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69.
-담배 좀 끊어.
-싫어.
-나한테서 담배 냄새나?
-아니, 그건 아닌데 건강에 안 좋잖아.
-정신건강에는 좋아.
-핑계는
-너는 이런 거 하지 말어라.
-아저씨 같아.
-나 아저씨 맞는데.
-그렇게 쉽게 인정해 버리면 할 말이 없잖아.
-되게 잘생긴 아저씨.
-잘생긴은 빼고.
-그게 핵심인데.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맨날 집에서 잠만 잔다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안 떠오르는데.
-있어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놀이공원?
-놀이공원?
-응, 별로야?
-아니 뭐···
-썩 탐탁지 않은 표정이네.
-아닌데? 놀이공원 좋은데?
교복을 굳이 돈을 주고 빌릴 필요가 없었던 고등학교 2학년, 이번 생일은 조금 더 시끄럽게 보내자 약속했었던 우리는 생일이 있었던 주 주말에 놀이공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지원이는 무사했다. 놀이공원에 가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도 지원이었으니까.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새벽부터 아침까지 나는 뜬 눈으로 지원이를 일상으로 다시 데려올 108가지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첫 번째 계획을 써보기도 전에 이미 지원이는 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게 더 가슴이 아팠다.
-내가 주말까지 교복을 입어야 돼?
-다 추억이지. 입고 와.
-그냥 가자. 부끄러워.
-부탁이야.
-뭐야,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내 부탁인데도?
- ···이게 부탁이냐.
-입는 걸로 알게. 나 혼자만 입고 나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가버릴겨.
지원이의 부탁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있지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그래라. 난 안 입을겨.
-입고 올거 알아.
-진짜 안 입을겨.
-진짜 집에 갈겨.
-그럼 나 혼자 자이로드롭도 타고, 바이킹도 탈겨.
-집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버릴겨.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 제가 추천해 드릴 노래는
이상은-언젠가는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