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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Feb 21. 2019

인사과 좀 부탁드립니다.

취업 활동을 시작하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반년이 남은 시점.

아르바이트 하나만 고정적으로 남겨놓고, 본격적인 취업 활동에 돌입한다.


먼저 취업을 한 선배도, 심지어 같은 학교 출신의 친구조차 도쿄에 없다.

내가 갖고 있는 거라곤 동경 내 한인 커뮤니티, 검색과 취업 사이트 그리고 유일한 무기, 패기와 깡이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친구들과 재미 삼아 본 점에서 '너는 무인도에서도 살 사람'인데 무엇이 걱정이냐 되려 반문을 들었던 게 기억났다.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반년이나 남았다는 알 수 없는 긍정 에너지가 돋는다.


매일 지나던 동네 @도쿄 2010


'파견의 품격'이라면


그 여세를 몰아 신주쿠에 있는 파견 회사에 일단 등록하기로 한다.

일본은 여자 회사원들을 OL(Office lady)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중 보조 작업을 하는 업무는 상당수가 파견 회사 직원이다.


한때 리메이크작으로 히트친 김혜수 주연의 드라마 '직장의 신'의 원작 '파견의 품격'.

일본에서도 이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몰았던 만큼 일본 사회의 파견 제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취업 구조 중 하나이다.


물론 '계약직'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파견을 나간 회사와의 계약이 끝나면 다른 파견 나갈 회사를 소개해주는 시스템이니 내 실력이 온전한 이상, 늘 다음 고용이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파견의 품격처럼 정직원을 그만두고 파견 생활만 하는 분들도 계신다.


내 할 일만 잘하고, 내 실력을 부지런히 쌓아 시급을 높인다.

파견을 나간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이 끝나면 칼퇴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롭게 본인을 위해 쓴다.

파견의 품격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야말로 정직원 못지않은 파견 인재가 되는 거다.



물론 파견회사 소속이 된다 할지라도 비자를 받을 수는 없으니 나는 일단 파견으로라도 시작해보자.라는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한 셈이다.

운이 좋아 파견을 나간 회사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긍정의 힘은 언제나 내 편일 것이다.


그러나, 파견 회사 등록 면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신주쿠에 위치한 몇 군데 파견회사를 두드렸고 면접을 보는 곳 마다 결과는 '스미마셍'이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일단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한 경력이 없고 역시 비자가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유가 메인이었다.


패기로 들이민 지 한 달 만에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비자라는 관문에 부딪히자 마음이 급해진다.


일본 대학 졸업자가 아니다.
일본 사무 경력이 없다.
반년 뒤면 비자가 끊긴다.


이 세 가지의 핸디캡을 가지고서 두드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겨율, 비오는 교토 @2014


일본 취업 사이트에서 구인하는 '신입사원'은 일본 대학 졸업장을 가진 자를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일본은 취업 활동을 보통 대학 3학년부터 시작하여 졸업 전에 취업 자리를 구해 놓는 경우가 관례적이다. 이미 내 나이는 20대 중반, 신입 사원의 조건으로 미약한 것이 많았다.


그래, 일단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비자를 받고 경력을 쌓아 이직하자.

일본은 헤드 헌터의 활동이 활발 한만큼 전직 활동으로 몸 값을 올려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많다.

대기업만큼의 연봉과 복지가 지원되는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많은 나라다.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카페에 앉아 리스트를 작성했다.

내 핸디캡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일본 졸업장은 없지만 일어일문학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삼개국어를 한다.

 (한국의 스펙 만들기 대열에 껴서 일본 대기업에서 인정할 만한 토익 점수도 만들어 놓았다.)

-일본 사무 경력은 없지만 대졸 후 직장생활 경험과 오랜 사회생활로 인해 눈치를 잘 읽는다.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 이 간절함으로 열심히 일할 패기와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들 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각 기업 인사과 번호를 찾아 회사 이름 옆에 적어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20대라서 가능한 막무가내 정신이다.

그러나, 30대가 되어서도 프랑스에서 막무가내 정신을 발휘한 걸 보면 정말 나는 무인도에서도 살 사람인가 보다.


여름, 참 열심히 살았구나 @도쿄 2010


혹시 사람 구하시나요?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그까짓 거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거절당해도 당당하게 나가자.

생각보다 리스트 목록은 가득 채워졌으니 첫판부터 까여도 다음 후보지가 있으니 괜찮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번째 목록에 올라 있는 회사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회사..


지금은 구인을 하는 시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우리는 공채로만 받는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

등등의 이유로 리스트는 어느새 절반 이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좌절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프로페셔널한 건 면접장에서나 보여주고 지금은 간절함을 어필해야 한다.

비즈니스 영업 전화도 '네네' 하고 끊을 판인데 일자리 좀(비자도 주시면 좋고) 주십쇼. 하는 전화를 누가 반가워할까.

당연한 결과니 낙담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전화를 이어간다.

대학 때 홍보 동아리 하던 시절, 졸업 선배들에게 기부금 요청 전화를 돌리던 때의 노하우를 상기하며.


히비야센을 타고 면접 보러 가는 길 @도쿄 2010


몇 군데는 담당자 이메일 주소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합격한 것도 아닌데,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멘땅에 헤딩하여 얻은 기회라 전화기에 대고 인사를 꾸벅꾸벅했다.


그 여세를 몰아 한 통 더 이어간다.

한국 굴지 여행사의 도쿄 지사였다.

간단히 내 소개를 마친 뒤, 인사부 담당자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듯 잠시 멈칫하시더니 역시나 지금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앗, 이대로 끊기면 안 된다!!


'여름인데, 혹시 가이드 일손 모자라지 않으신가요? 인솔이든 뭐든 좋아요. 사람을 안 뽑으시면 아르바이트라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내 사정이 딱해 보였는지 혹은 이 깡은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는지,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본인의 회사 메일 주소를 건네주셨다.

이쪽으로 이력서를 보내면 자기가 인사부에 넘겨주겠다고.

그 뒤의 일은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그 여행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보낸 몇 통의 이력서 중 제일 먼저 온 연락이었다.



그날 그 시간에 전화를 받은 그 담당자가 나를 살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담당자는 간절해 보였던 내 부탁으로 오지랖을 피운 덕에 인사부 담당자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했다. 그러나 모른척 하기엔 본인도 워킹홀리데이로 시작한 유학이라 알 수 없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했다.


그리고, 이런 패기와 깡을 지닌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고도 했다.

그렇게, 그날의 전화 한 통으로 나의 첫번째 이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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