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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akong Jun 18. 2019

어쩌다 보니 애 둘 엄마

어쩌다 보니 애 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외동딸이어서 아이는 꼭 2명을 낳고 싶었는데, 뭘 몰랐던 어렸을 때도 출산이 무서웠던 건 알았는지 쌍둥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다. 그 생각이 이렇게 실현될 줄이야.


둘이서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재미나게 노는 것을 볼 때, 아직 서툰 언어로 서로 대화하는 것을 볼 때면 '쌍둥이여서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행복이 차오른다. 하지만 이 닦고, 옷 입고, 신발 신고..이 모든 일을 2번씩 해야 하는 건 정말이지 지치는 일이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세수하고, 이 닦고, 양말 신고, 옷 입는 일련의 과정이 왜 어렵고 지치는 것일까..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육아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이지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이들은 진짜 제멋대로고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눕고 울기 시작한다. 하아..좋은 엄마, 아이의 감정을 헤아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언제나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엄마로 겨우겨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과 이렇게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에게 털린 마음을 얼른 다시 복구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어쩔 때는 그 상태가 쉽게 회복되지 않아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반찬 준비하고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다. 나는 살림과 요리에 재능도 없어서 남들보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나는 대충 먹고, 옷도 대충 입고..그렇게 매일을 보내게 된다. 물론 내가 게으른 편이라 더 그렇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나는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한때는 나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었고, 영화와 공연 보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었으며, 각종 연예정보와 TV프로그램에 빠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맛집 정보도 모르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 입맛 잃은 사람이 되었고, 아이들 때문에 극장과 공연장을 가본 지는 정말 오래되었으며, 동요와 친숙하게 보내는 그런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기 이전의 나의 모습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회사에 복귀해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런 나의 삶.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기에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한다거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너무도 다른 나의 삶이 그립고 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라는 삶 이전에 존재했던 나의 청춘, 나의 삶..


어렸을 때 나는 엄마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청춘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다. 학창시절에 어렴풋이 '엄마도 이럴 때가 있었겠지' 생각은 했었지만, 그게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얼마나 큰 인생의 한 부분이었을지 알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도 모르겠지. 아이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만이 존재했으니까. 나의 엄마가 엄마 이전의 삶이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처럼, 우리 아이들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얘들아, 엄마도 엄마로 태어난 건 아니야. 엄마도 너희처럼 어린 시절을 겪었고, 친구와 밤새워가며 이야기하며 놀기도 했었고, 짝사랑도 해봤고, 성적과 취업으로 고민도 해봤고, 예쁘게 옷 입고 맛있는 것을 먹고 지내기도 했었어. 엄마로 사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너희들은 모르겠지? 그래도 언젠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엄마도 엄마라는 무게가 너무 힘들 때가 있었고, 엄마가 처음이라 생소하고 어려운 것이 많았다는 것을. 그래서 너희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때도 많았고, 엄마가 아닌 나의 삶을 찾고 싶은 적도 많았다는 것을.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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