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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7시간전

17화 빚과 빛

저울에 작은 떨림이 생기기 시작하다

빚과 빛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개인회생 확정 날인데 혼자 가면 우울할 것 같아서."


그녀는 이미 지안이를 가지게 되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빚 없는 떳떳한 엄마가 되겠다고, 지안이에게 빚만은 남겨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준비해 왔다고 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침 회의만 하고 바로 올게. 그동안 혼자 고생 많았겠네."


개인회생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이야기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아내를 안아주었다. 오히려 이런 빚에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나를 지원해 주느라 빚은 더 늘었을 거라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월요일 오전


"오늘도 다들 운전 조심히 다니세요. 이상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팀장님, 오늘 하루 잘 부탁드려요."


오후의 중요한 업무를 팀장과 함께 다시 확인하고 당부하였다.


"네, 지국장님. 잘 처리해 놓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아내를 태우고 난생처음 법원으로 향했다.


법원에 도착해서 개인회생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간이 되자 모두 자리에 앉았고, 법원 관계자가 들어와 판사석에 앉았다. 간단한 설명 후 본인 확인 절차가 진행되었다.


"OOO 씨, 총변제액은 OO원이고 한 달 변제 금액은 OO원입니다. 맞나요?"


이미 오랜 시간 준비하고 개인회생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본인 확인하는 자리였다.


"OOO 씨...(중략)... 맞나요?"


억 단위의 금액을 들으며 나는 매우 놀랐다. 경제개념이 없는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빚이 많을까? 놀랍기만 했다. 며칠 동안 개인회생에 대해 알아봤지만 현장에 와보니 글로는 알 수 없던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오늘 이 많은 채무자들은 법의 구제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맞이한다. 그래서 채무자들은 이 기회를 꼭 잡아서 잘 살아야 한다. 잠시 후, 한쪽에서 기업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항의하고 있었다. 이미 판결이 난 상황이었기에 바뀌지 않겠지만, 그의 억울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개인회생을 하면 채권자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법의 구제로 얻은 기회에 손해 보는 누군가가 생기기에 채무자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본인이 당한 억울함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채무자들을 그대로 두면 희망을 잃고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는 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채권자들의 항의와도 마주해야 한다. 법원의 보정명령을 위한 서류 준비도 만만치 않다. 아내는 홀로 이 과정을 틈틈이 해왔던 것이다. 그 많은 서류 준비와 마음고생을 아무도 모르게 해온 아내를 바라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아내가 호명되었다. 금액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내의 금액은 다른 이들을 훨씬 상회했다. 금액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 말 없이 차에 타서야 할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큰 금액인데 왜 진작 하지 않았어?"


"빚은 내가 진 건데, 개인회생 신청하면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이 악물고 책임지려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왜 해?"


"그때는 내 책임감이 목숨과 같았지만, 지금은 지안이를 지키는 게 내 목숨이니까."


그녀는 지안이만을 생각하며 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십 통씩 왔을 빚 독촉 전화와 문자, 그 어디에서도 빌릴 수 없는 돈, 대출을 받기 위한 금융서비스를 찾기 위해 대한민국을 샅샅이 뒤지고, 법정 최고 금리의 사금융마저 대출 부적격에 대한 좌절감, 카드 돌려 막기, 수차례 계속된 검색 정보에 끊임없이 오는 대출 상담 문자, 원금은 커녕 이자 갚기에도 허덕였을 수 년의 시간을 끝까지 버텨냈을 아내였다. 다행히 사채까지는 가지 않았다. 


일단 회생 신청을 하면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서 체크카드 이외의 많은 금융거래에 제한이 생긴다. 독촉과 빛 상환이 정지되어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개인회생 확정 판결을 받지 못하면, 정지된 기간 동안의 모든 이자와 원금 상환을 감당해내야 한다. 그런 날이 오면 모든 희망이 사라질 수도 있다. 피 말리는 이 기간에 일과 육아와 내조까지 해낸 것을 생각하니, 진짜 궁금한 빚의 원인이 있었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니다. 우리 뭐 먹으러 갈까? 고생했어."


애써 웃어보지만,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끝내고 자고 있는 지안이를 바라보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혼 전, 아내는 빚과 이혼 사실을 오픈했었다. 간호 일보다 하고 싶은 사업을 하려고 준비 중에 가까운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생긴 빚이었다. 이혼 사실은 궁금해하지도 않아서 물어본 적도 없기에 아직도 모르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그때도 나를 흔들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너 이런 것에 흔들릴 거야? 저울 균형 똑바로 안 맞출래?'


그러나 생각대로 잘 안된다. 결혼 8년 만에 의심의 싹이 트더니 안정적이던 삶의 저울에 작은 떨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빚이 왜 이렇게 많은데? 맞벌이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지? 내가 돈을 아예 안 벌었어도 생기기 힘든 금액인데 왜?'


풀리지 않는 물음만 가득하다.


결혼 전 비 오는 차 안에서


"나...(머뭇거리며) 사실 말할 게 있어."


"뭔데?"


"사실... 나 빚도 있고, 이혼 사실도 있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근데 그게 뭐? 빚이 얼만데?"


"2천만 원 정도."


"2억 아니고 2천? 둘이 갚으면 금방이겠네. 오히려 솔직히 얘기해 줘서 고마워. 다 지나간 과거인데 뭐. (해맑게 웃으며) 난 또 무슨 큰 일인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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