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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OP가 밥벌이를 지켜내는 방법

1인분의 월급과 2인분의 업무를 자처하면 생기는 일

by 라떼마마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만 멈춰 있었다.
내가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림하고 애를 키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한테 주어진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게 내가 여기 있고, 저 사람들이 저기에 있는 이유다.
-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 -


코로나가 19가 터지면서, 일본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기사가 연일 화제가 되었다. 오전 9시가 땡 하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해약상담에 전화가 빗발쳤다. 특히 단체로 특정 시점에서 여행을 계획하고 가입한 고객들에 대한 상담은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가량 이어졌고 회사를 못 믿겠다며 직접 내방하는 고객도 많았다. "크루즈라면 몸서리가 나요. 해약해주세요!" , "크루즈라 카면 환상이 다 깨졌는데 이래가 가겠어요?? " , " 여행 가겠다고 예약한 것도 아닌데 왜 환급금이 이것밖에 안돼요?" " 영업사원이 100% 환급된다고 했으니까 빨리 해줘요!"


해약환급금이 창립 이래로 가장 많았던 시기라 오너의 심기는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있던 여행 부서는 당시 매월 적자를 내는 사업부로 문 닫을 날을 받아 놓고 기다리는 시한부와 같은 부서였다. 상조회사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가 부금료로 들어오는 선수금인데 그에 비해 나가는 해약환급금이 많으면 회사는 적자를 보는 손익 구조가 된다. 모든 것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기 힘든 오너는 해약이 많은 것을 여직원의 상담능력 탓으로 돌렸다.


그게 상담이야? 해약 응대지!
우리가 해약 손님 받으려고 8시부터 사무실 문 열어 놓고 있습니까?
여직원들 제발 해약 안내를 하지 말고 상담을 하세요 상담을!!!

사장부터가 잘못이에요. 대갈빡에 뭐가 들었습니까?


공식적인 회의에서 '대갈빡'이라는 단어가 오고 갔다. 눈이 질끈 감겼고 내 귀를 의심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고 있는 금융권에서 임원까지 하신 사장님이 매일매일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회의시간을 견뎌내셨다. 아이 아빠 생각이 났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자존감 한쪽이 후려쳐지고 병신 같은 존재라고 느껴질 만큼 '말'이라는 무기에 짓밟히며 일 했을 그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애잔함이 몰려왔다. 생계라는 이름하에 가장의 책임은 이런 걸 견디는 것이고 매월 들어오는 월급에는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음을 생방송으로 경험했다. 급기야 직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 공식석상에 화두로 던져졌다.


잘 들으세요. 여직원들 해약 상담 테스트하겠습니다.
다음 주 내가 직접 롤플레잉 시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하세요.!!



나는 회장님의 말씀은 단지 시험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조조정을 하기위한 절차로 차별을 두면 안 되니 공식적으로 테스트를 해서 업무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원이 나가는 것에 대한 합리성을 부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같았다.


나는 크루즈 OP를 하면서 동시에 고객상담 VOC 업무를 함께 했었고 창구에 있는 직원들도 회계, 경리 업무에 고객상담 업무가 겸해져 있었기 때문에 업무시간은 잠깐의 딴짓을 할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몇 십만 명의 고객을 보유한 회사가 콜센터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으니 직원들은 창의적인 일을 할 어떠한 여유도 없이 능력치의 120%를 쓰고 있었다. 반면 오너는 생각이 달랐다. 늘 '인원이 남아돈다'라고 했고 바쁜 이유는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이리도 달랐다.

OO님, 제가 원래 무급휴직 가야 하는 거 맞죠?
저 어떻게 해요?



기약도 없는 무급휴직을 당하기 싫었다. 억울했다. 상조회사에 근무하지만 담당업무는 여행이었다. 상조상품과 장의행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전화만 하면 1시간 이내로 장례지도사가 출동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해야 했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가장 상담을 잘하는 상사에게 직접 부탁을 했다.



제가 상조상품 상담 관련 질문 리스트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제가 공부한 범위에서 최대한 작성해보겠습니다. 검토하신 후에 피드백해주시면 다음 주 진행될 롤플레잉 테스트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눈빛으로 대놓고 열심히 하겠다는데 조금만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상사는 없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고객들이 가장 잘하는 질문을 생각나는 대로 타이핑하고 종류별로 분류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 들은 교육내용을 녹취해서 타이핑한 자료를 다시 꺼내보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상조공제조합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 자료를 살펴보며 베스트 답변을 만들었다. 문어체가 아닌 정말 상담하는 느낌의 스크립트로 작성을 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 같아서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피드백을 받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했다. 간곡히 부탁을 해서 1시간 정도 상조업계의 흐름과 우리 회사의 상품과 행사 진행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필기를 했다. 콜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했을 때 얼마나 얄팍한 지식을 입으로 뱉었는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왕 이렇게 공부한 것이 아깝기도 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의 흔적이라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존심 상하게 무급휴직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꺼내놓고 상품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잉여인간이 된다.


비록 급하게 만들긴 했지만 회사에 17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고객상담 스크립트를 제작했고 해당 결과물을 보고했다. 양이 많지 않았지만 웬만한 질문들은 이 답변을 피해 갈 수 없을 거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다른 직원들과 공유하며 매일매일 해약 상담 관련 스터디가 1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다.


고객상담을 하면서 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야근으로 이어졌다. 나는 1인분인데 2인분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소개서 만들기, 교육자료 만들기, 영업사원 세일즈 북, 등등 이런 일들만 맡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지방 중소기업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을 지향해야 했고 회사는 내가 한 가지 일만 하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릴 수 없으면 내가 기꺼이 퇴근 후 내 시간을 탈탈 털어내야 했다. 피곤했지만 이 일은 개인의 성장을 돕는다. 개인이 성장하면 회사가 이로워지는 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없는 것을 만드는 나도 성장하는 일이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후로 해약 상담 롤플레잉 테스트가 불시에 진행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회장님의 부재중으로 사장님이 직접 롤플레잉 테스트를 하셨고 아마도 회장님의 아드님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모든 내용은 회장님께 보고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테스트는 무난하게 끝이 났지만 당시 여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심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밥을 먹지 못하는 직원, 계속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직원, 시시때때로 찾아와 회사 다니기 싫다고 하소연하는 직원, 나름 커닝 페이퍼를 열심히 만드는 직원 등등 안 그래 보였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끙끙 앓았다.



이 일을 계기로 자발적인 2인분의 일은 계속되었다. 회사 직무 설명회를 제안하고 회사소개서를 제작했다.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영역에 발을 디뎠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판단이 무색할 만큼 기준이 되는 자료조차 없는 곳에서 하나씩 하나씩 내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서 보고를 했다. 다음 아침 회의에서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이선우사원 말고
누가 고객상담이 가능합니까?
동료한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모르면 이선우 사원에게 물어보세요!



CS강의를 했지만 입사 초반 고객의 분노와 무자비한 욕설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고 두어 번 몰래 눈물을 훔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에서 고객상담을 가장 잘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고 오너의 머릿속에 나는 적어도 투명인간만큼은 면하면서 밥값이라도 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다.


느려서 조금 덜 자며 일을 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휴직을 당하지 않기 위해 2인분의 일을 자처해서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지나며 나는 정글에서 홀로 생존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큰 회사를 다닐 때에는 적당히 묻혀서 일을 했고 아주 잘 만들어진 선배들의 자료가 참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틀에 나의 생각과 견해를 잘 녹이기만 하면 하나의 기획안이 완성되었다. 모든 수식이 완벽하게 걸려 있었기 때문에 길고 복잡한 엑셀 시트도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보면 나는 ctrl+c / ctrl+v 를 오가며 숫자만 갖다 붙이면 끝나는 일들이 많았다. 마케팅이나 기획 부서에서 공유한 첨부자료는 문서작성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많아서 배우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다. 하지만 지방 중소기업에는 사실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다. 매일매일 뜨악의 연속이었고 내가 하지 않으면 늘 회사의 누군가는 불편했다.


5년간의 공백 뒤에 작성하는 보고서와 기획안, 교육자료는 타인이 보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을 수 있지만 시작이라도 거지같이 하는 일이 하지 않음보다 이롭다고 생각했다. 백지상태에서 무엇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큰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과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일을 이만큼이나 하고 다른 직원들은 시키는 것만 한다고 해서 불평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억울해서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느리지만 나는 어제보다 분명 성장하고 있음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


01화 살고싶으면 타이타닉호에서 내릴 것

02화 드라마 속 강단이보다 처절한 리얼리티버전

03화 합격입니다.

04화 여직원과 총무, 유니폼의 상관관계

05화 딸이란 엄마의 시간을 싼 값에 후려치는 사람

06화 엄마의 "고마 때리치아라"는 갑질

07화 회장님 '차' 준비와 코로나 무급휴직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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