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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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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Nov 27. 2023

시작






나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꿈이 없던 나는 현재도 무의미하게 교실의 한 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당시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조금은 덜 치열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공부하여 높은 내신 성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실업계 고교를 선택한 틈새전략은 좋았다. 하지만 결말은 비참했다. 왜 그토록 지난 시간 동안 부모님께서 입이 닳도록 인문계 고등학교와 열성적인 공부 집단의 일원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하였는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역시 공부는 분위기다."          



3학년 졸업반은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취업을 준비하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실업계 고교의 졸업반의 풍경은 학교에 등교하면 잠을 자거나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가서 담배 피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실업계 고3은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어있었다.         


       

실업계 고교의 모든 아이들은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일찍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몇 달 후면 잊히겠지. 곧 졸업이다. 그리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 대학 수시모집을 기다리는 아이들 그리고 실습을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우리 집은 남들이 봤을 때 비교적 대단한 집안이다. 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 어머니는 대학교수 그리고 의대를 다니고 있는 형까지 하지만 어째서 나 혼자 툭 튀어나온 모난 돌처럼 이러는지 부모님도 형한테만 관심을 두지 나는 뒷전이었다.               



대학을 가려고 했지만 공부에 담을 쌓고 지내서 그런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나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매를 들어서라도 공부를 시켰을 텐데 하시며 형과 나를 비교했다. 그런 부모님과 형 그리고 집안 분위기는 항상 숨이 막혔다. 때마침 학교에서 졸업반을 대상으로 취업반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 모르게 타 지역으로 현장실습을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막연하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과정이 어떻든 혹은 결말이 좋거나 나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어른이 되고 돈을 번다는 것에 그리고 숨 막힐듯한 집안을 박차고 나온다는 해방감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낯선 곳, 나는 과연 거기서 무엇을 보게 되고 집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두렵고 떨리지만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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