 가지를 뻗고, 씨앗을 퍼트리는데 방해를 받지 않으니 말일세.”

  

“느티나무 님은 아키코와 많이 닮으셨네요.”

 

 “아키코? 그게 누군가?”

  

“네, 느티나무 님, 아키코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라는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랍니다. 그럼 저는 갈 길이 멀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무례하게도 나는 어르신 느티나무에게 저 말만 던져놓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키코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작스레 쓰러진 뒤 세상을 뜨고, 자신은 경리부로 발령받는다. 책 만드는 일이 좋아서 한 출판사에 오래 몸담고 있던 50대의 아키코는 경리부라면 다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엄마가 40년 넘게 꾸려온 식당을 리모델링해서 샌드위치 가게를 연다.

  

그걸 본 엄마 가게의 오랜 단골들은 충고한다. 가게 내부가 썰렁해서 따스함이 부족하다, 태도가 뻣뻣하다, 메뉴가 적다, 종업원이 더 예쁘장해야 손님들이 좋아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가 없어서 요리가 나올 때까지 무료하다, 술이 없다, 밤에 친구들과 무리 지어 놀지 못한다는 등등의 말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 놓고 ‘네 어머니 뜻을 물려받아야지. 너는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으니까 부모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거야.’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키코는 겉으로는 고맙다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엄마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식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운영 역시 엄마나 이웃의 가게와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 나갔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고, 정기 휴무도 가지고, 직원이 출근 못 하면 문을 닫았다. 사사건건 참견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웃 카페 사장님은 그런 것들이 몹시 못마땅하다. 식재료를 넉넉히 사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문을 닫지 말고 혼자서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는 둥의 말로 간섭한다.

  

아키코가 꼬마일 때부터 보아온 이들이니 혼자서 처음 가게를 시작하는 아키코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키코가 원하는 울타리가 아니었다.

  

아키코는 어떤 가게를 하고 싶은지 이미 많은 고민을 했다. 손님들이 산뜻한 공간을 즐길 수 있고, 좋은 재료로 만든 심플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가끔 점심을 먹으러 가고 싶은 가게를 만들고자 했다. 재료 공급처도 꼼꼼하게 알아보고 믿을 수 있는 재료로 맛있는 빵과 수프를 만들어 제공했다. 가격은 비싼 편이고 종류도 많지 않았지만 가게는 잘 되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웃들도 나중에는 오히려 아키코의 운영 방식을 따라 할 정도였다.




 

‘제 방식대로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제 결심입니다.’

  

신념에 따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아키코에게 이웃들의 조언과 충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울타리였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 안에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의 뿌리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뒤 원작 소설까지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어떻게 꾸려왔는지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사회의 통념이랄까, 깃발처럼 사방에서 흔들어 대는 문구들에 그대로 지배당해 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강하게 흔들어댄 것은 다름 아닌 ‘꿈을 가져라’였다. 되도록 크게 갖고, 치열하게 노력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임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꿈을 갖고 이루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며, 꿈이 없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것으로서 이처럼 강력한 것이 또 있었을까? 꿈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꿈이란 가장 든든하고 가치 있는 우리의 울타리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따라서 신영복 선생의 《담론》에서, ‘꿈이란 한 개를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몽매의 다른 이름’이라고 쓴 부분을 읽을 땐 놀람을 넘어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꿈’을 비판한 사람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울타리를 부정하고 있는 낯선 시선이었다. 선생은 꿈이 가진 뒷면을 이렇게 말했다.     


“꿈은 우리들로 하여금 곤고함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꿈은 발밑의 땅과 자기 자신의 현실에 눈멀게 합니다. 오늘에 쏟아야 할 노력을 모욕합니다. 나는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꿈의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오로지 꿈만을 좇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어르신이 어디 있었던가. 잘 들여다보면 선생도 꿈을 갖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신격화할 정도로 꿈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꿈을 위해 현재의 행복에 눈 가리고, 오늘 챙겨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꿈에 지배당하고 있는 일상을 구하기는커녕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이처럼 사회에서 몰고 가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유승도)  

   

상황버섯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하여 채취하러 다니다보니,

신이 나서 따던 다른 버섯들을 보아도 반갑지가 않다.     

산삼 몇 뿌리만 캐면 팔자를 고친다 하기에

산에 갈 때마다 산삼을 찾다보니,

산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돌멩이도 그 중 빼어난 것이 있다 하여

좋은 수석을 바라며 강변을 걷다보니,

나름대로 멋있던 돌들이 하나같이 병신이다.     

달빛 같은 사람이 보고 싶어 인간의 거리로 나서니,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유년시절 보았던 양귀비를 그리워하니,

눈앞에 피어나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림태주도 《그리움의 문장들》에서, “꿈에게 권능을 부여하지 마. 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꿈이 없어서 초라한 게 아니라 꿈이 너무 막강하고 화려해서 공허한 것인지도 몰라.”라면서 꿈꾸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재밌게 하다 보면 어느 날 가슴 뛰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 좋은 차를 가져야 한다, 더 넓은 집을 마련해야 한다, 등의 목표가 꿈으로 탈바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조차 부자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에서 최혜진이 말한, ‘꿈’을 ‘내 본성이 가치 있다고 의미 부여할 수 있는 행위’라고 재정의 한다면, ‘꿈’이 진정한 울타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치 있다는 것도 결국은 현실을 배제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 나이 되어서야 겨우 내 본성을 따르면서 내 방식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으니 삶이야말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키코와 함께 연둣빛이 넘실대는 상록오색길을 걸었더니, 살아 있음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 길이야말로 내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내 삶을 요리조리, 그러니까 내 방식대로 기획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내 삶보다 꿈이 거대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202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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