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이이즘 VOL.1 -서울시50플러스서부캠퍼스 남경아 관장
서울시가 100세 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서울시50플러스재단. 그중 서울혁신파크 내에 위치한 서부캠퍼스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첫 번째 캠퍼스다. 희망제작소 시절부터 100세 시대 사업을 맡아 왔으며, 전 세계 ‘50+세대’의 혁신적인 도전 사례와 콘텐츠를 국내에 적용해 온 서부캠퍼스 남경아 관장을 만나 나이듦 준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50+세대란?
평균수명 연장으로 인해 인류 최초로 100세 시대를 살게 된 만50~64세의 중장년층을 의미한다. 유럽, 미국 등에서는 일찍부터 50+세대를 위한 적극적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2030세대가 갖는 나이듦에 대한 걱정, 두려움이 예전보다 커진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20대는 생애주기상 ‘방황의 시기’라 불릴 만큼 불안감이 큰 시기예요. 이런 불안감이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안의 내용이 전보다 다양해지고 길어진 건 사실이죠. 일단 20대의 가장 큰 이슈는 취업과 진로잖아요. 그런데 미래는 더 불투명해졌고, 완전고용이라는 개념도 이미 붕괴했어요. 또 개인의 욕구들이 너무나 다양해졌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는 걸 원치 않죠. 또, 결혼적령기가 의미 없을 정도로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서 이로 인한 주거 형태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변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들이 원인이 될 수 있겠죠.
2030세대가 나이듦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거나 해소할 방안이나 실마리가 있을까요?
사실 어쭙잖은 충고가 될까 봐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정답은 없고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의 답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한다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자기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정보, 새로운 관계망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점은 다 다르지만, 삶의 의외성이나 다양한 경험이 영감을 주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혼자 떠나는 여행도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고, 계획을 이탈하는 경험도 괜찮고요(웃음). 또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절대적인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죠.
2030세대에게는 노년기가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노년기에 대한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노년기에 대한 준비는 10, 20대에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지금 나이에 0.7을 곱해보세요. 이게 100세 시대를 살아갈 진짜 나이거든요(웃음). 현재 노인복지법에 노인은 65세 이상으로 규정돼 있는데, 평균수명이 50세가 안 된 1880년대에 정한 거예요. 평균수명이 2배나 늘어났는데, 기존의 생애주기를 고수하는 건 적절하지 않죠. 현재 70대는 과거의 50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100세 시대는 도래했어요. 30세부터 80세까지 50년 동안, 어떻게 일과 활동을 할 것인지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건 사실 매우 현실적인 문제예요. 최근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근속연수가 가장 긴 기업의 평균 근속 기간이 15년이 채 안 돼요. 단순 계산하면, 어렵게 시험을 통과해서 서른 살에 대기업에 들어가도 마흔다섯 살에는 나와야 한다는 거죠. 개인으로 봤을 때도 한 가지 직업이 100세 시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건 불가능하고요. 앞으로는 누구나 동일직종이 아닌 아예 다른 영역으로 두세 번 전직할 거예요. 이런 흐름을 알고, 미리미리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거죠.
하지만 막상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부모세대를 답습할 게 아니라 다양해지는 직업의 세계, 삶의 모델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해야 해요. 과거에는 제1섹터(정부), 제2섹터(민간기업)에서 일자리가 나왔지만, 앞으로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제3섹터(사회적 경제)에서 일자리가 많이 나올 거예요. 낯선 섹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3섹터 전문가들도 필요할 거고요. 또 요즘 청년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주택 지원정책과 대안적 주거운동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형태는 무엇인지,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 알아야 좀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겠죠. 지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여성·중장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기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니까요.
생애 후반기 일자리는 2030세대의 일자리와 개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0~30대에 직업을 선택할 때는 ‘성공, 안정’이란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퇴직 및 은퇴를 맞이하는 시기는 생애주기상으로도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내려가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고 봐요. 일자리의 형태도 생애 전반기처럼 하나의 직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일감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후반기 일자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적정 소득과 사회공헌, 개인적 성취감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공헌 일자리’예요. 50+세대가 가진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기반으로 사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경력을 탐색할 기회를 마련하는 거죠. 실제로 청년과 장노년의 주거공유를 돕는 ‘한지붕세대공감 코디네이터’나 청소년들의 진로상담을 도와주는 ‘취업진로전문관’, ‘청소년시설50+지원단’ 등 다양한 세대통합형 사회공헌 일자리가 이미 많이 창출됐고, 또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다양한 50+지원 모델들을 만나오셨는데요, 그중 인상에 남은 사례나 프로그램이 있으신가요?
거창한 사례보다는 지역에서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모델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속한 지역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일이나, 젊은 세대와 함께 나누는 모습 같은 거요. 영국의 ‘캠든 타운 셰드(Camden Town Shed)’는 퇴직 후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남성들이 함께 작업하는 목공 클럽이에요. 일반 기업에서는 단가가 안 맞아 만들지 못하는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데, 중년 남성들이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만난 ‘니트를 짜는 할머니들의 모임’도 정말 신선했어요. 할머니들이 일주일에 한 번 구청 공동 공간에 모여 니트를 짜고, 전시도 하고, 젊은 세대에게 나눠주기도 해요. 일상적인 문화가 다양하게 살아있는 건강한 노년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외국의 경우 기업이 퇴직 이후의 일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국내 기업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나요?
IBM이나 인텔 같은 경우, 퇴직을 앞둔 자사 직원들을 1~2년 정도 공익단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미리 파견해서 문화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그 기간 동안 회사가 안정적으로 급여를 제공하고요. 국내에서는 한화생명에서 이런 모델을 시도했었고,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서 그런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광범위하지는 않죠. 아직은 전직 프로그램을 논하는 것 자체가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사회적 분위기라 도입이 더 어렵기도 해요. 그러나 한국은 OECD 국가 중 평균 퇴직 연령이 가장 낮은 국가예요. 기업들이 책임감 없이 직원들을 내보낼 게 아니라 제2의 인생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1~2년 동안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가 있고, 앞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훨씬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상관없이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한 일상의 기술도 필요할 거 같아요.
일단 내 몸을 지키고 돌볼 수 있는 건강 스킬이 필요하겠죠. 산책을 꾸준히 한다던가, 수영을 배운다던가, 등산하러 다니는 습관도 좋고요. 또 50+세대에게 많이 얘기하는 게 부업 스킬이에요. 만약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 작가에 도전하거나 독립 출판을 해볼 수 있잖아요? 취미나 좋아하는 걸 부업으로 연결해보는 거죠. 또,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길어진 노년을 함께 할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해요. 생애주기가 길어지면 누구나 1인 가구로서의 삶을 사는 시기가 와요. 노년기의 건강, 활동, 관계를 유지해 줄 수 있는 일상의 기술은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습니다.
50+세대는 지금 2030세대의 부모세대이기도 합니다. 서로 간의 대화나 소통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자녀와의 관계 맺음은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저도 큰 애와 일상대화가 잘 안 돼요(웃음). 카톡 대화가 오히려 진지하고 편하죠. 저는 “20살 넘은 자식은 특별한 관계의 남남으로 봐라”라는 말에 100% 동의합니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녀와의 관계도 기존과 다르게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50+세대 중에 자식과 같이 살겠다는 사람은 없어요. 결국 내 노년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거죠. 겨우 장만한 아파트 한 채를 반으로 쪼개 자식에게 물려준 후, 정작 자신의 노년을 걱정하는 상황은 우리 세대에서 종결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출발을 근사하게 하면 좋죠. 하지만 우리가 진짜 물려줘야 할 것은 ‘제발 나처럼 살지 마’가 아닌 ‘60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노년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노년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노년 당사자가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첫 번째일 거 같아요. “신체적인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60~70세가 되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고, 나쁘지 않아.” “엄마, 아빠는 돈은 좀 없지만 나처럼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이런 긍정적인 언어들이 노년 당사자들에게서 많이 나와야죠. 또 당사자 주도의 문화가 중요해요. 지금까지 노년 문화는 굉장히 타자화 돼 있었어요. ‘액티브 시니어(은퇴 이후에도 소비·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란 말은 경제적 생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보험회사는 노후자금으로 9억, 10억을 이야기하며 공포 마케팅을 해요. 정부에서도 임금피크제, 정년 연장 등 정책만 얘기하는데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편다고 해도 삶에서의 직접적 체감도는 낮아요. 작더라도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만들어가는 당사자 주도의 변화가 더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2030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사실 현재 2030세대가 살아갈 사회가 참 걱정돼요.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참 많거든요. 예를 들면 미세먼지나 주거 문제 같은 거요. 그래서 청년세대를 생각할 때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해요. 50+세대가 공통으로 갖는 사회적 책무, 의무감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세대들이 머무는 현재가 불안의 시기라는 건 너무나 공감하고 부정할 수 없어요. 그러나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생애주기가 길어졌다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면도 있어요. 시기가 다를 뿐 좌절 없이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긴 안목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고, 주위에 함께할 이들을 꼭 만들기 바랍니다.
text 나이이즘 에디터 한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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