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아빠의 예상보다 빨리 큰다.

에필로그

by 최영훈

은채는 지금 3학년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2학년을 보냈고, 3학년도 겨울입니다.


2020년 1월, 원래 춥지 않은 부산인데 그 해 겨울은 더 따뜻했습니다.

덕분에 은채는 집 안팎에서 마음껏 놀면서 건강히 겨울 방학을 보냈습니다.

방과 후 학교와 미술 학원, 감전동 외가댁을 오가며 나름 바쁘게 지냈고 학교 권장도서도 열권이나 읽고, 자기가 좋아하는 추리, 모험 소설도 서 너 권 읽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기차 타고 서울도 가 봤고 엄마 아빠와 함께 즐겁게 방학 숙제도 했죠.

KakaoTalk_20211117_093323063.jpg 함께 만든 겨울방학 가족 여행 신문

방학 동안의 기억은 은채의 기억 저장 창고에 잘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설령 성인이 돼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해도 일상의 어느 순간, 어느 장면 앞에서 이 시절의 기억은 떠올려질 겁니다. 저도 불쑥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물론 저 같은 경우는 대부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 고통스럽지만 말입니다.


은채에게도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있을까요?

물론 있을 겁니다. 아빠가 큰 소리로 화내고 꾸짖은 거, 엄마 아빠가 부부 싸움을 한 거,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려서 겁에 질려 찾아다닌 거. 이런 사건들이 아마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저장 되어 있을 겁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말이죠. 기쁨이가 아무리 좋은 기억만으로 은채의 유년 시절을 지키고 싶어 해도 넓고 깊은 은채의 기억 세상 어딘가에는 푸른색의 슬프고 아픈 기억의 공간들이 있겠죠.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맨인블랙>에 나온 기억 제거 장치인 뉴럴라이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억을 선택해서 지울 수만 있다면 은채 앞에서 이걸 번쩍하고 켜서 은채의 슬프고 아픈 기억은 모두 지웠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엄마, 아빠에게 받은 상처 어린 기억들 말이죠. 심지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 지운다고 해도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은채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키우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기억 창고에 최대한 행복한 기억으로만 채워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물론 그럴 수는 없겠죠. 은채는 엄마 아빠가 크게 싸운 걸 기억하고 있고, 자기가 울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은채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화를 내고 큰 소리로 혼낸 것도 기억하지만 아빠가 화낸 걸 사과하고 은채를 안아준 것도 기억합니다.


나쁜 기억만 선택해서 지우는 방법을 아직 모르기에,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 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사랑하면서 키우고 있습니다. 방학 내내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한테 안겨서 “은채는 만 8세 아가야야.”라고 하면서 어리광을 피울 때 마다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주면서 꼭 안아 줬습니다. 음료수 페트 병 뚜껑이 안 열릴 때, 커다란 생수병에 있는 물을 컵에 따라 마셔야 할 때, 언제든 아빠를 부르면 언제나 가 줬습니다. 안 열리는 잼 뚜껑을 열어주고, 병을 따주고, 물을 따라 줬습니다. 신발 끈이 풀리면 묶어 주고, 겨울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투 앞섬이 열려 있으면 지퍼를 올려 줬습니다.


미술 학원에서 옷에 물감을 묻혀 와서 걱정하면 걱정하지 말라고, 다 지워진다고, 아니 안 지워져도 화가의 옷에는 원래 그런 얼룩이 있는 거라고 말하며 안심 시켜줬습니다. 아빠가 대학 다닐 때 미대 애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녔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안심한 뒤 물감과 펜으로 얼룩진 손을 닦으러 욕실로 들어가기 전에 은채는 언제나 “팔 올려 주세요.”합니다. 그러면 전 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려주죠. 은채는 아빠의 보살핌을 통해 자신이 사랑 받는 아이라는 걸 체감하고 절감하며 1학년, 아니 그야말로 8세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다른 것들과 함께 은채의 노스탤지어가 되어 줄 겁니다.

돼지국밥과 밀면 같은 음식, 외가댁, 삼촌, 동네 친구와 학교 친구들, 일주일에 한번 건너는 광안대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 바다와 점점 거셔지는 사투리와 함께 말이죠. 은채는 좋은 기억, 좋은 향수를 가진 채 꽤 괜찮은 어른이 돼서 세상을 살아갈 겁니다. 다른 도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더라도 심지 깊은 정서를 가진 채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고요. 설령 흔들리어 살며 지치더라도 마주하면 힘을 주어 일으켜 세워줄 고향의 풍경과 음식이 있을 겁니다.


은채가 부산 사람으로 커 가는 걸 보는 건 행복합니다. 또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설 연휴에 은채를 위해 전을 데워주면서 혼자 중얼 거렸습니다.

“은채는 아빠 같은 아빠가, 엄마 같은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옆에 있던 아내가 그걸 듣고는, “지가 아나? 있을 땐 모른다.”라고 거들었습니다. 설날에 성묘를 갔다 오는 길에 막히는 와중에도 일부러 진영 휴게소에 들러 긴 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떡소떡과 호두과자를 사주고, 다음날엔 미니 블록을 하루 종일 함께 만들어준 삼촌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은채는 저런 삼촌이 있어서 참 좋겠다. 삼촌이라면 해 줄 거야, 하고 의지가 되는 삼촌을 둬서.’ 연휴의 마지막 날 외할아버지와 실뜨기를 하는 은채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또 했고요.


아빠가 가져보지 못한 고향, 아빠가 가져보지 못한 불알친구, 아빠가 가져보지 못한 살가운 삼촌, 아빠가 가져보지 못한 인자한 할아버지와 무한정 사랑을 베풀어주는 할머니, 그리고 아빠가 가져보지 못한...

딸에게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고, 필요했던 존재가 되어주면서 제 목에 박힌 칼도 거의 다 빠져 나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 났던 흉터도 연해졌고요. 그리고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 됐을지도, 그리고 은채의 1년을 기록하면서 조금 더 나은 아빠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학년 때도 아빠의 소원엔 변함이 없습니다.

“은채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거.”

여기에 작은 소원 하나를 추가합니다. 매일 하루 한 번 아빠를 꼭 안아주는 거. 이 두 가지 소원을 오랫동안 지켜주는 은채가 됐으면, 그래서 오랫동안 딸 바보 아빠로 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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