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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함께_달리기 #세 걸음_내일

결석 게임 17_한 걸음 더....

by 이별난

함께

문 앞에 도착했다. 손잡이를 잡았다.


'탁탁탁'

안 열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탁탁탁'


뒤를 돌아보았다. 구신이 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기회라 게임이 끝난다.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문을 열어 보았지만, 잠겨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망가다 잡힌 느낌은 아니라서 괜찮다.


난 그들을 맞으러 다가갔다.


가장 먼저 오고 있는 것은 체념이었다. 피범벅이 된 무릎을 질질 끌면서 오고 있다. 내 앞에 와서 멈추더니 무릎을 꿇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뒤이어 하나둘 오더니, 좌절열등감이 마지막으로 도착해 멈춰 섰다.


다 모이자 구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그랗게

나를 둘러싸는데, 포위하는 것 같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일까?

나는 더 이상 술래잡기하며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이들이 해당 감정에 빠졌을 때,

내 모습이라 생각을 해서일까?

오히려,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보기 위해,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다 돌고 체념을 다시 보는 순간,

모두가 나에게로 한 걸음 더 조여 왔다.


어제, 오늘, 내일

결국, 이건 벗어날 수 없는 거였다


난 최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 오늘 지구가 자전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를 조여올 수 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제자리인 느낌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내일이 되면,

난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


내일이 오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난 눈을 감았다.


그래, 괜찮다.


두근, 두근,


어둠

이 심장박동처럼 어둠과 빛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퍼~엉

불이 꺼지고 암흑이 되었다.


큰 폭발음에 귀를 막았지만,

소리가 손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


삐이이---

,

,

귀가 찢어질 듯 아프다. 의식을 잃을 것만 같다.


라운드 내내 봤었던 지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6년 만에 선물처럼 다가온 아이. 뒤집고, 기고, 걷고,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결혼식장인가? 성인이 된 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뒤돌아 서있다. 곧이어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푸른 눈빛을 보았다. 난 손을 뻗지만, 잡을 수가 없다. 잡기에 너무 멀고, 잡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녀는 사라졌고, 난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상황에 이제 머리까지 멍해진다.


띠~잉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일어나."


귀가 망가진 건가? 통증이 안 느껴지고,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어떤 소리는 점점 약하게 들린다.


이----

.

.


,

,

---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는데 눈을 뜨지 못하겠다.

손을 펴고, 손 등을 위로 향했다.

감은 두 눈 위로 두 손을 올렸다.


두 눈썹에 처마처럼 가져다 댔다.

살며시 실눈을 떠 아래를 보는데,

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빛줄기가 발끝까지 닿고 있었다.

지붕이 되어준 손등에는 빛이 스며들어 따뜻해지고 있다.


그림자

'철컹'


무슨 소리지?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손을 살며시 내렸다.


깜짝 놀랐다.


주위에 검은 형체가 서있었다.


'으악.'

순간, 두려움과 겁이 덜컥 났다.


'후~우,'


'끼이익, 끼이익'

바닥을 보니, 쇠사슬이 끌려가고 있다.


두려움을 묶고 있던 쇠사슬 같다.

난 황급히 뒤돌아, 끌려가는 쪽을 보았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려 있었다.

구신이 일렬로 줄 서서 그 문을 나가고 있다.

분명히 난 붙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까 있던 출구 앞이다.

아직 이 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문을 넘고 있는 구신을 확인하니 두려움이었다.

재빨리 주위를 살펴서 두려움과 모습이 같은 검은 형체를 찾았다. 지우개로 지우고 있는 듯, 머리부터 아래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발까지 지워지고 있다.

출구 쪽을 보았다. 두려움이 문을 넘어 서서히 사라졌다.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멈췄고, 두려움의 검은 형체도 사라졌다.


구신의 그림자들이었다. 문을 나가는 순서대로, 그림자의 형상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마지막 구신인 열등감까지 모두 나가자,

모든 그림자도 사라졌다.


'덜컹'


문이 닫혔다. 재빨리 뛰어가서 손잡이를 돌렸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잠겨 버렸다.


문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며, 자리에 앉았다.


어둠

'펑'

조명이 꺼졌다.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펑'

조명이 나를 비추는 게 아니라, 아까 구신의 그림자가 있던 자리를 비쳤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조명이 켜진 쪽에서 들려왔다.


무언가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보인다.

나는 일어나서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눈 빛

가까이 가니, 9개의 빛나는 작은 눈꽃송이가 둥둥 떠서 반짝이고 있었다


한 발을 더 내딛는 순간,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슈우웅~'

이 빛들이 일제히 날아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빛줄기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듯,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더니 출구 문에 꽂혔다.


빛이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사라졌다.

내 작은 숨소리만이 들리는데, 시간마저 멈춘듯했다.


잠시 후,

사라졌던 하얀빛의 점이 점점 커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숨마저 멎을 것만 같았다.


팍!

문이 세상 모든 빛을 품었다가, 다시 모든 세상을 밝혀주려는 듯 빛을 내뿜었다.


눈이 너무 부셔 팔을 올리고 고개를 돌렸다.

빛이 약해졌고, 난 눈을 뜨며 문쪽을 보았다.


두 눈을 의심했다.


어릴 때 살던 집 안, 대문 앞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리둥절했다.


어제 한 걸음, 오늘 두 걸음, 내일 세 걸음

그리고 한 걸음 더....


1_2_3_4

걷다 보니, 초등학교 때 살았던 나의 집에 도착했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집을 돌아보았다.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곳곳에 묻어있는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3(삶)의 문에 들어가서 겪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했다.


내 인생에 끝없이 출석하며 날 괴롭히던,

영원히 결석시키고 싶은 감정의 형태들이었다.

마주치면 도망가고 싶지만,

어느새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었다.


수십 번의 계절이 변해도, 계속 일어나는 일이었고,

마음은 늘 구속의 계절, 이 한 계절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이 하나의 형태가 줄곧 지속되는 것 같았다.

이 집에서 보낸 4계절도 그랬다.


내 기억의 시작점인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해,

마음에 4계절을 그려보고,

구신의 형태를 4개로 만들어본다.


___


구_신(舊_新)

봄의 시작은 지난겨울의 해석과 맞물려 있었다.


구속의 신

날 사로잡던 감정들. 난 그것들이 구속의 신인 줄만 알았다.

날 꽁꽁 얼려버리던 감정들.


여름의 뜨거운 태양에도 녹지 않는다고, 방법이 없는 줄만 알았다.


구원의 신

이번 3(삶)의 문 마지막 끝까지,

아홉 개의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걸었다.


그 감정들이 날 살리는 구원의 신이 될 수도 있었다.

앞으로도 구속 같은 순간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나에게 달려있었다.


내가 씨를 안 뿌려놓고, 가을에 결실이 오길 바라는 게, 헛된 욕심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9명의 신

삶(3)의 문 매 라운드마다 만났던 9명이야말로

내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했던 구원의 신이었다.

지금 당장 함께 하기 힘든 그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들. 앞으로 만날 또 누군가.

진심을 다해 기억하고, 함께하고, 맞이하자.

내 삶이 구원받은 건 그들이 있어서였다.


겨울에 함께 해야 할 이들을 떠난 건 나였다.


_달리기

과거의 많은 날 동안, 걷는 걸 건너뛰고 달리려고만 했었다.


어제 한 걸음, 오늘 두 걸음, 내일 세 걸음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달라진 건, 전보다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난 신발끈을 꽉 묶었다.


이제 한 번 달려보자.


[70화 함께_달리기 #한 걸음_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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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함께_달리기 #세 걸음_내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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