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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고마 때리치아라"는 갑질

돈벌어서 병원에 다 갔다줘도 아깝지 않은 이유

by 라떼마마

우리는 모두 서가에 꽂힌 책과 같은 존재다.

주군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누군가 내 안을 펼쳐봐 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찾아내 간직하기를 바란다.

-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 -


일을 시작하고 4번의 응급실을 다녀왔다.

연말정산으로 확인한 2019년 의료비 지출이 168만 원이었다. 소소한 병원행, 그리고 약값을 합하면 230만 원쯤 되었다. 조금 더 일을 잘하려고 없는 일을 벌이며 잠을 한 시간 줄일 때마다 병원비와 더불어 친청엄마의 분노가 덤으로 따라왔다. 단순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면 내가 일을 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주변 가족들이 편안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을 하지 않을 명분이 더 확실했다. 비록 내게 남는 것이 단 돈 만원일지라도 나는 시간을 사고 싶었다.


당장 내 경력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환경 속에서 불편함을 견디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고 싶었다.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 중에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를 원했고 누군가 나를 찾아내 주길 원했다. 집이 아닌 불편한 일과 사람들 속에 반드시 내가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막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차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선우씨, 인솔자 자격증 따 볼래요?


"여행사 경력 6개월 이상이 되면 자격이 가능해. 선우씨 보다 더 여행 경험이 많고 업무 전문성이 높아도 회사가 여행사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자격증을 따고 싶어도 못 따는 친구들도 있어. 여행으로 커리어를 쌓건 안 쌓건 간에 따놓고 내년 상반기에는 인솔 한번 보내줄게."


단 한 번도 가이드나 인솔자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여기 일을 하다가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절반은 가방을 싸서 어깨에 걸치고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자발적인 '아싸'로 지내는 내게 뜬금없이 '인솔자 자격증 취득'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크루즈 업무를 하면서 여행업종이야 말로 서비스업의 가장 최 상단에서 클레임의 최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업종이라고 생각했다. 이 경험들을 하나하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모아서 서비스 교육에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일을 지속하는 유일한 동기였다. 상황이 주어진다면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이왕 이 업무를 하게 되었으니 정년퇴직한 아버님들을 대상으로 한 항차를 만들어서 크루즈에서 3시간 정도 워크숍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2의 인생 설계를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기획하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여행과 함께 녹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의미부여를 하고 나니 자격증을 따야 할 것 같았다. 더불어 7-8일 동안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솔하고 나면 CS강사 인생에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할 현장감 박터지는 이야기를 쏟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하고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예매했다. 업무가 손에 익고 많은 일들이 루틴 하게 느껴질 만큼 안정감이 생긴 시기에 서울로 가서 1박 2일의 교육을 이수하고 돌아오는 일은 에이스 비스킷만 먹다가 달콤하고 부드럽게 녹는 머랭 쿠키를 입에 넣어 뽀시락 뽀시락 씹어 먹는 일처럼 느껴졌다.


회사 업무지만 철저하게 교통비 숙박비 식비 접수비 등등 20만 원이 넘는 돈을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평일 육아에 지친 친정엄마에게 미안했지만 나의 일이 더 중요했다. 익일의 일정을 위해 시간 맞춰 퇴근을 하는데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감기 기운이 있나? 했다. 집에 가서 타이레놀 2알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 9시, 아이를 재울 준비를 하는데 오한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근육통이 생겼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염에 걸렸을 때 느낀 엄청난 근육통과 오한을 다시 만났다. 체온계를 꺼내 체온을 쟀다. 38.2도, 38.6도 38.8도....


39.0 도


타이레놀을 먹었다. 1시간쯤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감기몸살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통증이 왔고 추워서 겨울 이불을 꺼내 덮으며 오들오들 떨었다. 이대로 내일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응급실에 우선 가야 할 것 같았다.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몸살과 고열로 인해
내일 일정은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응급실부터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둘둘 말아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혼자서 밤 10시가 넘어 택시를 탔다.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접수를 했다. 불과 2-3달 전에 장염과 천식으로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넘기고 세 번째 응급실 행이라 모든 게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익숙하지 않았고 주사 바늘을 꽂을 때 느껴지는 순간적인 자극은 내 눈물을 터뜨렸다. 곳곳에 보호자가 와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세 번째 응급실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늘 혼자였다. 아이를 허락도 없이 부모님께 넘겨버리고 앓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냅다 도망가듯 집을 나왔다. 수액을 맞아 불편한 한 손으로 옷을 벗고 환자복을 입고 CT를 찍었다. 애 아빠 생각이 났다.


내가 너 같은 놈 만나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돼?
왜 나만 혼자 애 키우면서 돈 까지 벌어야 되는 건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라고 죽도록 이야기하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혼자만의 고함을 질러댔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는 응급실에서 마치 부모님을 막 하늘나라로 보낸 자식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입사 후 두 달만에 시작된.. 반측성 안면경련이 계속 심해져서 한쪽 눈과 얼굴이 일그러져가고 있었고 천식이 생겼다. 기침을 하다가 사람이 죽을 수 있구나.라는 발작을 처음 경험하며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심신이 엉망진창이었다.


마음은 우리 안을 여행한다. 신경을 타고, 근육을 타고, 피에 섞여서, 혹은 뼈에 스며서.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즐거운 기분을 자주 느꼈던 사람의 몸은 느낌이 좋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뭔가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 몸은 슬픔에 더 민감해서, 기쁜 기억보다 서글펐던 마음들을 더 알뜰히 구석구석에 쌓아놓는다. 두피에도, 목에도, 어깨에도, 날개뼈 사이에도, 팔 안쪽의 오목한 부분에도, 꼬리뼈에도, 무릎에도, 발바닥에도. 우리를 한때 휩쓸고 지나갔던 불안과 슬픔들은 그런 곳들에 가만히 고여 있다가 때때로 흐느껴 운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문득 이유 없이 슬픔을 느낀다. 별일 없던 날의 새벽 잠결에 문득 서러워지고, 무심히 밥을 먹다가도 뜬금없이 허무해서 한숨 쉬는 존재인 것이다.

출처 - 너를 어쩌면 좋을까(곽세라)


모든 상황을 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도 싱글맘이 되었다면 이렇게 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누가 알 까 두려워 쉬쉬 하며 혼자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감정의 쓰레기통 삼아 악담으로 해소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살갑고 우아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은 고난도의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시간과 같았다.


입사 초반 업무에 잘 적응하려고 잠을 줄여가며 '복습'이라는 것을 했다. 교육시간에 들은 내용을 모두 녹취를 했고 집으로 돌아와 녹취 내용을 타이핑했다. 전임자가 쓰던 노트를 나의 언어로 바꿔 쓰며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무엇이든 느렸다. 부금료를 적립해서 행사로 사용하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전산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일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학부 때 배운 프로그래밍 언어인 C언어와 통신공학 시간에 배운 MATLAB을 다루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동영상으로 찍어서 집에 와서 눈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실수하면 온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 대리님이 무섭고 쪽팔려서 눈으로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바둑을 배우는 일처럼 '복기'라는 것을 했다.




이 모든 스트레스가 그동안 누적이 되어 참다못해 내 몸의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각종 약들이 주삿바늘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갔다. 통증이 참을 만해서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음에 다행이라 여겼다. 밤 12시였다.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정대로 다녀오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서울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할 거라는 나의 이야기에 부모님이 참다가 폭발하셨다.


벌어서 약값에 병원비에 다쓸 끼가!!!!!!
니가 뭘 그렇게 큰일을 한다고 카는데! 고마 때리치아라.
보는 나도 힘들고 아(써니)도 힘들다. 고마 치아라!



4시간을 자고 6시가 조금 넘어 서울행 KTX를 탔다. 진통제로 간신이 버티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는 이틀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분노에 저항한 일이 없는 딸이었다. 하지만 이 날 이 순간 친정엄마의 분노에 수긍하고 계획대로 하지 않았다면 일하는 동안 만날 작은 돌부리 하나하나 마다 계속해서 걸려 넘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반복해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법으로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타협을 하면 다음번에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타협하며 '하지 못함' 할 수 없음'에 학습되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선언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계획한 일을 절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보세요. 나는 어떠한 말을 듣더라도 오늘처럼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들 계세요!"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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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에 있는 분들은 이 자격증의 가치에 대해 대단히 평가 절하할 수도 있지만 내겐 하나의 표식과도 같았다. 나를 끝까지 몰아붙인 날의 흔적. 못할 이유가 열 가지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었던 간절함의 상징적인 물건이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다. 나를 완전히 다 써버리는 느낌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너무 간절해서 자존심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눈빛과 행동으로 모든 것을 애원하며 최선을 다 해보았을 때 그때마다 항상 좋은 일이 있었다. 서울로 취직을 하기 위해서 면접 전날 밤새도록 pc방에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새벽 첫차를 타고 면접을 보러 가던 그날이 떠올랐다. 시키지 않았지만 나만의 발칙한 상상력이 동원된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자료를 만들어 소신 있게 이야기하고 온 날이 떠올랐다. 나의 간절함을 보고 몇몇 분들이 입사 후에 " 너는 안 뽑아주면 절대 안 될 것 같았어 "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너무 오랫동안 나는 나를 내버려 둔 채 방치했음을 이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고 이러한 느낌을 성취감이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없고 온전히 자발적인 의지와 행동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더욱 가치가 있었다. 이 자격증이 내 인생에서 엄청난 일을 가져다주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다음번에 비슷한 주변 환경의 어려움과 개인적인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계산기로는 도저히 셈이 맞지 않지만 나의 계산기에는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내는 사람" 이라는 확신이 남겨질것임을 믿는다. 그것이 내가 "고마 때리치아라"는 갑질에도 굴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


01화 살고싶으면 타이타닉호에서 내릴 것

02화 드라마 속 강단이보다 처절한 리얼리티버전

03화 합격입니다.

04화 여직원과 총무, 유니폼의 상관관계

05화 딸이란 엄마의 시간을 싼 값에 후려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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