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크는 이야기
첫째의 첫 번째 타자.
제목도 잘 보이지 않는군.
어제, 내가 잠들기 전 열심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글이 쓰고 싶다고 나의 노트북을 제 앞으로 가지고 가는 서.
자기도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댄다.
그래, 나도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굳이 무엇을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키보드 위에서 내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길 바라던 순간도 있었지.
하지만 너의 글을 보니 그런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아직 글에 대한 개념이 없는 넌,
네가 두드려 나타난 글자들이며 숫자의 향연이 꽤나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서야. 뭐라고 쓴 거야? 읽어줘~'라고 물으니
'엄마가 읽어봐.'라고 당당히 말한다. 아. 읽어보라니 ㅋ
'이...됴...홇....됴..혿???'
뭔 말인지 알 길 없는 글을 읽어는 주었는데,
녀석은 그저 신기한 눈치다.
이렇게 자판에 쓰여 있는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짚어가며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한글 공부도 되지 않을까 싶어,
백만 년 만에 한컴 타자가 노트북에 있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 아직 있다!!
사실 요즘엔 워드를 더 많이 쓰고, 워드보다는 핸드폰에 있는 노트를 더 많이 쓰는 시대긴 해서
아래아 한글을 쓰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라떼는 말이야~~~' 아래아 한글 능력 시험을 따로 보고, 그 자격증을 따려고 열심히 시험도 봤더랬다.
그러다 나는 방송작가라는 일을 하게 되면서 한글을 많이 사용해서 대본을 썼다.
작가들은 그래서 실은 한글이 굉장히 익숙하고도 돈을 벌어다 줬으니 고마운?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나, 일을 할 때 여전히 워드보다는 훨씬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런데 벌써 내가 사는 시대에도 프로그램들이 새로 태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주기가 훨씬 짧아지는 걸 보니
10년 뒤에는 얼마나 그 판도가 달라질지 감히 예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하고,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나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그 시대에 난 뭘 해 먹고살면 좋을지? 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게 된다. 더불어 너희에게 어떤 속도로 많은 것들을 알려주어야 할 지도.
어찌 됐건, 고맙다 서야. 네 덕분에 엄마 이런 생각까지 했거든?
그런데, 그렇게 서에게 노트북을 건네주고 난 소파에서 기절해버렸다.
어떻게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어제는 그렇게 장렬히 육아를 마치고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