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사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꿈은 선생님이었다.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영향을 끼쳤던 것은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일하며 만났던 한 친구 때문이었다.
아직 문헌정보학과 학부생이었지만 아르바이트하던 도서관의 소개로 근처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사서로 일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격증도 나오지 않은 내게 도서실 운영을 맡긴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그때의 나는 법적이나 구조적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내가 부족하지 않은 사서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 친구는 점심시간마다 도서실에 와서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가장 늦게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매일 도장을 찍던 아이에게 눈길이 가긴 했지만 먼저 말을 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근무시간은 점심시간과 오후의 잠깐이 전부였고 그 짧은 시간 내에 나는 도서를 수서 하고 정리하고 서비스하는 '사서'의 일을 모두 해내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책 정리를 끝내고 한가해진 한 오후에 그 아이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곤충 관련된 책 좀 추천해주세요. 웬만한 건 다 읽어서 재미가 없어요."
학생 이용자 질문에 나는 충실히 제법 재밌을 만한 책을 몇 개 골라 권했다.
그런데 내가 추천한 책을 모두 읽었단다. 곤충에 관한 모든 책을 찾아 다 보여줘 봤지만 모두 다 읽었다는 아이의 반응이 신기했다.
"대단하다. 정말. 그러면 이번에 책 살 때 네가 읽지 않은 책으로 사줄게. 그럼 곤충에 관련된 책 말고 관심 있는 책 있어?"
내 질문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읽은 책들을 자랑했다. 곤충, 동물, 역사, 소설 안 읽은 분야가 없는 모범 독자였다.
알고 보니 아이는 주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점심시간을 피해 매번 도서실로 피난을 왔던 것이다. 자그마한 도서실에 매일 점심시간마다 머물다 보니 거기 있던 책들을 다 보고도 시간이 남았던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가 좋아할만한 책을 구입 목록에 추가하고 신간이 나오면 소개해주기도 했다. 점점 책을 읽는 시간보다 나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소개해준 신간을 도서관에서 받길 기다리기 어렵다며 엄마를 졸라 책을 샀다고 자랑을 하기도 하고 수학을 만점 받았다며 자랑하는 날도 있었다. 나중에 곤충학자가 될 거라던 아이는 도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정말 즐거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성숙하고 배려 깊은 아이였다. 그렇게 나와 수다 떨기를 좋아하면서도 책을 대출하는 다른 아이들이 밀려있거나 내가 일이 많아 보이면 절대로 먼저 와서 말 걸지 않았다. 그럴 때는 조용히 매일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시작되지 얼마 되지 않아 복도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였다.
손에는 휴지로 싼 떡이 들려있었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급식에 떡이 나왔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가져왔어요. 선생님은 내 친구니까 나눠먹고 싶었어요."
그 순간 나는 사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직업으로 살고 싶어졌다. 선생님은 모든 반 친구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관심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직업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내게도 소중한 친구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가장 걸리는 건 그 친구였다.
마지막 날 그 친구는 도서실 앞에서 내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도서실 앞에서 퇴근하는 나를 기다렸다 학원에 가기도 했기 때문에 그날도 학원 가기 전에 들른 줄 알았다. 갑자기 등 뒤에서 구구콘 두 개를 꺼내더니 하나를 내밀었다. 오래 기다렸는지 아이스크림이 많이 녹아있었다.
"일주일 용돈이 500원인데 선생님 사주려고 용돈 모았어."
작별 선물이었다. 그 뒤로 내 소중한 친구를 다시 보지 못했다. 초등학생에게 휴대폰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고 아직 나도 어린 학생이라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가 생각하던 '사서'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서'일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 친구는 가장 친했던 친구다. 지금도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그 친구 덕에 나는 지금 사서가 되어 있다. 그 친구도 그때 바람대로 곤충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무엇이 되어 있어도 응원할 것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