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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찾아온 관능의 순간, 혹은 타인의 맛에 대하여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34

by 최영훈

관능의 뜻

관능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뜻만 아니라 다른 뜻도 있다. 심지어 사전에 따라선 우리가 아는 그 뜻이 세 번째인 경우도 있다. 첫 번째 뜻은 “생물의 오관(五官) 및 감각의 작용”이고, 두 번째 뜻은 “오관(五官 눈, 코, 귀, 혀, 피부) 및 감각 기관의 작용”이다. 그리고 세 번째 뜻은 “육체적 쾌감, 특히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이다. 우린 앞에 두 풀이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지금 어떤 매거진인지 알고 들어온 거 아닌가? 자, 자, 우린 세 번째 뜻에 주목하여 이야기해 볼 것이다.


일단 질문을 던진다. “육체적 쾌감, 특히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은 대체 뭘까? 생각 중인가? 답은 없다. 뭐, 대체로 사전의 뜻풀이라는 것이 이렇게 두리 뭉실하지만 이 풀이는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우린 이 풀이에서 두 단어에 또 주목해야 한다. 자극과 작용. 질문이 이어진다. 자극이라는 건 뭘까? 작용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린, 주목하지 않기로 한 앞의 두 풀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음... 그렇게 됐다. 자, 자극은 오관으로 들어온다. 그러니까 오감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극은 결국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그리고... 그렇다. 혀로 감지되는 것. 미각까지 포함된다. 작용은 자극 이후 개별적으로 발현되는 감정이다. 감각 이후에 오는 것이 감정이고, 감정 이후에 오는 것이 액션이다. 작용은 이 일련의 시퀀스를 말한다.


자극의 종류

시각은 보이는 것, 외모다. 노출이 심한 의상이나 몸매, 눈빛 등이 여기에 포함되겠지? 청각은 목소리다. 여기에 함께 있는 공간을 채운 음악도 포함될 테고 웃음소리나 옷이 스치는 소리, 유리잔에서 얼음이 흔들리는 소리, 맥주를 시원하게 따르는 소리, 그걸 마신 후 터지는 캬~ 하는 작은 소리도 포함될 것이다.

촉각은 당연히 접촉이다. 옷, 손, 팔, 머리카락 등등. 또 상대방이 내뿜는 숨결, 차가운 유리잔의 감촉, 함께 맞는 비의 느낌도 당연히 촉감에 들어간다. 여기에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아주 생생히 묘사했듯이 자동차의 고급 시트도 있다. 남자들이 고급 자동차를 고집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자기 품으로 해결해 줄 수 없는 안락함과 넉넉함을 시트의 품질로 만회하려는.


후각은 냄새와 향이다. 냄새와 향은 주관적이다. 모든 이에게 평범한 냄새가 어떤 이에겐 몸서리치게 하는 농염한 향일 수 있고 모든 이가 섹시하다고 여기는 향수의 향이 누군가에겐 역겨운 냄새일 수 있다. 특히 내 경우엔 더 그렇다. 아내가 향수를 사용하지 않고 그전에 사귀었던 여성들이 진한 향수를 사용하지 않아서 지금도 향수와 화장품 매장이 밀집해 있는 백화점 1층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


남은 건 미각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감각의 거리

이 오감 중 남자들이 가장 잘 넘어가고 자극되는 건 시각이다. 포르노의 주 고객인 이유다. 그렇다면 다음은 청각이다. 포르노의 두 요소는 시각과 청각이니까 말이다. 또 두 감각의 유효 사거리가 제일 길다. 아닌가? 마라톤을 한참 열심히 할 때를 떠올려보면 냄새와 향도 의외로 멀리 간다. 한참 뛰고 있는데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나서 그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보면 피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있음을 확인하곤 했다. 횡단보도나 지하철 역 입구 10미터 안에선 금연이라고 하지만, 그 반경은 턱 없이 좁다.


촉각에 이르면 두 사람의 거리는 확 좁혀진다. 내가 아는 한 촉각을 무선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손으로 만지지 않거나 팔이나 다리로 스치지 않고 연인의 피부와 옷자락과 머리칼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접촉(接觸)한 뒤에 촉감(觸感)이 온다.


이제 미각 이야기를 하자. 촉감 뒤에 미감(味感)이 온다. 타인을 맛볼 수 있다. 타인의 맛을 본다. 써 놓고 나니까 어째 그로테스크하면서 에로틱하다. 타인의 맛을 본 적이 있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유아기를 지나면 타인을 맛볼 수 없다. 타인의 신체 부위는 고사하고 내 신체 부위도 입에 넣지 않는다. 입에 못 넣으니까 손톱 따위를 뜯는 거겠지. 초조하거나 타인과 대화할 때 종종 우리가 자기 팔짱을 끼는 건 대치 상황에서 오는 초조함을 없애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안음이라는 말도 있고.


타인, 또는 나의 맛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내 피부와 살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모든 살의 맛은 타자에게 있다. 이야기하다 보니 점점 그로테스크해지는 느낌인데, 우리가 먹는 모든 동물은 자신의 살이 어떤 맛인지 알지 못한다. 설령 싸움 끝에 동족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로 물어뜯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음미의 행위가 아니라 폭력의 행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타인을 물어뜯었을 때 - 수아레즈나 타이슨처럼 - 느끼는 그 느낌도 미감이 아니다.


결국, 음미하는 타자가 있지 않으면 내 맛의 답란은 비어 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은 무슨 맛이에요?”하고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 그건 맛본 사람만이 안다.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참치 뱃살의 맛은 먹어 본 사람이 알지 참치가 알 리 없지 않나?


그렇다고 “아, 얼마 전에 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고 빨고 핥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시죠. 연락처를 가르쳐 드릴까요?”하고 말할 수 없다. 모든 맛이 그러하듯 내 맛 또한 주관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맛의 단계까지 다다르지 못한 채, 성급하게 성기 위주의 섹스로 넘어가는 건 그 사람을 다 느끼지 못한 것이다. 신음이 난무하고 격렬한 피스톤 운동 덕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더라도, 심지어 그 결과 오르가슴을 느끼더라도 타인의 맛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타인에 대해 느껴야 될 모든 것을 다 느끼지 못한 것이다. 애무가 왜 중요한지 좀 이해가 되는가?


어젯밤의 아내

이렇게 불쑥 관능에 대해 쓴 건, 어제저녁 식사를 하고 아내와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는데 아내가 관능적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뭔가 자극적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 야시시한 옷을 입었다거나 색다른 메이크업을 한 것도, 토끼 꼬리 따위를 엉덩이에 단 희한한 코스프레를 한 것도 아니었다. 퇴근 후 아내는 언제나 아주 편한 원피스 - 잠옷인지 실내복인지, 아니면 엄청 큰 사이즈의 반팔티인지 모르는 -로 갈아입는다. 딸도 그런 아내를 보고 커서인지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이후에 별 다른 스케줄이 없을 땐 바로 파자마로 갈아입는다.


여하간, 늘 보던 아내가 어제는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그렇게 보인다고 말해줬다. 아내가 씩 웃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조직에서의 높은 위치에 다다른 후, 그에 따라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을 갖고 있는 회사 중역이 풍기는 안정감이 그런 형태로 발휘됐는지도.


아마 같은 상황의 중년 남자에게서도 그런 분위기가 풍기지 않을까? 아주 날카롭고 휘황찬란하며, 영어 단어로 표현하면 Vivid 한 섹시함이나 관능미는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은은하게, 조금은 여유로운 매력이 풍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난 어렵겠구나.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관능은 객관과 주관을 오간다. 모두가 동의하는 관능적인 자극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오직 한 사람, 또는 특이한 취향의 사람에게만 자극이 되는, 그런 관능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관능미는 아주 한정적이다. 어제, 아내의 관능미는 내 한정이었다. 아마 당신의 관능미 또한 누군가에겐 아주 한정적으로 환장할 자극을 줄지도.


그러니 “아, 난 성적인 매력이 너무 없어.”하며 자괴감에 빠지지 마라. 아주 무더운 여름날 평양냉면을 먹고 있는, 심지어 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은 그릇째 들이켜고 있는 당신을 보며 엄청난 관능미를 느끼며 무지하게 성적인 자극을 받는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니. 그러니 일단 평양냉면부터. 그러니까 일단 뭐라도 하고 어디라도 가보고 누구라도 만나보라는 거다. 덥다고, 인생 안 풀린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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