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남기고 '나'를 찾다

기록은 돌이킴이다

by 쓴쓴

흑역사


과거를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기억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썸' 타는 사람 앞에서 바보같이 행동이 생각날 때마다 '이불 킥'을 하는 존재의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존재에게 기록물은 '잠재적 폐기물'입니다. 우리는 종종 대화에 '흑역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역설적이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과거를 자주 회상하는 만큼이나 얼마나 과거를 지우려고 애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소싯적 내가 그랬었지


떳떳하게 회상할 수 있는 인물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아직 충분한 시간을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족할만한 아름다운 삶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자랑하기에 쓸만한 이야기를 곧 얻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인생을 사셨다고, 이 시대의 스승으로 칭송받는 분들의 삶과 저작은 자랑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기대와 다릅니다.


타계하신 후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신영복 선생, 김수환 추기경의 삶이 여기 있습니다. 그분들을 추모하는 글이 세상에 회자되는 까닭입니다. 누구나 바라지만 쉽게 시도하지 못한 '함께 살아가는 사회', 이러한 세상을 위해 살던 분들로 평가받습니다. 이제야 그 삶을 알았다는 게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을 동경하지 못하는 나를 제쳐두고서라도, 매일 생산해내는 흑역사에 일일이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어 더 민망할지도 모릅니다.


개인 역사책


불행 중 다행일지 모르지만, 민망한 삶들과 그분들의 삶에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자랑할만한 사람이든 아니든 의도치 않게 기록물을 남긴다는 사실입니다. 책상 정리 도중에 발견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친한 친구하고만 공유했던 부끄러운 이야기들, 미니홈피에 남긴 낯간지러운 사진들부터 SNS의 최근 기록까지 우리의 과거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은 없어도 각자만의 역사를 가진 셈입니다.


기록은 과거의 나를 보게 해줍니다. 관심 있는 사람의 카톡 상태 메시지만 확인해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얼핏 알 수 있듯이, 스스로 충실히 남겨왔던 프로필 사진, 상태 메시지, 담벼락은 '흑역사'에서 스스로를 알 수 있는 좋은 '개인 역사책'으로 탈바꿈합니다.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자신을 항상 담은 거울이 되어서 자신을 돌이키거나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현재를 돌아보는 겸손을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기억이다


무심코 SNS 채팅방 배경을 바꾸려다가도 '개인 역사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많이 있던 풍경 하늘을 담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면, 가진 사진이라고는 '공부해야 할 목록'이나 '잊지 말고 사야 할 물품' 목록 밖에 없다면 어떨까요. 나는 삶에 무엇을 남기고 담으려고 했는지 돌아보게 될 겁니다. 당시엔 큰 의미 없이 남겼을 사진 덕분에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최근, 기록을 남긴 한 사람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시인 윤동주. 그가 남긴 시는 잔잔한 울림이 되어 자신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록한 청년에게 많은 이들이 길을 묻습니다. 바람에 괴로웠던 적은 '태풍에 뒤집힌 우산'이라는 흑역사가 고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부끄러움이 내일의 부끄러움을 피하게 해 줄 이정표가 될지, 혹은 누군가의 등불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