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시작한다. 빛이나지 않는 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빛이나지 않는 일부터.
나한테 주어진 일부터.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새벽 5시, 6시면 눈이 번쩍 하고 떠졌다. 출근하는 일이 좋아서 새벽 1시, 2시가 지나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지하철 2 정거장,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 은행원 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하지만 그간 꿈꿔온 나만의 이상적인 워킹맘의 모습으로 매일매일 출근했다. 승강장 한켠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며 열심히 전신 거울 샷도 찍고 #워킹맘#직장인스타그램#출근길#모닝커피 해시태그로 도배하며 인스타그램에 나의 일상을 올렸다. 세상과'연결'되는 일에 참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전임자와의 인수인계가 일주일 정도로 끝이 났던 출근하는 날, 아침에 여자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선우씨, 앞으로 매일매일 아침에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은경씨가 가르쳐 줄 거예요. 설명 듣고 앞으로 선우씨가 맡아서 하세요!
나이가 대략 마흔 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나를 탕비실로 부르며 아침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순차적인 설명을 했다. 마치 시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물려주는 뉘앙스와 표정(겉으로는 아쉬운 척 하지만 이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세상 행복한 느낌이 가미된 표정을 애써 감추는 듯한)과도 흡사했다.
1. 출근 직 후 배달된 신문을 회장님 방 책상에 순서대로 올려놓은 후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기
2. 탕비실 약탕기에 전원을 켜고 싱크대 수납장에 정리된 돼지감자 한 줌을 넣고 미리 달여놓기
3. 돼지감자가 차로 우러나는 동안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자료실의 신문지 한 장과 윈덱스를 들고 나오기
4. 회의실 책상 유리를 깔끔하게 닦고 물티슈로 의자와 주변 먼지 닦기
5. 창구 주변과 상담실 데스크를 청결하게 정리하기
6. 으흠' 하는 회장님의 칼칼한 기침 소리가 나면 탕비실로 들어가 회장님의 차를 적당한 온도로 준비해서 가져다 드리기
7. 8시 반부터 시작하는 관리자 회의에 들어가는 8잔의 차를 트레이에 놓고 가지런히 준비하기
8. 6시 이후 회장님이 퇴근하는 시간에 회장님 책상, 소파 결재서류를 정리하고 가습기 물을 반드시 비워놓기
일련의 일들을 매일 아침 해야 한다는 말에 숨이 콱 막힐 것 같았다. 비주얼은 업무 숙련도가 7-8년은 되어 보이는 여자 차장 느낌 충만하게 입고 나왔는데 나이 서른여섯에 아침부터 신문지를 들고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관리자라고 불리는 남자사원들과 회장님과의 아침 회의시간 차 준비를 매일 할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시간을 왜곡시키는 지하철을 타고 1999년에서 존재할 것 같은 회사에 하차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어쨌거나 여자 직원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고 마지막에 들어온 신참내기라 이 업무는 회사에서 그 누구도 아닌 내 몫이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8시 30분에 출근하면 되지만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하고 나와야 하는 내가 7시 50분까지 회사에 나오는 일은 친정엄마에게 또 한 번 마음이 쫄리는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돈 100만 원을 빌리러 가는 일보다 더 사람을 위축되게 했고 "고마 때리 치아라!"라는 습관적인 협박을 당하게 될까 봐 머뭇거리게 되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늘 회장님이 퇴근하셔야 회장님 방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직원들이 일찍 퇴근을 하더라도 나는 정시에 퇴근할 수 없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날이면 다른 선배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너무나 눈치가 보였다.
" 죄...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아이를 직접 등원시키고 출근해야 해서 빨리 도착하더라도 늦을 것 같아요.. 회장님 차 준비 대신해서 부탁드립니다... "
작고 사소한 아침 첫 업무로부터 생긴 부정적인 감정이 훨씬 더 중요한 업무를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억울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회사의 분위기는 회장님 기침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모든 직원들은 회장님과 한 엘리베이터 타기를 꺼렸으며 최대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막내사원이라는 이유로 회장님과 상대적으로 부딪힐 일이 많았던 나는 피하려고 애쓰는 노력을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즐기기로 했다.
내 눈앞에 부자가 있다.
당시 경제적 자립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던 나는 '부'에 관한 책에 심취해있었다. 워런 버핏과의 한 끼 식사로 몇 억 원을 내느니 차라리 부자인 회장님과 차 한잔을 하는 일이 훨씬 현실적이고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며 가며 회장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며 부자인 회장님과 인사 한마디라도 기분 좋게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람들이 피하기만 급급할 때 한마디의 조언이라도 더 듣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참 부담스러운 회장님과의 대화에 물꼬를 트는 자연스러운 질문과 살가운 태도가 필요했다.
결재서류를 정리하면서 요즘 회사는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회장님은 이런 업무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생각보다 소박하시네. 생각보다 다정하신 면이 있구나. 하며 지금의 회장님을 만든 회장님의 사소한 습관과 생각들을 끊임없이 관찰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매일 루틴 하게 돌아가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탕비실 정리와 차 준비 회장님 방 청소 같은 일들도 꽤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오너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가 회사 업무에 큰 힘이 되었다. 적어도 회사에서 존재감 없이 오며 가며 투명인간이 되기보다 우리 회사에 이런 직원도 있구나. 하고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꺼이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냈다.
회장님과 밥을 먹고 싶었다. 밥을 먹으며 여쭤 보고 싶었다. 힘들다는 보험회사의 영업관리자로 어떻게 실적을 올리셨는지 어떻게 지금의 회사로 자수성가하셨는지 누구나 알 것 같은 노하우가 아닌 진짜 엑기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책 열 권을 읽는 것보다 직접 행동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현실적으로 와 닿을 것 같았다. 회장님께 밥을 한 끼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제가 여기 OOOO에 입사하고 월급도 이 만큼 받았는데
기념으로 제가 회장님께 점심 한 끼 사드려도 괜찮을까요?
제 차가 K5인데 괜찮으시면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회장님은 적잖게 당황하시며 웃으셨다. 이 어디서 굴러온 외계인 같은 애가 우리 회사에 있었냐는 표정이셨지만 8개월 동안 이어지는 자잘한 업무를 회장님과의 대화와 식사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성과로 만들고 싶었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밥을 사?
사도 내가 사야지. 알겠다.
이후로 나의 뒤를 이어 새로운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내가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나 또한 똑같은 모양새로 나만의 곳간 열쇠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심지어 이건 내가 꽤 잘하는 나만의 일인데 이걸 넘겨주려니 아깝기까지 했다.
민지 총무님 회장님 실에 들어갈 때 그렇게 들어가면 안돼요.
인사는 정중하게 멈춰서 해야 해요.
그리고 회장님 차가운 물은 안 드시고 너무 뜨겁게 하면 약을 못 드시니
적당히 따뜻하게 드려야 해요.
오후 2시쯤 식사하시고 은행초 타드려야 하니
소주잔 정도에 담아 3-4배로 희석해서 드리세요
어느새 나는 자발적인 '이 비서'가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내 시간과 손때가 묻은 공간에 애정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회장님과의 식사자리는 하루 이틀 미루어지며 기약 없이 연기가 되었고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웨딩사업부 직원들이 하나, 둘 휴직을 떠났다. 일본 크루즈 사태로 크루즈 업무는 잠정 중단이 되었고 엄청난 해약 상담에 매일매일 지쳐갔다. 패키지여행 예약들도 줄줄이 취소가 되었다. 열심히 상담을 하고 진행한 건들, 특히 큰 금액의 인센티브 건들은 아쉬움이 컸다.
이러다가 나도 무급휴직을 가는 게 아닐까?
자리 빼라고 하면 어쩌지?
매일매일 반쯤 가방 메고 언제든 더 좋은 자리가 있으면 튀어나갈 모양새를 하고 다녔던 내가 불안했다. 고용이 불안하고 업무마저 절반 이하로 줄었으니 집에 갈 날만 기다렸다. 회장님은 오며 가며 여행 부스에 앉아 있는 나를 시시 때때로 응시하며 가만히 지켜보다가 외출을 하시곤 했다. 아마도 이 직원을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고민을 하신 것 같다. 나는 회장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겁이 났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먼저 휴직을 가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이 없었다. 내가 한 일은 계속되는 해약 상담과 취소된 건들에 대한 최종 보고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휴직을 가면 내 월급만큼 회사에 이익으로 돌아가겠지만 그것보다 일이 줄어든 만큼 다른 일들을 벌이며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OO님, 영업본부 아침 조회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회장님께 기획안 올리겠습니다.
2달 뒤 나는 회사에서 더 필요한 포지션으로 옮겨졌고 코로나 19가 쓸고 간 여행업계의 휴직 분위기에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비록 회장님과의 식사는 할 수 없었지만 사장님으로부터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회장님이 선우씨 칭찬을 많이 해.
센스도 있고 살갑고 마음 맞출 줄 안다고 말이야.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씀을 잘 안 하시는데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
8개월 동안의 지겹도록 반복되던 신입사원이 할 것 같은, 서른여섯 살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초짜 내 풀풀 나는 일들이었다. 같은 일이라도 내가 하면 남들과는 다르다고. 회장님의 차 준비도 승무원처럼 하면 나에 대한 평판을 이렇게 달라지게 할 수 있음을 실감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나만의 스웨그를 각인시킨다면 찬바람 휑~ 하게 부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임을 고스란히 느꼈다.
책상 앞에는 중용 23장의 한 구절을 붙여놓았다. 차를 준비하고 책상이나 닦는 회사에서 참 존재감 없는 일을 하는 나의 추락한 자존삼을 살살 달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