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행복하길
보고 싶던 드라마를 다시 보기로 오늘 새벽까지 몰아 봤다. 총 16회였으니 하루 만에 다 본 것은 아니고, 무리해서라도 남은 3회차 분량을 그냥 다 보고 싶었다. 마무리하고 싶었던 이유는, 뭐랄까. 얄궂은 운명이 부리는 장난의 종말을 꼭 봐버리고 싶은, 불안한 미래를 캐묻고 싶은 금단의 욕망이 내뿜는 슬픔이었다.
보는 내내 아팠다. 건물 붕괴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는 충분히 나의 고통과 공명하고도 남았다. 살아가질 못하고,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억울하고 또 억울해서 눈물도 겨우 흘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의사가 내게 그랬다. 분노라는 큰 감정은 다른 것보다 강렬해서 마음이 느끼는 나머지 감정을 둔하게 만든다고.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데도 슬픔이 느껴지지 않고, 웃음을 잃어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주인공들이 울 때마다 너무 힘이 들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의사가 또 그랬다. 그동안 슬펐던 감정을 억지로 누르고 속에 감추느라 표현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 일에 모든 힘을 쓰느라 기억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이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사실 최근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울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세상엔 나처럼 슬픈 사람들의 노래들이 정말 많다.
그러니 내가 공감을 못하는 것도 맞고 하고 있는 것도 맞다. 슬픔이라는 감정, 억울하다는 마음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도망쳐 온 거다. 울 만한 일인데도 일부로 마음을 닫고 이해하기를 무의식적으로 그만두었던 거다. 그걸 알게 해주어서 이 드라마에 고마웠다. 하지만 두렵기도 했다.
새벽 내내 잠이 오질 않았다. 왜 살아남아야만 하는 걸까.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보상은 몰라도 이 아픔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누군가 오늘 나에게 물었다. 살고 싶어서 죽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답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 삶이 아니라는 외침이 오직 죽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운 마음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나는 안다.
우리의 삶이 큰 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살아갈 수 있다면, 아니 없다 해도 꼭 다시 행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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