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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Jan 13. 2021

아빠도, 레고

어벤져스 어셈블

아들도, 레고

아들이 올해로 6살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레고를 좋아하던 아들은 5살이 되자 레고 신제품 카탈로그를 보물처럼 가지고 다녔습니다. 한 권으로는 부족했는지 레고를 사러 갈 때마다 카탈로그를 받아서 모았습니다. 카탈로그를 얼마나 애지중지 다루던지요. 얇은 종이가 찢어지면 세상 서럽게 울고, 테이프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붙여주었습니다. 마치 마법책처럼 어디를 가든 들고 다녔어요.


이런 것도 유전은 아니겠지만, 어릴 적 저도 레고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만요. 레고는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는 더 비싸게 느껴졌어요. 집안 형편이 원하는 대로 레고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진 않았습니다. 레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가던 날에는 한참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아들이 레고를 사달라고 하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사줍니다. 어릴 적 제 모습을 생각하면서요. 가끔은 제가 더 적극적으로 레고를 고르고, 아들에게 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레고는 분기에 한 번씩 출시됩니다.

2021년 레고 신제품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분기별로 레고가 출시되는데, 연초에 가장 많은 신제품이 나옵니다. 그 후로는 분기마다 조금씩 새로운 레고가 입고됩니다. 저는 분기가 시작되는 월에는(1,4,7,10월) 레고 매장에 가서 가장 먼저 “신제품 카탈로그 나왔나요?”라고 물어봅니다. 분명 분기마다 카탈로그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카탈로그는 제 때 들어오지 않아요. '왜 그런가요! 레고 직원분들?' 보통 제품 판매를 위해서는 분기 시작 바로 직전에는 카탈로그를 매장에 배치해야 하지 않나요? 공손히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빨리 주세요. 어린아이들 그리고 아빠도 너무 기다리지 않게요.


아무튼 매 분기마다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자주 매장에 가서 사장님과 안면을 친분을 쌓아둔 덕분에 가끔은 여유분의 카탈로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들은 카탈로그를 받아 들면 레고를 살 때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배꼽인사를 하고 나옵니다. 레고는 하나뿐이지만 카탈로그에는 미래에 살 레고가 가득하니, 어쩌면 레고를 사는 것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서 2021년 신제품이 나올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레고 홈페이지에 있는 신제품을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들은 역시나 테크닉 시리즈의 파란색 자동차를 골랐습니다. 유명한 명품 자동차네요. 아들은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좋아해서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와 모델명을 외우고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이런 자동차를 2대를 사서 타고 다니겠다고 하네요. 파란색 자동차가 얼마나 비싼 자동차인 줄 알까요? 그 비싼 차를 2대나 사 줄 수는 없겠지만, 레고라도 사준다는 마음으로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1월 5일 즈음에 새 제품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제 플래너에도 소중하게 일정을 적어놓습니다. 주말에 가야겠다고 계획했는데, 폭설이 내려서 토요일은 차마 갈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일요일 아침이 되자 이번 주가 아니면 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파란색 자동차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아들에게 레고 사러 가자고 툭 던져봅니다. “으잉? 이게 갑자기 무슨 횡재냐?”라는 표정으로 아들이 저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기쁨에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이런 걸로 기뻐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주리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하네요. “아직 100점을 못 채웠는데?” 사실 100점을 채우면 사고 싶은 선물을 하나씩 사주었는데, 상의도 없이 레고를 사준다고 하니 아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신제품 파란색 자동차가 계속 떠다닙니다. 작년에도 아들이 사고 싶었던 테크닉 차를 못 사준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용기 내 봅니다. 아들과 단 둘이 다녀오겠다고 호기롭게 말해봅니다. 평소에는 엄마 껌딱지인 아들도 레고나 장난감을 사러 갈 때는 30분은 기본이고 1시간을 뒷좌석에 혼자서 꿋꿋하게 앉아 있습니다. 보상이 주는 힘은 이런 걸까요?


일요일이라 올림픽대로도 강변북로도 정체가 없어 30분 만에 레고 매장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자주 가는 매장은 용산에 있습니다. 레고 덕후들도 가끔씩 들렸다가는 유명한 매장이죠. 주차를 하고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매장으로 향합니다. 아들이 잠깐 미끄러질뻔했으나, 꼭 잡은 손으로 다시 끌어올립니다. 그렇게 부자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은채 매장으로 향합니다.


레고 테크닉 VS 어벤져스

주말 직전에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평소라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매장에 저희만 있습니다. 다행히 신제품이 매장 가득 들어와 있습니다. 아들은 “우와!! 아빠, 여기 좀 봐요”를 연신 외치면서 매장을 빠르게 스캔합니다. 저는 가장 먼저 그 파란색 차를 찾아봅니다. 정말 다행히도 딱 2대가 남아 있네요. 행여나 누가 먼저 사갈까 싶어서 바로 집어 듭니다. “아들, 파란색 차 들어왔다.”라고 더 신나서 이야기했는데, 아들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분명 자동차를 산다고 했는데, 어벤져스 레고 앞에서 기웃기웃하면서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을 집어 들더니,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신제품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아빠, 이거 봐봐요. 새로운 어벤져스에요. 7세 이상이라고 적혀있어요.” 정말 7세라고 적혀 있습니다. 파란색 자동차로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옆구리에 소중하게 끼고 있던 그 차를 보여줍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쿨하게 “일단 이거부터 볼게요.”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역시 아이들의 마음이란. 이걸로서 순위는 확실히 정해졌습니다. 레고 시티 < 해리포터 < 스피드 < 테크닉 < 배트맨 < 어벤져스 순으로 좋아하는군요.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저는 저만의 즐거움을 찾아 나섭니다. 그 파란색 차는 여전히 한 손에 꼭 잡아들고서요.


해리포터 원서 읽기에 빠져있는 저는 해리포터 신제품 쪽으로 발을 옮겨봅니다. "이번에는 호그와트 성이 없네. 대신 마법 수업별 새 제품이 들어왔구나!" 하면서 아들의 관심을 끌어봅니다. “아들, 해리포터도 새로운 게 나왔다.” 아들은 시선을 어벤져스에 고정한 채로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시크하게 말합니다. “응. 이미 봤는데, 그건 다음에 사요. 아빠.” 살짝 당황하면서 조용히 말해봅니다. “아빠는 해리포터가 좋은데...”


어벤져스 어셈블

그렇게 한참을 하나씩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던 아들은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했습니다. 그 파란색 차냐고요? 이미 파란색 차는 어벤져스를 보는 순간 1순위에서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이번에는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 두 개를 가지고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파란색 자동차의 2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의 레고이지만, 아직은 돈의 개념을 잘 모르는 아들은 두 개를 들고 머뭇거립니다. 항상 레고는 하나만 사야 한다고 강조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선뜻 둘 다 사달라고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것이죠. 모른 척하고 다시 파란색 자동차를 내밀어 봅니다.(아빠의 집착인가요.) 바로 거절하네요. 그래서 물어봅니다. “오늘 자동차 안사고, 어벤져스 살 거야?”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응. 이거 살 거예요.”라고 대답합니다. 아들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토르냐 캡틴 아메리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엄마가 없을 때 점수를 좀 더 따 볼 생각으로 한마디 던집니다. “아들, 둘 다 사줄까?”라고요. 그 순간 얼굴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바로 두 개를 집어 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산대로 향합니다. 아빠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사겠다는 작전인 거죠. 여전히 제 손에는 파란색 자동차가 들려있지만, 차마 내려놓지 못합니다. ‘다음 주에 오면 분명히 없을 텐데’라는 생각은 마음속에서 확신으로 변합니다. '다른 데서 좀 아끼고 이것도 사자'라고 생각하면서, 아들 몰래 조심히 들고 와서 사장님께 포장을 부탁합니다. "파란색 자동차는 겉면이 안 보이게 부탁드릴게요"


아내에게 왜 이렇게 레고를 많이 샀냐고 핀잔을 잠시 들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제 판단이 옳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다음 주엔 없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아빠도 레고를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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