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21_집 앞 마당까지...
"야, 그만 가자. 얘, 또 결석하려고 작정한 거 같은데?"
"한 번만 더 불러보고. 도중아, 학교 가자."
자훈이와 추화의 목소리다
"그만 가자니까"
"흠, 이 자식... 그래 가자."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조용해졌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더니 가버렸다.
반가운 것도 잠시
내 신경은 온통 옆집 안방에서 뛰쳐나온 것에 있었다.
분명히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
학교 안 가려고 숨어있던 나였다.
찾기 시작했다.
현관문은 잠겨있다.
유리창을 가까이 대고 안을 살펴보았으나 조용하다.
부엌창문이 열려있지만, 넘어가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연탄광에 숨거나, 담벼락을 넘어 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때 결석에 진심이었다.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게 하려고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담을 타 넘어 다시 나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내가 숨어있을 곳은 한 곳밖에 없다.
연탄광을 바라보았다.
엄청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게 문 밖에서도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며 안심부터 시키려 했다.
"안녕,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마당에 나와도 돼. "
이 아이가 세상의 마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집 앞마당까지는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 '....? 막고 있으면서, 나와도 된다고? 내가 마당에 못 나가는 건, 당신 때문인데. 좀 가면 안 되나?' ]
'끼이익, 끼이익' '쿵, 쿵, 쿵'
그 순간, 집 밖에서 소리가 나는데, 점점 커지고 있다.
쇠파이프를 자르고, 옮기고, 세우며 집을 짓는듯하다.
내 기억의 뼈대를 세우듯
내면의 집 앞 마당에 또 어떤 무대가 만들어지려나 보다.
누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솔~♬ 솔~♬ 솔~♬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도중이랑 화해는 잘했어?"
!
"아.. 그게... 아직요..."
어머니다. 너무나도 그리운 목소리에 정신이 잠시 멍해졌다.
어떤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싸운 애가 있었나?
연탄광을 주시하면서 대문 쪽으로 갔다.
지금 봤다. 쓰레기통 하나만 있고, 시계가 없어졌다.
사자는 눈을 감고 무표정으로 있다.
상황이 변해있다. 혹시 열릴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야, [두려움] 넌 왜 말을 못 해?"
그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솔톤의 톡톡 튀는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GO~♬ GO~♬ GO~♬
"어.. 욕심이도 왔네. 안녕."
"아주머니 잠시만요. 음, 음. 3... 2.. 1."
"어, 그래. 욕심아"
"Go~ 아주머니. 두렴이, 얘 도중이한테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지 아세요? 근데, 도중이가 계속 도망만 다닌다고요. 아셨어요? 두렴이, 얘 진짜 용기 없는 건 아시죠? 가뜩이나 얘가 화해하려고 큰 맘먹은 날이면, 도중은 도중에 샛길 빠지고, 그날 꼭 결석해요. 이런 건 알고는 계세요? 그리고요, 제 이름은 [헛된 욕심]이거든요. 어떻게 저를 욕심이랑 헛갈릴 수 있으세요? 욕심이는 눈이 있거든요. 전 눈이 없어 뵈는 게 없~GO! 아줌마는 나한테 1도 관심 없~GO! 도중이에 대해 아는 건 더 없~GO!"
담벼락에 걸터앉아...
오호. 나도 모르게 박수 칠 뻔했다. 말빠르기가 속사포 같다.
이건 소리만 들으면, 분명 랩에 소질 있는 아이다.
하하하. 이 아이 덕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알고 있다.
이 아이에게 빠져들면, 나 역시 눈이 먼다는 걸.
쇠사슬 소리의 두려움, 눈이 없는 헛된 욕심...
아까 대문을 먼저 나간 구신 중 둘이다.
난 수도꼭지를 밟고, 담벼락을 짚었다.
밖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 순간, 기억에만 존재하는 동네가 펼쳐졌다.
그리고 난...
뒤로 밀려 떨어질 뻔했다.
이 집을 나갈 방법으로, 담을 줄곧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왠지 또 도망가고 피하는 것 같아서,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안 나간다.
어린 내가 연탄광에 숨어 있고,
저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타 넘어 나갈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담을 넘기는커녕, 올라서 있을 수도 없다.
참새정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손으로 이곳저곳 만져보니 벽이었다.
구름과 새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벽에 비친 영상화면이었다.
이 상황이 대체 뭔지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나마 긴장이 풀리고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어머니의 목소리 때문인지, 저 구신 둘의 대화 때문인지, 연탄광에 숨어있는 어린 나 때문이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만 많아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이 집에 들어와 제일 평온한 시간이다.
담벼락에 걸터앉아 두발을 수도꼭지에 댔다.
지붕이 보인다. 저 위에 올라가 놀던 추억이 기와지붕을 타고 미끄러진다.
참~♬ 참~♬ 참~♬
"야~아, 욕심아.. 도중이 어머님께 왜 그래..?"
"아, 진짜. 너만 보면 속 터진다니까. 물러터져 가지고, 용기도 없고... 됐다. 나 먼저 간다."
"아... 야..."
"조심히 가. 욕심...아 이제 [헛심이]라 불러도 될까?"
어머니가 아이에게 작명까지 해주며 놀린다.
아이를 귀여워하며 미소 짓는 게 느껴진다.
"아, 짜증. 진짜 이 아줌마 스트레스 킹 받네. 그리고 두렴이! 너까지 왜 그러는데? 나 욕심이 아니라고! 아 짜증 나!"
헛된 욕심.. 아, [헛심이]가 폭발 직전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즐겁다.
"[헛심이] 너에게는 실례지만, 미안. 좀 웃을게. 하하하."
요즈음 참 무겁고, 참 진지한 분위기에 찾아온, 이 웃음이 참 좋다.
나도 [헛심이] 흉내 내 봐야겠다.
참~♬ 참~♬ 참~♬ 좋다. 하하하
'쿵'
갑자기 뭔가 쓰러졌다.
'끼이익, 끼익'
"야.. 괜찮아?"
"됐거든. 왜 내가 가는 길에 벽이 있는 건데? 아 짜증 나. 확 다 부숴버리고 싶네. 진짜 아침부터 화난다. 확 다 불 질러버리고 싶다."
참되게 감싸고, 참되게 피하고, 참되게 맞서고...
[헛심이]가 벽을 탓하며 짜증과 화를 내고 있다.
눈에 뵈는 게 없어 넘어졌고, [두렴이]가 부축하러 간 것 같다.
내가 알던 두려움의 이미지가 아니다.
[두렴이]가 [헛심이]한테 절절매는 듯하다.
당장 가서 족쇄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움직일 때마다, 따라붙는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아까는 그렇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왠지 짠하다.
"도중이 어머님, 저도 그럼 이만 가볼게요...."
"어, 그래. 천천히 조심히 가. 도중이한테는 두려움이 항상 손 내밀고 있다고 전해줄게."
"헤헤헤. 네. 걱정 마세요. 저 겉보기에 느린 것 같아도, 제법 정확히 잘 찾아가요. 키키키."
뭐지? [두렴이]의 억양이 바뀌었다. 말에 뾰족한 가시 하나쯤 돋아난 것 같았다.
"도중이가 아직 너랑 화해할 맘이 없을 수 있어. 진짜 너에게서 도망만 다닐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두렴이] 너! 도중이한테 단 한 발짝도 다가가지 마! 그냥 내버려... 두렴! 알았니?"
어머니 목소리도 단호하게 변했다. 흡사 아버지와 형에게서 날 지키려 할 때 톤이다.
".. 흠.. 흠.. 야! 욕심.. 아니, 야! 헛심! 같이 가!"
'끼이익, 끼익, 끽'
아, 쇠사슬이 점점 빠르게 끌린다.
듣기 싫어 귀를 막고, 허밍 하듯 소리를 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