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다시 공장 안으로

2024년 3월 11일 - 노동조합 이동사무실의 시작

by 기록하는노동자

※매주 목요일 발행되는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일기입니다.


회사는 2023년 9월 8일, 노동조합 위원장을 부당해고한 뒤 회사 시설 출입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공장을 돌며 조합원들과 만나려 했지만,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출근 차량 안의 조합원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후 고용노동부의 질의회시와 행정지도를 통해, 점심휴게시간 1시간 동안 공장 내 식당에서 노동조합 이동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첫날, 안산공장에 들어갔던 날의 기록입니다.
공장 문 앞에서 여섯 달

2023년 9월 8일, 회사는 나를 부당해고했고, 그 즉시 “해고자는 공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통보를 내렸다.
그날 이후 여섯 달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공장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전국의 공장을 돌며 조합원들을 만나려 했지만, 가능한 시간은 아침 출근 전과 퇴근 이후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장 앞에서, 차창 너머 손만 흔들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노동부 질의회시가 길을 열다

방법이 없진 않았다.
나는 고용노동부의 질의회시집을 닳도록 읽었고,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수차례 민원을 넣었다.
“해고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장 출입을 막는 것은 안 된다.”
“근로시간 외,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조합 활동은 보장해야 한다.”
그 판단을 근거로 고용노동부가 행정지도를 내렸다.
회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점심휴게시간 1시간, 공장 식당 내에서만, 사전 통보를 조건으로,
이동사무실 운영이 가능해졌다. 작은 균열이 생겼다.

점심시간이 있으면서도 없는 공장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레미콘 공장은 특성상 점심시간이 제각각이다.

공정팀은 교대로 식사하고 금세 출하실과 생산시설 유지보수를 위해 복귀한다.
관리팀은 식사 중에도 전화벨 소리에 쫓기고,
영업팀과 품질관리실은 현장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 점심시간엔 얼굴 보기조차 힘들다.

그렇게 ‘1시간 허용’이라는 문장은 현실에서 ‘5분 조우’로 바뀌었다.

안산공장, 첫 방문의 긴장과 설렘

첫 방문지는 안산공장이었다.
조합원들과 점심시간에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향했다.
도착 직후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자, “사무실엔 오지 말고 밖에 있어달라”고 했다.
이후 공장장이 직접 나와 식당 구석의 가림막 설치된 테이블을 안내했다.

노조 위원장을 직원들 눈에 띄지 않게 숨기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최소한의 배려였을까?
그 경계에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식사와 조합, 그 사이의 5분

식당 문이 열리고 익숙한 듯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아직 얼굴과 이름이 다 일치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려 애썼다.
짧은 시간 동안 안부를 나누고, 간단히 계획을 설명했다.
커피와 간식을 건네며 “괜찮냐”고 묻고, “힘내라”는 말을 들었다.

일부 동지들은 조금 더 머무르며 현재 상황을 묻고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은 업무 교대 때문에 10분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떠야 했다.

그래도 분명히 느껴졌다.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조합은 아직 살아 있다.”

이동사무실이 남긴 의미

점심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안산공장 조합원의 절반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은 가득했다.
짧은 만남 속에도 조합원들의 응원과 단결의 의지가 손끝에서 전해졌다.

내일부터는 더 많은 공장, 더 짧은 시간, 더 복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동사무실의 한계를 다시 체감했지만,
공장 안에서 다시 말할 수 있게 된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전진이었다.

나는 다시 공장 식당을 밟았다

오늘 내가 다시 이 식당의 바닥을 밟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노동조합이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증거다.

내일은 더 많은 조합원의 손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공장, 이 식당, 이 자리에서
더 당당하게, 더 오래 머무를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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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단지 나의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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