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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Mar 12. 2024

진정한 경험이란 무엇인가

경험만 한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깊이 사색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질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행위 전부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몰입이 과하게 변질되면 그 한 분야를 제외하고서 모든 부분에서 문외한이 된다. 사실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때문에 만사 제처 두고 한 가지만 파는 것은 어려운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둔 사람들은 깊이가 없다.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신빙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분별없이 많은 경험으로 축적된 잘못된 경험은 오히려 더 보수적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내가 경험했으니,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가 생각의 중심이 될 위험이 있다.


    사람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데서 오류를 범한다. 나무와 숲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좁고 깊은 곳에 파고드는 행위와 넓고 다양한 곳을 보는 행위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인간 뇌의 용량은 유한하고 그 모든 것은 담을 수는 없다. 결국 어떤 커다란 정보 하나를 담으면 다른 자잘한 것들이 희석되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경험한 것을 어떻게 잊냐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인간은 부정할 수 없는 망각의 동물임에도 말이다.


    당장에 철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철학자의 일대기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국어국문학과는 맞춤법을 틀리고, 문예창작과는 글을 쓰지 못하고, 일어, 불어, 영어의 어문학과 학생들이 그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람들이 잘 못살거나, 하나도 활용을 하지 못하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잊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뇌를 한탄하는 한 예로 든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크고 높은 산처럼 많은 경험은 작고 낮은 산의 풀 한 잎처럼 적은 경험과 다르지 않다. 너무 많은 것도, 너무 적은 것도 옳지 않다는 소리다. 가장 어려운 난제이나 우리는 중용을 지켜야 한다. 적당한 경험과, 적당한 사색이 우리에게 지혜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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