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un 27. 2024

열두 살 소녀에게 록이 건넨 위로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33

We are

                             one ok rock


남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별거 아니래도, 굴하지 않아.     


우리를 압박하지만,

너무 늦었어. 늦었어.

돌아가지 않겠어.     


꿈이 끝이나고

눈을 뜨는 순간

절망과 희망도 동시에 눈을 떴어.    

 

거울에 비친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게 의미가 있나?     


네가 벼랑 끝에 몰려

희망을 잃고 방황해도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도

우리는, 우리는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다 해도

여기 내 손을 잡아

우리는, 우리는

어둠 속의 빛깔이니까.


지독한 고통에

고동은 빨라져

멀어져 가는 경치를

이 손으로 붙잡으려 했어

    

저들이야말로 약자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남들이 뭐라 한들

우리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은 부서지지 않아    

 

네가 벼랑 끝에 몰려

희망을 잃고 방황해도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도

우리는, 우리는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다 해도

여기 내 손을 잡아

우리는, 우리는

어둠 속의 빛깔이니까.   

  

스스로 되뇌지 마

남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당당히 일어나 말해

난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절대 스스로 되뇌지 마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고

당당히 일어나 말하는 거야

난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네가 벼랑 끝에 몰려

희망을 잃고 방황해도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도

우리는, 우리는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다 해도

여기 내 손을 잡아

우리는, 우리는

어둠 속의 빛깔이니까.   


록의 나이

록은 젊다. 젊은이나 젊은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록 음악을 할 수 있다. 젊은이만 들을 수 있거나 젊은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록의 저 달려가는 비트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젊은이가 아니거나 젊은 영혼을 상실한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도 심장을 뛰게 하는 록 음악 한 곡 정도는 갖고 있다. 그  뮤지션의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심장의 비트를 달리게 하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직업이 뭐든, 나이가 몇 살이든.


우리 모두에겐 한 때 사랑했던 그룹이 있다. 나에 20대엔 <Nirvana>와 <Hootie & the Blowfish>와 <Toad the Wet Sprocket>, <Texas>가 있었다. 십여 년 전까진 <Linkin Park>와 <(Metallica>, <one ok rock>이 있었다. 대학 강사 시절, 학교로 가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앞서 말한 세 팀의 음악을 들었다. 이 외에도 엄청나게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이뤘다. 아직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을 때였다.      


록의 용도

그때 들었던 음악들은 내게 전의(戰意)를 불타오르게 했다. 특히 개강 첫날, 수십 명의 낯선 학생과 마주하기 위해선 단호한 의지가 필요했다. 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면 잡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강의 생각만 들어찼다. 첫날부터 수강 신청을 잘했다고 학생 스스로가 칭찬할 수 있을 만큼, 전력을 다해 강의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거칠고 빠른 음악 속에서 심장의 비트는 차분해졌고 강의 시간의 주요 부분들이 시뮬레이션 됐다. 인사말부터 강의 내용, 마무리 인사까지.      


강의실과 가장 가까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진입하면 웅성거림이 느껴진다. 강의실 밖에는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이 줄 서 있고 강의실 안에도 그런 학생들이 뒤에 서 있곤 했다. 수강 신청에 성공한 학생들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커피 잔과 가방을 내려놓고 이어폰을 빼고 MP3 플레이어를 끈다. 강의가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대학 강의와 마무리하지 못한 박사과정은 비슷한 시기에 끝났다. 그 뒤로 록하고 멀어졌다.      


록의 전승

올 초, 딸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one ok rock>을 추천해 줬다. 난 십 년 전 앨범에 멈춰 있었지만 몇 해 전 아주 인상 깊은 그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NHK의 한 특집 프로그램에서의 <We are>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참가한 열여덟 살의 청춘들은 일본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이들 중 선택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노래 연습도 했다. 이 영상을 딸에게 보여줬다. 이후, 도쿄돔 콘서트 장면도 보여줬다. 마치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 뮤직 비디오의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관객의 팔에 묶인 응원 봉이 빛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We are>의 열창 부분을. 딸은 이후로 이들의 팬이 됐다.      


딸은 멤버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과거까지 검색해서 알아봤다. 십 대가 보여주는 덕질의 첫 단계다. 영어와 일본어가 혼재하는 이들 노래의 가사의 뜻을 알기 위해 번역된 가사가 나오는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라이브 영상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라이브 실황으로만 구성된 한 시간이 넘는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쉬기도 했다. 제로베이스원의 산뜻하고 발랄함에 취해 있다가 금세 <one ok rock>의 터프함으로 옮겨 간다. 이게 십 대 소녀의 스펙트럼이다.


록의 진심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딸과 함께 <We are>의 공연 실황을 보는데 일본어, 영어 가사 위에 번역이 떴다. 이때 처음 이 노래의 내용을 알게 됐다. 딸이 이 그룹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도.     


사실, 록이나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가사에 신경 쓴 적 없다. 전진 나팔이나 북처럼 순전히 고취의 차원에서 들었을 뿐이다. 달리기를 하거나 집에서 근육 운동을 할 때도 들었지만 이 또한 용도는 같다. 물론 <Judas Priest>나 <AC/DC>의 음악처럼 가사가 잘 들리는 음악이야 귀에 들어왔지만, 그 격렬함으로 인해 미국프로레슬링 WWE의 선수들 테마 음악 단골손님인 <Godsmack>이나 <Disturbed>를 들을 때는 그저 그 사운드의 쾌감을 즐길 뿐이었다.


열여덟 살이라면 울어야 마땅한 노래다. 나도 열여덟 엔 저런 심정이었다. 또래가 학교에 있을 때 난 그 밖에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조직(?)의 식구가 된 것도 아니었다. 소속이라 할 만한 건 교회 밖에 없었다. 이모도, 삼촌도, 고모도 없었다. 후배도 선배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동네에서 살게 됐다.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꿈을 말할 사람도 없었다. 분노도, 절망도, 포기도, 사라졌다 금세 나타나는 희망의 징조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교회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안전한 이야기뿐이었다. 평범한 이야기뿐이었다. 위험하고 불안하며 상식 밖의 이야기, 마음 저 한 구석에서 꿈틀대고 있는 뭔가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스스럼없이 내 속내를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을.     


록의 위로

이 노래는 말한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너에 이야기를 듣겠는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너에 대해 말해주겠는가. 아니 이 록 그룹의 노래, 특히 딸이 좋아하는 노래들의 가사들은 대체로 이렇다. 그건 아마도 보컬인 타카의 경험, 또 기타리스트 토루와 베이시스트 료타의 사연이 노래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각자의 재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년기가 끝난 후 그들에게 남은 건 불확실한 미래와 무한한 가능성뿐이었다. 그렇게 막막한 시간 이후, 그들을 구원한 건 록이었다. 그런 록 음악에 구원과 위로, 더 나아가 저항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딸은 요즘 이룰 수 있는 꿈과 불가능한 꿈,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향한 부러움과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바람 사이에서 헤매곤 한다. 어떤 것이 손에 잡히고 어떤 것이 잡힐 수 없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나보다 예쁜 애를 질투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여자 아이돌 같은 날씬한 몸매를 소망해 봤자 부질없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자기가 타고난 것들, 자기가 가진 재주와 재능은 낮게 보고 남에 그것들은 높게 보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one ok rock>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는 것 같다. 남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 말하지 말라고,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말하지 말라고, 간절히 외치는 <We are>를.


사족

료타와 토루는 어린이 댄스 팀으로 유명해졌고 이후 음반까지 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두 사람은 음악 공부를 했고, 그 뒤 멤버를 모아 밴드를 만들었다. 타카는 유명한 엔카 가수였던 부모를 뒀지만 집에서 가출하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다가 록 그룹의 일원이 됐다. 료타와 토루는 타카의 노래를 듣고 그를 보컬로 맞아들이기 위해 거의 매일,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다 딸에게 들은 이야기다. 멤버들의 이름과 과거도 딸이 가르쳐줬다.)     


어제, 딸이 내게 말했다. 학교에 갔다 와서 행복하기 위해선 제로베이스원의 노래와 성한빈의 얼굴이 필요하지만, 학원에 가기 위해 힘을 내야 할 때는 one ok rock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딸이 거실 테이블에서 공부할 때, 난 마주 앉아 책을 읽는다. 보통 세 권의 책을 쌓아 놓는데, 어느 날 딸이 그중 한 권의 제목을 보고 “아빠, 철학도 개념이 있어?”(책 제목이 <철학적 기본 개념>이었다.)하고 물었다. “그렇지.”하고 답한 후 예를 몇 개 들어줬다. 이후, 다카쿠와 가즈미의 <철학으로 저항하다>를 읽고 있는데, 철학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철학이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록의 친구일지도.

이전 02화 불거진 푸르른 정맥 같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