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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Nov 01. 2020

심해어에게도 심해가 심해라면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육호수(아침달)」

   순자씨가 날 동네에서 제일 큰 스포츠센터의 수영반에 등록시킨 건 어쩌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어. 그맘때쯤 난 폐렴을 달고 살았거든.


   한번 병원에 입원하면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계속 있어야 했어. 나는 기관지가 약했고 순자씨는 그게 다 자기 탓 같았지. 어린 난 내가 왜 아픈 주삿바늘을 손등에 매달고 있어야 하는지, 어째서 마음대로 바깥에 나갈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투성이였어.

   그래서 매번 자지러지게 울었어. 한번 울음이 터지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시간을 울었댔어. 울면 열이 나는데, 열이 나면 정말 큰 일인데. 중·고등학생 딸들을 둔 제법 능숙한 엄마였던 순자씨도 그때만큼은 어쩔 줄을 몰랐어. 내가 그녀 보란 듯이 더 크게 울어 버리는 통에 순자씨는 매번 죄인이었어.

   그러니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들어선 건 어쩌면 정말 예상 가능한 일이야. 순자씨는 수영모 바깥으로 삐쭉 나온 내 머리칼을 정성스레 정리해주며 속으로 기도했댔어. 앞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 따윈 없게 해 주세요.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수영을 삼 년이나 배웠어. 그러면서 순자씨의 기도도 이루어진 거야. 내가 더는 폐렴으로 고생하지 않았거든.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고.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 나는 바다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절대 바다에는 들어갈 수 없게 된 거야.


   심해 공포증이라고 들어봤어?

   고소공포증, 환 공포증, 광대 공포증, 주사 공포증……. 별의별 공포증이 다 있는 줄은 알았지만 심해 공포증에 관해선 잘 몰랐어. 정말 들어 보지도 못한 공포증이었는데 어쩌다 알아버린 거야. 엄청나게 아름다운 해양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카메라는 바다의 신비에 관해 설명하다가 블루홀을 비췄어. 블루홀은 바다의 싱크홀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구멍 같은 거야. 유난히 움푹 파인 지형 탓에 급격히 수심이 깊어져. 아주 푸른 물이 동그란 모양으로 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블루홀인 셈이야.

   나는 티브이 화면 속 블루홀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물에 엄청난 공포심이 들었거든. 심장이 마구 뛰었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고 싶었는데 온몸이 얼어서 그럴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낯선 공포의 출처를 기억해냈지.     


   그날은 내가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수영대회 날이었어. 대회 때는 경기가 열리는 수영장도 꽤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그날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어. 그리고 무척 수심이 깊은 곳이었지.

   보통은 발이 닿거나 거의 닿을 정도의 수심에서 경기를 치르는데 딱 봐도 너무 물이 파랬거든. 그런데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있나.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점프대 위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지. 물안경을 쓰고,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점프대 위에. 그러고 나면 내 눈에 보이는 건, 물밖에 없어. 곧 내가 떨어질 물. 내가 잠길 물.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어. 얼마간의 잠영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헤엄을 쳐야 하는데 뭔가 잘못됐단 생각이 들었지. 물속이 이상하리만큼 까맸거든. 분명 눈을 떴는데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수영장 바닥엔 레인마다 T자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선수들은 이 문양으로 본인들의 레인을 구분해. 헤엄을 치면서 앞을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바닥의 문양을 따라가며 레인을 지키는 거야. 이 문양은 수영장 끝에 다다르기 전에 끊기는데 그걸 보고 턴을 하기도 해. 문양이 끊기는 지점에서 턴을 하면 자연스럽게 발로 벽을 차며 레인을 되돌아갈 수 있거든.

   그런데 그날은 그 문양조차 잘 구분되지 않았어.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간신히 더 짙은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 나는 완벽하게 겁을 먹었지. 그래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린 거야. 눈을 감은 채로 수영했거든.

    

   그날 내가 몇 등을 했는지 알아? 2등. 나는 도 대회에서 2등을 했어. 반짝거리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어. 그리고 수영을 그만둔 거야.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수영다운 수영을 해본 적 없어.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방 안에서

   기다리다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팠다

 

   일어나는 척

   일어나지 못하는 척

 

   나 여기서 지낼 거야     

   

   그날 그 물속에서 나는 눈을 꼭 감은 채 헤엄쳤어. 눈을 뜨면 검은 물이, 눈을 감으면 텅 빈 어둠이. 레인을 확인하느라 아주 잠깐씩 실눈을 떴는데 그때마다 울고 싶었어. 검은 물속에서 뭔가가 꼭 튀어나올 거 같았거든. 그래서 텅 빈 쪽을 택한 것 같아.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날의 기억은 진짜였을까?

   가끔은 내가 뭔가를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지나치게 파란 물, 깊은 수심, 까만 바닥. 이런 건 애초에 없던 게 아닐까. 내가 다 만들어낸 거라면? 내가 가진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그것들이 필요한 거라면? 필요에 의한 기억이라면?


   심해어 가운데서는 시력을 상실한 물고기도 있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심해에서는 시력이 그다지 쓸모 있지 않아서일 거야. 깜깜한 바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구분하는 일이 그들에겐 의미 없는 일일지 몰라. 태어난 곳이 심해라면, 태어나 보니 심해라면.

   그런데 나는 살다 보니 심해였어. 출발선을 떠나 보니 심해였고 열심히 헤엄쳤는데 심해였어. 그렇다면 더더욱 눈을 감아서는 안 됐는데. 아주 조금 더 짙은 바다와 그렇지 않은 바다를 끝까지 구분해야 했는데.

 

   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피하며 걸었다

   외면한 무엇에 대해서는

   (이를테면, 전단지를 건네던 고양이 인형에 대해서, 인형 탈의 몸통과 머리 사이에서 새어 나오던 어떤 불가피한 악취에 대해서)

   외면했기 때문에 무엇도 쓸 수 없다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마음 바깥의 세상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은행을 밟는 줄도 모르고

   누군가 은행을 깨뜨리길 비둘기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도 모르고     


   내가 나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건, 오늘도 일기장에 적을 말이 없는 건, 어쩌면 눈을 꼭 감고 있어서라고.



   수영은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스포츠야. 숨 쉬는 그 당연한 일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 어디에서 들이마셔야 하는지, 얼마나 들이마셔야 하고 언제까지 내쉬어야 하는지. 그리고 웃기게도 이 모든 건 숨을 참는 법과 연관되어 있어. 그런데 숨을 참는 그 당연하지 않은 일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그냥 참는 거야.


   그러면서 나는 이런 가정을 해 봐.

   심해어에게도 심해가 심해라면.


   심해어에게도 심해가 심해라면, 그래서 그들 역시 그곳을 감당해야 하는 거라면, 이제 나는 동족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 용기가 생겨.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닌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를 그곳을 향해 눈을 뜰 용기가 생기는 거야. 숨을 쉴 때도, 숨을 참을 때에도.


   너무 많은 빛이 방에 쏟아 들어와 꿈에서 깨다     

   

   이런 일들을 정말 견딜 수 없었다면 이미 죽었겠지     


   마침내 나는 내 몫의 바다를 지킬 수도 있어.



   

   (이슬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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