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28
-<주먹이 운다.>라는 영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류 씨 형제가 감독과 주연을 맡고 여기에 최민식이 합세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야 다들 찾아보면 알 테고... 난 이상하게 이 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최민식이 연기한 강태식이라는 남자가 있다. 한 때 권투로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사람인데, 은퇴 후 인생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대차게 말아먹고 처지가 말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랑 이런저런 말다툼을 하고, 아내는 그 화를 풀기 위해서인지 넓은 거실 바닥을 걸레로 훔치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방금 싸운 남편 강태식의 눈에 그런 아내의 모습이 섹시해 보인다. 잠시 후, 강태식은 초등학생 아들을 불러 몇 천 원을 쥐어준 후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오라고 한다. 그 후 아내에게 접근하여 하고자 했던 미션을 수행한다. 물론 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컷 전환이 되면 아내가 치마 안으로 팬티를 입으면서 애가 왜 아직 안 오냐면서 한 마디 한다. 그때 아들은 어디 있었을까?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먹으면서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있었다. 효자이자 눈치 빠른 아들이다.
또는 어쩐지 오늘 분위기가 잡힐 것 같은 날도 있다. 애가 가까운 할머니 집이나 삼촌 집에 놀러 갔거나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 갔거나 하다못해 여름 성경학교라도 간 날, 모처럼 아내와 둘만 있는 시간이면 당연히 그걸 기대하게 된다.
연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남자가 전날 야근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 마술에 걸리지만 않았다면 당연히 섹스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갖고 데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오빠(누나), 나 이러려고 만나?”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그럼 애인을 만나는 이유가 밥을 먹거나 긴 산책을 하거나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거나 기말 시험을 함께 준비하기 위해서인가? 그뿐인가? 그렇다면 그냥 동네 친구나 학과 친구를 만나면 된다. 이런 질문엔, 언젠간 탁재훈이 말한 것처럼 “아니 그럼 내가 이걸 누구랑 해야 되니?”하고 당당하게 반문을 쏘아붙여야 한다.
아침부터 같은 반 친한 남자 애와 카톡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난 그쪽 집 어른도 쉬어야 하니 너도 그냥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그쪽 집에선 아들의 예쁜 여사친이 놀러 오는 것이 반가웠던지 허락을 한 모양이다. 결국 아내도 놀러 가라고 했고 차로 데려다주면서 빵까지 한 보따리 사서 보냈다.
문제는 그 후다. 아내는 야릇한 분위기를 잡았다. 어쩐지 할 것 같았다. 아내는 일단 민트 초코 푸라푸치노를 사달라고 했다. 집 근처 카페에 그 메뉴가 있다고.... 얼른 나가서 사다 줬다. 남자의 인생은 서른이나 오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여하간, 그렇게 아내가 그걸 마시는 동안 난 한가롭게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거실 한가운데서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가 물었다. “할 까?”, “응? 오케이.”, “뭘 할 건데?”, “그게 뭔데?”
물론, 당연히, 애석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기대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난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시작해서 신혼여행을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럴만한 시간과 공간의 틈이 있어도 그걸 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섹스는 언제나 제일 끝순위였다.
신혼여행을 비롯해서 수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관광과 쇼핑이 최우선이었고 고급 호텔은 내일의 일정을 위한 휴식 장소였다. 아내의 그런 성향을 알게 된 후,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마다 난 엄청난 맥주를 혼자 마시고 자야 했다. 결론적으로 그녀와 여행을 가서 뜨거운 밤을 보낸 건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아이와 함께 간 여행은 아예 빼자.
상태가 심각했다. 배는 만삭의 임산부처럼 나왔고 낯빛은 칙칙했다. “00이 너 올해 몇 살이지?”, 내가 물었다. “서른셋입니다.” 감독의 후배가 대답했다. “너 요즘 무슨 낙으로 사냐?”, “그냥 제 일, 제 거 하는 맛에 삽니다.”, “야,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삼십 대 초반인 놈이 일하는 재미로 산다는 거야?”, “네.”, “연애는?”, “아, 예전에 몇 번 데고 나서는 관심 끊었습니다.”
“너, 몸무게 몇이야?”, “저... 88킬로입니다.” 참고로 그 후배와 난 키가 같다. 심지어 허리 사이즈도 같다. 그런데 그 후배는 배만 볼록 나왔다. 그리고 몸 구석구석 살이 쪘다. 나랑 20킬로그램 이상 차이가 난다.
잔소리를 했다. “야, 너 그러다 썩어.”, “네?”, “그러다 썩는다고 인마.”, “뭐가요?”, “네 몸뚱이, 그리고 그놈도 말이야.” 그 뒤 한참 잔소리를 했다. “야, 너 네 젊음이 뭐 평생 갈 것 같지? 맘만 먹으면 살도 뺄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 몇 번 데어서 연애 안 한다고? 그럼, 야 이 미친놈아. 다 늙어서 할래? 내 나이 되어서 여자 꽁무니 쫓아다닐래? 데고 다치는 것도, 인마 젊을 때나 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무슨 일 하려고 사냐?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잖아. 남자의 행복이 뭐냐? 별 거 없어. 자기 좋아하는 여자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그 여자 품고 사는 거야. 그런 욕심 없는 인간들이 꼭 나중에 정치나 무슨 협회 회장 자리 한다고 나서는 거야. 무슨 감투니 권력 따라다니는 거야. 너 정치할 거야? 아니잖아. 그런데 여자한테도 관심 없다고? 야, 그럼 왜 사냐? 너 그러다 썩어. 푹 썩는다고.”
언제나,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랑하는 사람도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듯이 뜨거운 순간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분위기를 잡는 것 자체가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에 어떤 종류의 에너지든 그 에너지가 다 하면 그 분위기 또한 소멸한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한 후 자녀의 숙제를 봐주고 준비물을 챙겨준다. 반련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개를 산책시키거나 고양이와 놀아주기까지 한다. 아이가 어린 사람은 안 자겠다는 애랑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재운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연인이나 부부는 겨우 한숨 돌리고 TV를 켠다. 열 시쯤 하는 안 봐도 그만인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까지 보다 보면 열두 시가 넘어간다. 안방까지 들어온 작은 IPTV나 노트북으로 넷플릭스 따위를 보다 보면 새벽 한두 시가 되는 일도 흔하다.
잘 시간에 자는 것이 아니라 지쳐서 잠든다.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어도 손이 닿지 않는다. 다른 걸 하느라 지쳐버린 내 육체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하나마나한 잘 자라는 인사를 담배 연기처럼 뱉고 나서 잠든다.
이런 날, 이런 밤이 반복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라는 말로 일주일, 한 달, 한 계절, 일 년을 이렇게 살다 보면 그날과 그날의 분위기는 일상 속에서 사라진다. 옆에 누운 사람을 만지기엔 내 손이 너무 짧다. 늘 같은 침대, 같은 자리에 누웠는데 그 사람은 너무 멀리 있다. 너무 멀리, 너무 멀리, 너무 멀~~ 리 있다. 미라처럼 두 손을 이불속에 넣어 나 자신과 성욕을 똘똘 말아 묶은 뒤 잠든다.
사랑은 소나기지만 섹스는 장마여야 한다. 사랑은 태풍이지만 섹스는 늘 부는 바람이어야 한다. 해프닝과 이벤트 같은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애석한 일이지만 여자나 남자나 예고된 섹스일수록 더 잘한다. 몸도 마음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우리가 잘 아는 <어린 왕자>의 여우의 고백은 섹스에도 해당된다. 오늘 오후 네 시에 하기로 했으면 남자는 전날부터 금주를 하고 야근을 하지 않으며 아침부터 몸에 좋은 걸 먹는다. 여자는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세시 오십 분부터 준비 완료 되어 있을지도.
그날, 우린 결국 장아찌나 만들고 말았고 딸은 오후 다섯 시에 돌아왔다. 사십 대 아내와 오십 대 남편이 모처럼 맞은 그 빈 시간을 곰취 장아찌 만드는 데 쓴 것이다. 이런 날이 또 올까? 남자 나이 마흔을 넘으면 내일을 장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나 여자도 마찬가지고 나이를 몇 살 먹었든 마찬가지다. 내일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늘 하는 얘기지만 오늘 할 수 있는 섹스를 내일로 미루지 마라. 그러다 썩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