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미래, 황정은(아시아)」
코끝에 닿는 밤공기에서 짙은 풀 냄새가 났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고 테이블 위에는 갓 튀겨져 나온 치킨과 차가운 맥주가 놓여 있었어. 1학기 종강을 기념하는 회식 자리답게 모두 약간씩 들떠 보였어. 수와 윤과 나만 빼고.
삼총사처럼 늘 붙어 다니던 우리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 놓고 나란히 휴학을 결정했어. 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했고, 윤은 하고 싶었던 영어 공부에 매진할 거라고 했어. 나는 학원에 다니면서 그래픽디자인 자격증을 딸 계획이었지.
그날의 진짜 안주는 치킨이 아니라 수였어. 첫 잔을 반쯤 비우자 오빠들은 본격적으로 수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어. 호주 체류 경험이 있는 여자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호주 남자 경험도 있대. 내 여자친구나 동생이었으면 절대 가만 안 뒀지. 때려서라도 뜯어말렸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남자 동기들도 낄낄대며 한 마디씩 거들었어. 호주에서 살다 온 여자는 결혼정보회사에서도 안 받아준대요, 형.
“남의 일에 관심 되게 많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참다못한 수가 굳은 얼굴로 쏘아붙이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어. 윤과 나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려고 괜히 김빠진 맥주만 들이켰어. 우리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대화에 넌덜머리가 났어.
수가 사라지자 다음 타자는 자연스럽게 내가 됐어.
“너는 휴학하고 뭐 할 건데?”
“자격증 딸 거예요.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려고요.”
“어디, 영화사?”
“아뇨, 저는 영화 안 해요. 디자인 회사 들어가려고요.”
그때였어.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 앉아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조교 M이 끼어든 건.
“뻔하지 뭐. 강남 어디 조그만 회사 들어가서 몇 년 일하다가 비슷한 남자 만나 결혼하겠지. 결혼해서 애 낳고, 애 키우느라 일 관두고. 다 그래, 전문대 나온 여자애들 다 그렇게 살아.”
나는 원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그날 그 순간은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을 하던 M의 표정과 확신에 찬 말투, 그날 밤 우리가 앉아 있었던 치킨집 야외 테이블의 색깔과 김빠진 맥주의 맛까지 전부 다.
따지고 보면 그게 욕은 아니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 온갖 말을 다 듣게 되잖아. 서비스직으로 오래 일하며 본격적인 악의가 담긴 말도 숱하게 들어 봤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장 큰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아.
한국어로 ‘양’은 미혼 여성을 부르는 말로 이름이나 성(姓) 뒤에 붙여 사용한다. 요즘은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는 듯하지만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만 해도 일상에서, 텔레비전에서, 자주 듣고는 했던 호칭이다. 양, 이라는 호칭엔 어떤 어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슨 무슨 양, 이라고 불렸던 그녀들에 관한 공통된 인상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경(前景)이나 중심으로 부각되는 일 없이 가장자리나 배경 어딘가에 잠깐 나타나거나 지나가는 여자들. 일하는 여자아이들. ㅡ(p.78)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눈을 낮춘 덕분인지 졸업을 몇 주 앞두고 바로 취직을 했어. 역삼동에 있는 작은 광고대행사의 운영팀 막내 자리였어. 그곳에서는모두가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했어.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신사역에서 막차를 기다릴 때면 문득문득 그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어.
"뻔하지, 뭐. 강남 어디 조그만 회사 들어가서……."
어떡하지. 나는 방금 전까지 강남 어디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다 왔는데. 내 인생이 M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실감났어. 그렇다면 나는 이제 나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게 될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그만두게 될까? M의 말처럼 그렇게. 다 그렇게 산다니까 나도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어. 그때 M에게 우리는 수와 윤과 현이 아니라 양이었다는 걸. 우리가 졸업해 학교를 떠난 후에는 또 다른 양들이 나타나 그 자리를 채웠을 거야.
교내의 자잘한 사건이나 행사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전경으로 부각된 적 없었어. 늘 가장자리나 배경 어딘가에 잠깐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개 한 마리로 몰 수 있는 순한 양들처럼 조용히, 무해하고 무력하게.
아마도 나는 보편의 양이 되는 게 두려웠던 것 같아. 그래서 M이 예고한 미래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보니 여기에 도착했어. 일주일에 사흘은 글을 쓰고, 사흘은 경기북부의 한 대형마트 농산코너에서 파인애플을 파는 서른에.
이제 나는 12월에 연말정산을 하는 대신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프리랜서야. 결혼 생각은 절대로 없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죽어도 없을 거야.
나의 오늘은 M이 예고했던 미래와 너무 다른데. 그런데 왜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하는 걸까? 왜 여전히 양으로 존재하는 기분이 들까?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유리 너머에 있었다. 햇빛은 하루 중 가장 강할 때에만 계단을 다 내려왔다. 유리를 경계로 바깥은 양지, 실내는 어디까지나 음지였다. 수많은 형광등 불빛으로 서점은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밝았으나 조도가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뭐랄까, 창백하게 눈을 쏘는 빛 속에서 햇빛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후에, 유리를 통해 노랗게 달아오르고 있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ㅡ(p.34)
어제는 점심때쯤 소나기가 쏟아졌다는데 나는 그걸 아주 나중에야 알았어. 내가 일하는 마트의 식품매장은 지하에 있어서 바깥의 사정을 전혀 알 수가 없거든.
낮도 밤 같고 밤도 낮 같은 매장에서 기계처럼 파인애플을 썰고 있으면 날씨 같은 건 전경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배경에는 날씨가 없고, 날씨가 없어서 계절도 없고, 계절이 없어서 달의 감각도 없어. 나는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변함없이 여기 머무를 거야.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가버릴 거야.
현의 미래는 다를 줄 알았는데. 달라야만 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서 대신 글을 써. 글을 쓰는 동안에는 양이 아니라 현으로 존재하는 기분이 들거든.
내가 주인공인 글 속에서 나는 고유한 서사를 가진 고유한 사람이 돼. 그럴 때의 나는 누구에게도 가려지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배경에서 전경으로,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다. 못 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는 그 장소를 떠난 뒤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일은 물론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음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 그 동네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많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카시아가 단 한 그루도 없는 동네에 살게 되더라도 나는 별 불편 없이 잘 적응해갈 것이다.
나는 여전하다. ㅡ(p.72)
나는 여전해. 내일도 아침이 되면 마트 지하의 식품매장으로 출근해 해가 질 때까지 파인애플을 썰고 또 썰겠지만…….
못 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가 오면 여기를 떠나 돌아오지 않을 거야. 양은 몰라도 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언젠가 M을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 줄 거야. 당신이 예고한 미래는 어디에도 없다고. 수도 윤도 나도, 양의 미래가 아닌 우리 각자의 미래를 살고 있다고.
(하현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