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학원비나 버는 엄마와 생계가 달린 엄마의 차이점
신은 인생에서 최고의 것들을 항상 두려움 뒤에 놓습니다.
-윌스미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가 하더라도 편차가 크지않은 일에 지루함을 느꼈다.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권태로움이기를 바랐다. 나의 쓸모를 작은 곳에서부터 찾아보겠다는 각오로 일을 시작했지만 22살의 막내와 내 월급의 차이가 20만 원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 길지 않지만 사회생활 경력이 있었고 강의와 과정개발 등, 틈틈이 크고 작은 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갔는데 같은 회사 비슷한 직무로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이 같았다. 일을 얼만큼 매끄럽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은 월급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수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휴지통으로 들어가 영구 삭제되고 불쾌한 기분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았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쪽이 팔렸다. 22살, 세무/회계를 전공한 이 친구의 눈에 서른일곱의 내가 한심해 보일 거라고 상상했다. 왜 22살의 이 친구와 서른일곱의 나는 같은 월급을 받게 되었을까? 이 고민을 며칠 째 떨쳐낼 수 없었다. 반면에 다른 동료들은 만족했다.
저는 애 학원비나 벌면 돼요.
예전 회사는 월급이 잘 안 나왔는데
그래도 여기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요
학원비나. ___나 라는 말의 뉘앙스가 싫었다. 스스로 내 가치를 가두고 더 이상 키울 생각도 나에게 기회를 부여할 어떠한 의지도 없는 ___나 라는 뉘앙스가 싫었다. 단순한 돈의 크기보다 내게 고만고만한 일만 주어짐을 결국 못 참았다. 자발적 2인분의 회사생활을 하던 나는 부서장의 응원에 힘입어 마음속에 담아둔 버킷리스트를 해치우기로 했다.
OO님 저 영업본부에 제가 조회 들어가고 싶습니다.
크루즈 상담하면서 틈틈히 준비해도 괜찮을까요?
당시 부서장은 입사할 때부터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코로나로 회사 분위기가 우중충한 가운데 될 대로 되겠지.. 하며 넋 놓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든 일을 하겠다고 어필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당시 영업본부는 50명 정도의 영업사원이 있었고 모든 교육은 관리자의 몫이었다. 회사 창립 이래 여자 총무가 교육을 했던 전례가 없었다.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장님을 설득하기 위한 기획안을 만들었다. 부녀사원으로 이루어진 영업조직을 관리해오셨던 회장님께 허세끼 가득한 문서보다는 강력한 명분이 중요했다.
WHY가 중요했다. "네가 왜 이걸 해야 하지?", "이걸 하면 회사에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갖고 오는 거야?" 라는 물음에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를 들지 않으면 반려될 일이 눈에 보듯 뻔했다. 가부장적이고 90년대의 분위기 가득한 회사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려면 한 사람의 입지전적 태도와 무대포 정신이 필요하다.
회장님이 하루에 결재하시는 문서의 수를 감안했을 때 구구절절 불필요한 많은 분량의 자료는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단 2장으로 기획안을 만들어 결재서류판에 끼워 회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만만했지만 쫄보가 되었다. 거절을 당할까 봐 두려웠고 결재가 나도 문제였다. 왜냐하면 내 업무에 추가로 강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저질렀다가 하게 될 고생의 무게가 눈에 보듯 뻔했다. 하지만 담담히 걸어 들어갔다. 지금 스물두 살의 친구와 내가 똑같은 출발선상에 있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을 불편하고 두렵게 하는 일에 스스로 밀어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어야 할 책임은 있었고 결과는 그 후의 문제였다.
회장님께서는 관리자가 교육을 통해서 사원들을 독려하는 일을 평소에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코로나로 인해 실적이 저조하지만 이 시기 동안 재정비를 하는 건 어떨까요?
두 번의 질문으로 회장님의 YES를 먼저 받아내고 1분 정도로 기획안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이미 시작부터 YES를 하신 회장님은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 이왕 하는 거 'K 이사'와 이야기해서 열심히 한 번 해봐
회장님의 결재가 났지만 당시 영업본부 OOOO은 흔쾌히 자리를 내주시지 않았다. 밥그릇에 위협적인 요소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계속 찾아가서 커피와 간식 공세로 밀어붙이고 사원들에게 아침마다 차도 나누어 드리고 손소독제까지 자비를 들여서 돌리기도 했다. 이런 나의 행동이 탐탁지 않으셨겠지만 결국 영업본부에서 강의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내 연구소가 탄생했으니.
OOOOOOO 성장연구소 CS트레이너 이선우
주제별로 2시간 분량의 강의안을 만들고 이 중에서 중요한 내용만 골라서 압축해서 교육을 했다. 영업사원들이 출근해서 그냥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고객과 약속을 잡거나 차를 마시며 하루의 마음가짐을 예쁜 모양에 담는 시간으로 쓰길 바라는 마음에 필사 노트도 매주 업데이트하며 만들었다.
강의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50대, 60대의 여성 영업사원들에게 어떻게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사내에서 내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업무로 영업사원과 일을 진행하는 것과 강의를 하는 느낌은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강의를 마지막으로 한 지 정확하게 5년 만이었다. 떨렸다. 내가 스물 여덟 살에 처음 외부에서 강의를 했던 곳은 대학병원이었고 대상은 간호사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폭망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준비하는 일주일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집에 와서 매일매일 새벽 2-3시까지 생각하고 사례를 편안하게 말하는 연습을 했다. 다양한 활동으로 3-4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의보다 40분 정도로 짧게 줄이기가 몇 배는 힘들었다. 욕심이 많아서 자꾸자꾸 더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덜어내는 일이 더 마음 쓰라렸다.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출근했다.
이 강의가 끝나기 전까지 스트레스는 끝나지 않으리라. 매번 강의를 할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자기 검열이 심한 완벽주의 성격 탓에 내려놓지를 못했다. 사람들에게 공부한 내용을 알려주고 함께 생각하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강사, 퍼실리테이터가 좋았지만 동시에 가장 피하고 싶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괜한 일을 벌였다고. 자책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스트레스는 오만상 받고 잠도 못 자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일까? 폭망 하면 어쩌지? 쟤 강사였는데 왜 저것밖에 못하냐고 손가락질하면 어쩌지? 내 마음이 참 소란스러웠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나를 몰고 갔다.
그냥 안 가도 된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당신은 이미 그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옳게 가고 있다는 증거다.
두려움에 맞서는 최고의 방법은 행동하는 것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견디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부서장님의 열렬한 지지와 사원들의 기대감 속에서 강단에 섰다. 사람 100명은 들어가도 괜찮을 넓은 공간의 중심에 섰던 날, 사장님, 본부장님, 부서장님이 앉아계셨고 마음은 미친 듯 떨고 있었지만 나는 사원들의 엄지 척을 받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사람은 감탄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김정운 작가님이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참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서 감탄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이리도 불안을 안고 달려왔을까 싶었다. 강의가 끝나고 "크.. 진짜 좋았어요.. 대박.." 하시며 연신 엄지 척을 받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달하고 따끈한 맥심 화이트골드 커피믹스가 생각이 났다.
이후로 정식으로 영업본부로 발령이 났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큼 원하는 대로 강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물론 회장님은 세련된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잠깐의 교육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고객을 만날 때 최소한 재킷이라도 갖추어 입고 반듯하게 보관된 계약서를 꺼내어 공손하게 자신의 소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조 그거 뭐... 상조 그거 뭐.... 라며 하대하는 표현들을 하지만 애착이 있고 자신의 행사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지는 괜찮은 영업사원을 만나면 가성비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은 분명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이 몇몇 사람들의 가벼운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교육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험 총무' , 회사에서는 영업국 총무였지만 관리자처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고객 관리를 하며 자리에 앉아 있는 몇몇 사원분들께 개인적으로 만든 자료를 공유했다. " 여사님, 카톡 보내실 때 이런 사진보다는 이런 걸 보내세요. " , " 크루즈 상품 판매하신 뒤에 해피콜에서 계약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전에 철회되는 걸 방지하려면 여사님이 먼저 이렇게 하셔야 해요. " 하며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50대 이상 어머니 세대분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 돋는 글귀를 예쁘게 만들어서 보내드리고 고객 사은품에 붙일 예쁜 메모를 디자인하고 편지를 써서 프린트를 해드리기도 했다. 새롭게 신인 등록을 한 사원분들이 첫 출근 하는 날은 엘리베이터와 책상에 플랜카드를 걸어 환영했고 곁에서 밀착 서비스를 하며 탈락하지 않도록 애쓰기도 했다. 회장님은 이런 나를 보며 공식적인 조회에서 말씀하셨다.
총무 아이디어야? 요새 밥값 한다!
강의가 끝난 후 촬영한 영상을 보는 내내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낯설었다. 나에게 저렇게 행복한 모습이 있었나? 행복한 감정을 느낀 지 너무나 오래되어 행복은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잊고 지냈던 나는 영상 속에서 웃고있었다.
모든 진전은 용기 있는 결정과 행동으로부터 비롯됨을 믿는다.
사진 출처: 유튜브 [필미필미TV] 윌스미스 명연설-두려움에 맞서는 법
<경력단절 엄마의 성장기록 에세이>
07화 회장님 '차' 준비와 코로나 무급휴직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