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여름 방학 준비를 해볼까?

6월 마지막 주- 첫번째 방학인데 알차게 보내야지

by 최영훈

6월말부터 방학 얘기가 나왔습니다. 학교에선 6월 마지막 주면 벌써 방학 중 돌봄 교실 신청자와 방과 후 교실 신청자를 받더군요. 은채는 이번 여름 방학엔 방과 후 교실만 신청하기로 했죠. 7월부터는 미술학원을 다니기로 했으니까요. 다행히도 아빠가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는 자유로운 형편이다 보니 은채는 방학 동안 저랑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은채가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함께 상의 했습니다. 일단은 올 초에 사놓고 은채가 바빠서 못한 받아쓰기 교재를 차근차근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은채의 쓰기 능력은 솔직히 또래보다 훨씬 앞서는 편입니다. 심심하면 하루에 있었던 일을 소설 쓰듯, 일기 쓰듯 써 보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책은 베껴 써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아직 띄어쓰기와 복받침이 완벽하지 않을 뿐이죠. 방학 중에 이런 부족함 점을 함께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엄마가 추천한 수학 교재를 함께 풀어 보는 겁니다. 서울의 강남이나 부산의 해운대 엄마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영재 교육 교재인 모양입니다. 아내의 부탁에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봤더니 TV예능프로그램인 <문제적 남자>에 나올 법한 문제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니까 답을 내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찾도록 되어 있었죠. 이거는 시험 보듯이, 학습지 풀듯이 하면 애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고 판단 돼서 퀴즈 풀듯이 하자고 합의했습니다. 마치 예전에 고속버스를 탈 때 심심풀이로 크로스워드 퍼즐이나 낱말퀴즈, 스도쿠를 풀듯이 말이죠. 하루에 몇 장을 풀어야한다는 압박 없이 한 문제 한 문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경험하자고 결론을 내린 후 아내는 책을 주문했습니다. 이렇게 방학도 시작하기 전에 은채와 아빠는 벌써 대 여섯 권의 학습 교재를 방학 숙제로 받았습니다. 덕분에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서 좋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집 근처의 박물관, 구청, 도서관, 문화회관의 프로그램과 전시회, 공연 등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도 여름엔 특별 전시를 하고, 문화 회관은 이미 <빛의 화가전>이라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회를 하고 있었죠. 구청에서도 주민 센터 등의 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구립 도서관도 부지런히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부모가 직접 정보를 찾아보거나 정보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아내는 이런 데 부지런한 사람이어서 틈날 때마다 검색해보고 관련 정보를 받아본 후 은채에게 “이거 해볼래.”하고 묻습니다. 은채가 한다고 하면 엄마는 부지런히 예약을 하고 신청을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경쟁률이 심해서 선착순으로 신청하거나 당첨을 기다려야 하죠.


다행히 은채 엄마는 이런 당첨 확률이 아주 높은 사람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어렸을 때 소풍 가면 보물찾기도 한번 못 찾은 똥손 중에 똥손인데 아내는 그야말로 금손 중에 금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여름 휴양지 당첨도 잘 되고 사은품 당첨도 잘 되는 편입니다. 노조에서 하는 연말 행사에서 선물 당첨 되는 건 너무 당연해서 몇 등 상품에 당첨 되느냐를 놓고 회사 동료들이 내기를 할 정도죠. 심지어 신혼여행 갈 때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응모한 게 당첨 돼서 해운대의 유명 호텔에서 1박을 한 적도 있죠.

이런 금손 엄마는 벌써 고령군에서 운영하는 펜션을 8월말로 예약해 놨습니다. 엄마 말로는 예약하고 돌아섰더니 벌써 매진이 됐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더군요. 생각해보니 김해시에서 운영하는 캠핑장도 그렇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은 기본적으로 시설 유지 보수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주변 지역 관광 상품과의 연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위치와 시설이 기대 이상인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김해시의 캠핑장은 천문대, 김해가야테마파크와 아주 가깝죠. 은채는 벌써 고령이라는 곳을 검색해 보고 그 근처에서 할 만한 체험 학습을 나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보고 싶다, 이걸 해보고 싶다고 벌써 계획하고 메모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지겨울 땐 은채랑 전 쇼핑몰이나 영화관을 가기로 했습니다. 어린이집 다닐 때도 몇 번 갔었죠. 여름 방학엔 사실 대형 쇼핑몰만큼 좋은 피서지도 없죠. 은채가 좋아하는 피서지 중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도 있습니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은채는 두 시간 정도 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죠. 그러니 저도 일단 은채랑 들어가면 두 시간은 못 나온다는 각오를 하고 들어갑니다. 제가 은채한테 소개해준 장소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죠.


몇 년 후, 어쩌면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 은채는 아마 방학 때마다 미국에 있는 이모나 친할머니 댁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몇 년 후에는 미국에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죠. 한국에 있더라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아빠와 함께 방학을 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겠죠. 아이 마음은 이미 바깥에 있고, 학원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을 테니까요.


방학을 아빠 껌딱지로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아빠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같이 책을 보고 이 책을 사 달라, 저걸 사 달라 졸라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죠. 낯선 박물관을 함께 구경하고 낯선 지역의 문화재나 자연 경관을 구경하고, 처음 들어가는 계곡과 숲의 입구에선 아빠 손을 더 꽉 쥐는 시절이 그리 길지 않음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은채가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 웬만하면 그러자고 합니다. 이번 주말엔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다 길래 둘이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서 경성대학교 앞의 유명하고 저렴한 쌀국집에서 쌀국수를 먹고 아빠의 반팔 티셔츠를 사고 서점에서 쉬었습니다.


얼마 전 가르쳐 준 원카드에 푹 빠져 있는 딸은 하루에 한번은 하자고 조릅니다. 보통 하게 되면 세 판 이상은 하죠. 전 은채가 승패에 좀 초연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 게임을 가르쳤습니다. 워낙 승부욕이 강한 은채라 뭘하든 이기면 정말 좋아하고 지면 너무 낙담하고 화를 내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알다시피 트럼프 카드로 하는 원카드 게임은 자신의 전략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패도 중요하고 덮여 있는 카드도 중요합니다. 승패 전체가 자신의 실력에만 달려 있지 않고 오히려 운이 많이 따라야 하는 게임이죠. 은채는 이 게임을 하면서 어떨 땐 자신이 많이 이기고 어떨 땐 아빠가 많이 이기는 걸 보면서 승패가 꼭 자신의 노력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늘 이길 수만은 없고 운이나 상황, 또 더 강한 상대를 만나면 언제든 질 수 있다는 것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또 지금은 지지만 다음엔 이길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자는 것도 배워가고 말이죠.

은채가 좀 천천히 크고 조금 느리게 배워가길 바라고, 그래서 더 많이 아빠가 가르쳐 주고, 더 오래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딸로 남아주기 바라지만 은채는 아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배우고 쑥쑥 크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느 순간, 어느 여름에는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방학 계획을 짜고 실천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면서 방학을 보낼 날이 오겠죠. 그날이 오기 전까지 앞으로의 여름 방학마다 딸의 껌딱지 계획을 즐겁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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