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주, 여름 문턱
은채는 학교에 적응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납니다.
주중의 수업 시간을 기억하고 날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도 스스로 결정하죠.
예를 들어 체육을 하는 월요일과 금요일엔 운동복을 입고 가야 합니다. 덕분에 가벼운 여름 운동복을 샀죠.
바깥 활동이 적은 날엔 치마도 입고 갑니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처럼 방과 후 교실에서 바이올린 하는 날이 그렇죠.
은채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도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는 급식을 못 먹는 친구도, 집에 가겠다고 우는 친구도 없다고 하더군요. 대신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안전사고.
일주일 전쯤 은채의 단짝 친구 하영이가 다쳤습니다. 은채의 말로는 철봉을 하다 떨어졌는데 팔꿈치 쪽 어디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마도 이제 학교를 못 나올 것 같다고 잔뜩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하영이는 일주일 만에 학교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깁스는 피할 수 없었죠. 은채는 하영이가 깁스를 하고 팔걸이 보호대를 걸고 왔다고 많이 도와줘야겠다고 하더군요. 호진이는 가위를 갖고 장난을 치다가 엄지와 검지 사이의 접히는 부분을 조금 잘랐다고 하더군요. 조금 피가 났고 아주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사실 은채도 넘어져서 양 무릎 주변을 살짝 긁혔습니다.
쉬는 시간에 줄넘기를 하러 나갔다가 쉬는 시간 끝나기 전에 돌아오려 급히 뛰어 들어 오다 줄넘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합니다. 일이 있어서 밤늦게 돌아와 보니 은채는 아주 넓은 붕대 같이 생긴 밴드를 붙이고 자고 있었습니다.
“살짝 까졌다면서 저건 뭐야?”
전 생전 처음 보는 파스 같이 생긴 밴드를 보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 밴드. 화상 병원에 있는 선생님이 주셨어. 여자 애들 흉터 남으면 안 된다고.”
아내는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사회복지사입니다. 그래서 학회 동료들도 다들 부산의 각급, 각종 병원에서 일하시죠. 그 중 화상 병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에게 비상으로 사 뒀든지 얻어 뒀는지 한 모양입니다.
나중에서야 그 밴드가 얼마나 호들갑인지 알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 그 파스 같이 넓은 밴드를 떼어 보니 제 기준으로는 그냥 살짝 긁힌 정도였습니다. 물론 범위도 좀 넓고 길이도 길었지만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고급 밴드를 붙이고 있을만한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딸을 둔 엄마는 그야말로 새 차를 산 주인이, 오늘 새 스마트 폰을 산 주인이 흠집 하나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딸의 피부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전 팔과 다리에 이런저런 상처들이 제법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놀다가, 축구를 하다가 크고 작게 긁힌 상처들을 대충 치료해서 생긴 상처들이죠. 은채는 가끔 제 팔, 손가락, 다리에 난 상처들을 가리키면서 언제 어떻게 났는지 묻곤 합니다. 물론 전 기억을 할 수가 없죠. 한 두 개가 아니고 그야말로 가벼운 찰과상만 일으켰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건 깁스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크게 다친 적은 없다는 것이겠죠. 어딘가를 꿰맨 적도 없고 말이죠.
솔직히 저의 경험과 편견에 비추어 볼 때 학교에서 다치는 친구는 남자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채는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소녀들은 소녀이기 전에 어린이 시절을 지난다는 걸 깜빡했던 모양입니다. 은채는 지금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어린이의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고요.
선생님은 은채에게 잠시 놀기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은채가 다치고 온 날 선생님은 “죽을 똥 살 똥 놀지 말라니까. 이 녀석이.”하면서 꾸중 하시고 보건실로 보내셨답니다. 그 후 금지령을 내리신 거죠. 다 나을 때까진 쉬는 시간에도 꼼짝 말고 있으라고요.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체육 시간에 날아다니는 걸 보면서 어쩔 수 없이 해제를 해주셨다고 은채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전 은채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주입식 교육을 했습니다.
“은채야. 아빠 소원이 뭔지 알아?”
“뭔데?”
“은채가 아프지 않는 거. 다치지 않는 거.”
은채는 지금도 “아빠 소원이 뭐지?”물으면 바로 저렇게 대답합니다.
은채가 뭔가 붙잡고 일어서서 놀기 시작했을 때 거실에서 놀다가 기우뚱 하면서 보행기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전 정말 깜짝 놀랐죠. 은채 입술에 피가 흘렀죠. 애는 울고 어디 다쳤는지는 모르겠고. 정말 평생 살면서 그렇게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은채를 번쩍 안아 달래고 울음을 그치게 한 뒤 찬찬히 입 안을 살폈습니다. 다행히도 입술에 살짝 상처가 났더군요. 피도 바로 멈췄고요. 그때 이후로 전 은채를 조금 과보호하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주입식 교육을 시켜가면서 말이죠. 어린이집에서도 은채는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고 선생님들이 말하실 정도였죠.
그러나 학교를 가니 말짱 꽝이었습니다. 거긴 모험가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은채는 철봉을 하기 시작했고, 정글짐, 늑목 등을 하기 시작했죠. 예상치 않게 줄넘기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종종 3, 4월에는 은채가 학교에서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하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요.
오늘 은채를 데리고 오는데 은채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빠. 나 이제 철봉에서 손 안 잡고 박쥐 할 수 있다.”
박쥐, 아시죠? 철봉에 무릎을 걸치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요.
전 또 철렁 놀라며 잔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조심해. 잘 못해서 떨어져서 머리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 아빠가 축구를 못해서 요즘 안 하는 게 아냐. 하다가 다칠 수 있는 나이니까 안 하는 거야.”
은채는 건성으로 수긍하는 척 하면서 “알았어. 알았어. 하이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하면서 걱정 많은 아빠를 심각하게 걱정해줬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모험가로 태어나지만 한두 가지씩 모험을 금지 당하면서 자신이 모험가였다는 걸 잊어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트루만쇼>에서 각종 사고를 어린 시절에 꾸며내서 성인이 된 트루만이 여전히 바다를 무서워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결국, 아이들의 창의력도 어쩌면 창의력 완구와 교재, 창의력 학원에서 새삼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재 되어 있었던 것인데 모험을 금지 당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지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험심과 함께 말이죠.
걱정 많은 아빠대신 아이의 모험에 함께 동참해주는 아빠가 되겠다고 또 다짐해 봅니다. 은채는 얼마 안 있으면 소녀가 될 테고 소녀가 되는 순간 아빠를 모험의 동반자로 보는 것도 끝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