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남자 누드예요!"
셋째 날 오후에 우리는 플라야 데 라스 테레시타스(Playa de las Teresitas)라는 해변에 찾아갔다.
화산섬인 테네리페의 해변은 사실 온통 검은 모래뿐인데 이곳에는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있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사하라 등지에서 공수해 온 흰모래를 인공적으로 깔아놓은 거라고 한다.
구름이 잔뜩 낀 데다 바람도 세차게 불고 있어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해변 한가운데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모래사장을 걷는데 보드라운 모랫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위태롭게 걷고 계신 아버님이 걱정된 나는 순간적으로 달려가 아버님의 오른팔을 꽉 붙들었다. 아버님께서는 살짝 당황하신 듯했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한 행동이라 나도 속으로는 좀 놀랐다. 아버님께서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기왕 붙잡은 팔 끝까지 꿋꿋하게 붙든 채 계속해서 아버님과 나란히 걸었고, 앞서 걸어가시던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을 향해 웃으시며 그 집 며느리가 참 착하다고 칭찬하셨다.
성격 급하신 우리 어머님, 어느새 만두 한 접시와 시원한 맥주를 갖고 오셨다.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감상하는데 시부모님께서 나더러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으셨다. 어머님께서 챙겨 오신 관광책자를 넘겨보다가 내가 말했다.
"혹시 전망대 같은 곳 없을까요?"
내 질문에 아버님께서 곧장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셨는데 오잉? 딱 전망대스러운 곳이 산 위에 보이는 것이었다.
"멀지는 않을까요?"
"안 멀어."
우리는 그렇게 산 위에 보이는 전망대를 향해 구불구불한 절벽도로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쪽은 말 그대로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또 한쪽은 낭떠러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도 잘 안 보여서 올라가는 내내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우리 아버님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렌터카를 몰고 올라가셨다. (아이고 제가 죄인입니다... 전망대 따위는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비록 해안도로는 아슬아슬했지만 뒤로 멀어지는 해변과 마을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늘에 구름마저 장관이었다. 아름다웠던 이탈리아의 포지타노가 떠올랐다.
전망대에 마침내 도착을 했건만 그곳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을 보니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충분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올라온 해안도로와 뒤로 펼쳐진 검은 산과 구름을 한눈에 담았다.
"미슈, 우리는 이제 어떻게 돌아가나요?"
어머님의 질문에 아버님께서는 생각에 잠기셨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유턴은 위험천만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유턴할 장소를 못 찾아서 계속 직진했고 마침내 검은 모래가 펼쳐진 반대편 해변까지 내려왔다.
그 해변에는 평화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저기 보세요! 저 남자 누드예요!"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쳐버렸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우리 어머님의 대답.
"잘 생겼어?"
"얼굴은 못 봤어요... 딴 데만 보이더라고요."
"나도 보고 싶은데!"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에요. 여자도 있고요."
역시 내 시력이 이럴 때 빛을 발하는구나.
어머님께서는 프랑스에 있는 누드 비치에 갔던 경험을 들려주셨다. 나는 또 "어머어머!" 하면서 열심히 경청했다. (어머님께서는 오히려 한국 해변에는 누드 혹은 반누드로 태닝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더 놀라셨다.)
우리가 차 안에서 이런 잡담을 큰소리로 나누고 있을 때도 아버님은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하셨다.
오늘도 여러모로 좋은 구경(?) 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