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운동을 결심하면서 수영장과 헬스장 관련 검색을 하다 이런 썰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PT 받다 강사와 눈 맞은 썰”, “수영장에서 회원 접영 잡아주다가 갈 때까지 간 썰”, “수영장 강사가 불륜이 맞은 이유”, “신도시 헬스 트레이너, 유부녀 회원 불륜 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 썰에 혹해서, 또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수영장과 헬스장에 등록했을지도 모르겠다. 3월도 한 주 남았다. 어떻게... 기대하던 사건이 터졌나?
결론부터 말하면, 수영장과 헬스장에서 눈이 맞을 확률은 버스에서 “이번에 내려요.”하면 누군가 따라 내릴 확률만큼 적다. 최소한 내 경험으론 그렇다. 물론 누군가 작정하고 강사를 꼬시겠다고, 특히 여성 회원이 남성 강사에게 그야말로 어그레시브 하게 접근하고 시도하면 눈도 맞고 다른 것도 맞을 확률이 높겠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한, 내 경험상 그런 일은 흔치 않다.
혹시라도 그런 바람을 갖고 있다면, 그러니까 수영장처럼 헐벗은 곳에서 내 몸매를 과시하여 다른 회원이나 멋진 강사를 꼬시겠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려는 목적, 헬스장에서 여성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으며 임도 보고 뽕도 따겠다는 야심 찬 꿈을 실현시킬 계획이라면 일치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그 이유...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 괜찮은 사람이 많지 않다.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3월 달에 수영장에 사람이 늘었다. 내 앞 반인 열 시 클래스도, 내 반인 열한 시 클래스도 붐빈다. 내가 수영장에 들어가는 시간인 열 시 오십 분에 이 두 반의 회원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열 시 반의 아가씨들 중에 “야~매력 있다.”할만한 처자는 한두 명 정도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면 한 명 있다. 뭐랄까, 오키나와 출신의 일본 여배우 느낌이랄까? 눈도 크고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건강미가 넘친다.
그래서 어쨌냐고? 당연히 아무 일도 없지. 설령 내가 총각이라 해도, 불쑥 다가가서 “어이 아가씨, 약간 오키나와 스타일인데 점심이나 같이할까요?”할 순 없지 않나? 설령 내가 시간을 바꿔서 매일 같이 수영을 한다고 해도 사정은 같다. 아마 통성명을 하는 것도 몇 달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도 우리 반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니 말이다.
내가 수영하는 시간, 열한 시 클래스를 통 털어서도 예쁜 아가씨나 잘 생긴 총각은 없다. 저녁반은 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 과거 저녁 반을 다녀 본 경험이 있는지라, 그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아마 잘해야 한두 명 정도이지 않을까?
경쟁자, 혹은 동상이몽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잘 생긴 남녀는 다 짝이 있다. 설령 짝이 없다 하더라도 경쟁 상대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 보는 눈은 다 거기서 거기여서 당신한테 보기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보기 좋을 확률이 높다.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취향 차이 정도는 가볍게 초월한다. 누가 봐도 수영장과 헬스장 여신인 사람에겐 그만큼 추앙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상대방도 그런가 하는 것. 그렇다. 동상이몽과 이심전심의 문제다. 운동에 대한 조언을 좀 해주고 수영복이나 몸매를 좀 칭찬해 준 걸 호감 표시로 해석하는 건 자유다. 상대방이 그런 의도로 했다면 그 해석은 그야말로 이심전심이고 혼자 그렇게 해석하고 순식간에 결혼까지 그 망상이 도달했다면 동상이몽이다.
솔직히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당신이 정말로 헬스를 빡세게 하고 숨 넘어갈 정도로 수영을 한다면 누굴 꼬실 생각도 안 든다. 정확한 자세와 횟수까지 신경 쓰면서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걸 들었다 놨다 하는 마당에 이런저런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운동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이다. 물론 오직 헬스와 수영의 목적이 연애에 있다면 당신은 수영과 헬스를 대충 할 것이다.
골프의 장점
사업하는 사람들이 골프를 배우는 이유는 골프 자체가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즉 이동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목을 다질 수 있고 플레이 자체도 하나의 퍼포먼스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이후 아주 긴 칭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적으면 단 둘, 많아야 서너 명 정도 무리 지어 라운딩 하다 보니 대화의 깊이가 어느 운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골프장은 그런 대화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고. 산 좋고 물 좋고 한가롭게 걷기 좋은 곳이니 말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선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의 시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같은 거 말이다. 수영장과 헬스장이 그런 공간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가능성이 높은 공간은 절대 아니고 그 희박한 가능성조차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허락된 가능성이 아니다. 당신은 수영장과 헬스장의 에이스가 아니고 대부분의 회원들은 큰돈을 내고 작심을 하고 운동을 하러 왔기 때문이다.
썰이 많은 이유
마지막으로, 그럼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장소를 배경으로 한 야한 썰이 많을까? 썰은 그야말로 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판타지라는 것이다. 이 판타지가 대중적으로 수용되기 위해선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소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가 보는 포르노의 공간이 집과 직장, 호텔, 친구 집, 심지어 학교인 것도, 그 공간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도 친구 엄마나 누나, 여자 친구나 여자 친구의 언니, 여행지에서 만난 선남선녀, 그리고 헬스 트레이너나 내 옆에서 헬스를 하던 몸 좋은 남자나 여자인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니까 SF 같은 포르노나 시대극 같은 포르노, 중세의 성을 배경으로 한 포르노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기억이 안 나거나 우리가 찾아보지 않았던 건 그런 배경이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성적 판타지의 특이성이 존재하는 지점이다. 일상적이되 환상적일 것, 일탈적이되 일상적일 것, 금기를 깨되 설득이 될 것...
그러니... 결론적으로 혹시라도 오늘 운동하러 가면서 어떻게 유혹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포기하는 것이 좋다. 차라리 열심히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드는 것이 연애를 시작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까운 교회나 절을 가던가.
예쁘고 글래머러스한 유부녀가 있지만...
새로 온 강사가 자세를 교정하던 시기가 끝났다. 이번 달부터는 체력을 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어제의 메인 세트는 자유형 50미터, 20개였다. 1번 주자는 그 세트를 하는 동안 템포를 전혀 늦추지 않았고 뒤에 사람들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내 뒤에 있던 회원은 아주 예쁘장하고 글래머러스한 아줌마인데 그 아줌마 얼굴을 본 건, 어제 수영하는 내내 세 번 정도였다. 한 번은 인사할 때, 한 번은 내가 한 바퀴 쉴 때 그분을 먼저 보낼 때, 나머지 한 번은 세트가 끝나고 내 얼굴을 보면서 아줌마가 “아니, 이 템포가 보통이었어요?(강사가 “지금 템포가 적당하니까 자세에 더 신경 쓰세요.”라고 중간쯤에 말했었다.), 와~ 난 진짜 전력으로 따라붙었는데.”하고 하소연할 때였다. 난 그 하소연에 살짝 웃어준 것이 다였다. 숨이 너무 차고 힘들어서 말하기도 귀찮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