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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은의 비밀

#13 한겨울의 울음소리

by 에스더쌤


"으앙으앙으~~~~~~앙앙앙~~~~"


아기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나에게 동생이 생겼다.

그런데 아기의 울음소리보다 내 울음소리가 더 컸다.

영남이는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마침 영자 돌림이라 큰언니가 부모님을 졸라서

막냇동생 이름을 영남이로 짓기로 했다.

남자이름 같은 건 상관없었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너무 예쁘고 멋지니까.


그런데 내 울음소리는 막내의 소리보다 훨씬 컸다.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밤낮 울어대니

이웃들도 참다 참다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아기 때 아빠는 교도소에서 목공 일을 죄수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다.

육체적으로 소진되었던 아빠는 집에서도 쉴 수가 없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늦은 밤부터 아기가 울어대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갓난아기를 재워놓고

큰소리로 울어대는 나를 업고 나가서 어르고 달래다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나는 아기 때만 울어댄 것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울었다.

배가 고파도 울고, 옷이 까슬거려서 울고,

짜증이 나서 울고, 운다고 다들 뭐라 하니까 또 울었다.

대여섯 살이 되어 우는 것이 좀 나아졌을 때,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항상 물었다.

실은 막내 영남이와 헷갈려서 물었다.


"아직도 울어예?"


"진~~~~~짜 많이 울었지예?"


"이제는 좀 괜찮은교?"



어느 추운 한겨울날, 나는 동네 어르신한테 받은 백 원짜리 동전을

잃어버릴까 봐 꼭 쥐고 자고 있었다.

두꺼운 명주솜이불은 따뜻했지만 너무 무거웠다.

이불을 덮은 나머지 공기는 바림이 쌩 지나는 추운 한겨울이었다.

아무리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문을 닫아 놓아도

외풍이 심한 주택이었다.

바닥은 연탄보일러로 절절 끓는 듯한데,

코는 시원하다 못해 시렸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다.

갑갑하고 답답했다. 뭐라 말로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급기야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이 안 느껴졌다.


"동전이 어데 갔노?"


"으앙~~~~으~~앙~~"


시끄러운데 이력이 난 언니들은 잘도 자건만,

내 울음소리에 막내 영남이도 깨고,

엄마 아빠도 잠이 달아났다.


"내일 찾아줄게, 아이다. 여 있다. 백 원."


"아이다, 내 거 아이다. 내 동전 어데 갔노? 으앙 으~~~앙~~~~"


엄마아빠는 이불을 들어도 보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동전을 찾을 수 없었다.

그까짓 백 원이 부모님의 혼을 쏙 빼놓았다.


나는 왜 우는지도 잊은 채 그칠 줄 모르고 울고 또 울었다.

어르고 달래던 아빠는 피곤에 지쳐서,

확 정신이 잠깐 나갔다.

가시나 똥고집을 꺾어야겠다는 마음과,

확 분노가 솟구쳐 내 두 발을 잡아들고 거꾸로 든 채,

한겨울 살얼음이 낀 고무물통 뚜껑을 열어젖혀서

영은이의 머리를 담근 것이다.


집집마다 커다란 고무물통이 몇 개씩 있었다.

수시로 수도가 얼었고,

단수인 경우가 많아서 미리 물을 받아놓은 것이다.

엄마가 소리를 치고 말리지 않았다면,

내 몸 전체가 물속에 빠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를 죽일라고 그라예, 그만 하소."


"..."


순간 영은이 아빠의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순간 머리가 삥 돌면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이후로 한동안 나는 잘 울지 않았다.

울지만 않으면 괜찮은데 말도 잘 안 했다.

밥맛을 잃었다.

너무 안 먹으니까 얼굴에 새하얗게 버짐이 올라왔다.



며칠 뒤, 뉴스에서 맑을 거라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따뜻한 부산에서는 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년에 한 번 오더라도 찔끔 내리고, 금방 녹고.

그런데 그날은 함박눈이 내려 제법 쌓였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던 내 마음은 위로를 받았다.


엄마가 떠주신 까슬까슬한 스웨터가 답답했지만,

밖에 나가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눈이 내리는 날씨에 밖에서 실컷 놀았다.








아름다운 겨울 출처:네이버이미지






이후로도 가끔 폭발하듯 울면서 생떼를 쓰긴 했지만,

나는 제법 괜찮아지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에게 겨울은 끔찍한 기억이 무의식 속 깊은 곳으로 자리 잡은 고통인 동시에,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한 계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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