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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Feb 16. 2022

걸을 수 있을 때 걸어라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쓸 수 있을 때 써라.     




 ‘때로는 그냥 빈손으로 나서자’면서 상록오색길로 향했다. 실은 신간 본문 교정과 표지 시안까지 마치느라 문장을 준비할 틈이 없었다. 한편으론 일단락 지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걸어도 좋겠다 싶었다. 속에 들어 찬 것들을 길 위에 훨훨 쏟아 놓으며 걷는 것이 이 날의 콘셉트라면 콘셉트였다.




 느티나무는 더 색이 짙어지고 무성해져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돌면서 몸통을 보았다.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언덕에 있어 큰 바람이 닿을 것 같지도 않은데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을 보니 남모르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란 생각에 미쳤다.


큰 피해가 없는 지역이어서 이름마저 ‘안산’인 이곳에 발을 들인 후, 우리 가족이 눌러 산 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안 산다 한 산다 하면서 안 떠나는 곳이 안산’라는 말이 유명할 정도이다. 신혼 시절 인천에서 시댁인 수원으로 다니면서 보게 된 초록 풍경에 반해 이사하게 되었다. 이름처럼 그 긴 세월 동안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편안히 살고 있다. 그렇다 해도 느티나무가 지나온 400년이 넘는 시간이라면 어찌 힘든 날이 없었겠는가.




여전히 일찍 일어나기 어려워 늦게 나온 탓에 해는 중천에 있어 걸음을 재촉했다. 1코스는 그나마 그늘이 있는 편이지만 다른 코스에선 양산을 쓰고 다녀야 할 만큼 더웠다. 하지만 볕이 강하면 어떠랴. 걷는 내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자 귓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쓸 수 있을 때 (글을) 써라.     

  

‘그럼, 배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 농담처럼 이런 말도 들려왔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을 테니, 내게 물이 들어온 것이 맞다. 하지만 또 다르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에 미리 그물도 손질해 좋고, 꾸준히 근육도 키워놓고, 주변 정리도 잘해 놓고 있다가 물이 들어오면 망설이지 말고 배를 띄우라는 말이다. 이런 준비가 없다면 아무리 물이 들어와도 어찌 바다로 나갈 수 있겠는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조금 버거울 수 있는 15.2킬로미터의 상록 오색길을 걷기 위해선 평소에 열심히 걸어서 다리 근육도 키워놓고, 문장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집안에 할 일이 남아 있어도 길을 나설 수 없다.《한서 열전》에서 반고가 말했다는 ‘새가 날갯짓을 익히지 않으면 천 리를 날아갈 수 없고, 문안을 잘 단속하지 않으면 문 밖의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라는 그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 책을 많이 읽어서 감각과 문장력을 키우고, 무엇을 쓸지 사색과 상상을 멈추지 않아야 하며, 글감도 떨어지지 않게 늘 생각해 놓아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쓰려고 하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 글이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으라.’는 말은 지금도 실감하지만 앞으로 점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시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으실 때부터 무릎에 통증이 있어 신경통 약을 드셨다고 한다. 30년 넘게 약을 드시고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많이 안타깝다. 조금씩 운동하시라고 예전부터 말씀드렸지만 통증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고만 하셨다.


우리 몸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노화가 되기 때문에 관리하지 않으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건강할 것처럼 대한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건강할 때 열심히 걷고 싶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앉아 있을수록 걷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지극히 습관의 동물이다. 살아가면서 더욱 실감한다. 좋아하지 않은 것도 자주 하게 되면 몸이 알아서 하게 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멀리 하기 시작하면 점차 잊게 되고 녹이 슬어 버린다. 최근 집안에 있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날도 많아졌다.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거실 소파에 앉으면 자꾸만 리모컨을 들어 영화를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잠깐 보자고 한 것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날도 있다. 리모컨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게 만든 건 바로 나도 모르게 젖어든 습관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따라주어 쓸 수 있을 때 쓰지 않으면 한 문장 써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걷기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걸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두 가지가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용휴가 《탄만 집》에 썼다는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오늘이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잘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쓸 수 있을 때 쓰라는 말, 그러니까 미루지 않고 바로 하라는 말이겠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떨까? 시간적 여유 때문에 걸을 수 없거나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걷지를 못하거나 글 쓰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많이 슬플 것이다. 훗날의 일을 미리 끌어와서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누릴 수 있을 것이란 느긋함에 미루다가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용휴 말을 빌려 쓰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바로 해라.’이다.




그런 생각을 미리 당겨 와서 했기 때문에 아직은 튼튼한 다리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걸었다. 까짓 양산을 쓰고 걷는 것쯤이야 대수랴. 마음 안에 보름달이 빵빵하게 들어앉아 함께 걸었다. 가까이 있어 찾을 수 있는 상록오색길에게 힘차게 하이파이브라도 해 주고 싶은 날이었다.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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