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늦깎이 유학시절 스웨덴에서 나는 등하교길을 30분씩 물을 따라 걸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없을 것 같았는데, 바람이 없는 날 물은 얼음처럼 보였다. 그러던 물은 바람이 불자 물결이 생기고 흘렀다. 오래전 물을 바라보았을 땐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좋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사라져서 좋다. 세상엔 배우지 못한 것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았다. 생각은 한 번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데 요즘은 그 중 하고 싶은 것들이 명료해지고 있다. 커다란 타원의 급경사 부분을 느리게 통과하고 있는 듯하다.
물이 푸른 것은 하늘을 비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늘이 푸른 건 그것이 깊고 높아서 라고. 깊은데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으면 그것은 푸르름이 된다고. 마치 백인의 눈동자에 멜라닌 색소가 없어서 푸른 눈동자를 갖게 된 것처럼. 그렇게 없음은 푸르름이 되고야 만다. 역으로 푸르름은 비어 있음이고, 멀리서 그것을 그리워할 때 나는 비움보다 푸르름에 이끌렸다. 무엇과 무엇이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 같은 거라고 해도 나를 설득시키는 건 푸른 하늘을 물빛 아래 반사하는 아름다운 풍광이곤 했다.
풍경이 아슬아슬하게 파문을 따라 흘러도 나는 물결속에 숨은 시옷을 여전히 주시할 수 있었다. 푸름이 시옷이 나를 한동안 이끌었고 이제는 도시의 구석마다 서로를 반사하는 풍경들을 카메라로 포착하곤 한다. 카메라는 우리의 눈과 닮아서 스스로를 반사하거나 흡수하거나 한다. 그것은 물이 하늘을 비추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나의 촉수는 그런 반추를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해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자주 빛과 그림자를 동반하였는데 빛과 그림자 원형과 반사된 현상은 어떤 규칙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반사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투사된 자신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들도 서로를 머금거나 반사하면서 서로에게 닮아 간다. 많은 레이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반사하거나 반추하는 일상의 풍경들은 그것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다. 나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는 여러 갈래의 장면들을 그리고 발견하고 싶다. 어느새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통과하는 삶에 보다 가까이 그리고 깊이 다가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당신은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