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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私的) 냉전 시대의 그늘

영화의 위로 25 . 빌리지(2004)

by 최영훈

우리 곁에 있는 냉전

수년 전에 수저 계급론, 그러니까 흙수저, 금수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주제로 한 지역 공동체의 대담에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다. 그 후 수저 계급론은 요 근래 조국 자녀의 아빠 찬스 논란을 거쳐 오며, 젊은 세대 내부에 더 견고한 계급과 편 가름의 성벽에 주춧돌 노릇을 한듯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두껍고 높아진 성벽은 그 수가 더 다양하고 복잡해져서 요즘 서점에는 어떤 주의와 주장을 담은 책과 그것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책들이 대치하고 있다.


전염병이 이런 담쌓기와 편 가르기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꽤 오래전부터 편을 갈라 싸워왔다. 아니 편 가름을 원했다. 김훈 선생님의 책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너는 어는 쪽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난 이쪽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그리 불리어지고 그리 보이기를 원해 왔다.


타자는 괴물이다.

냉전시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과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서로를 괴물로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수많은 대중문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들은 공산주의 국가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포장했고,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미국과 서방 국가와 그 지도자들을 제국주의자,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로 묘사했다. 이런 묘사는 냉전의 벽을 더 높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소련은 철의 장벽이었고, 중국은 죽의 장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벽은 영화 <빌리지>의 벽과 닮았다.


<빌리지>에서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담을 쌓고, 그 담 안의 공동체 유지를 위해 담 근처 숲에는 무서운 괴물이 산다는 공포 괴담을 만들어 공동체 구성원의 이탈을 막아냈다. 안의 괴물은 가상의 괴물이었고, 밖의 괴물은 과거의 경험으로 만들어 놓은 불안과 공포였다. 냉전도 혁명과 전쟁이라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을 쌓았다. 누군가 그 담을 넘어가려면 엄청난 괴물-사상적 반동, 억류, 자유의 구속-이 버티고 있는 공포의 숲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과장이었고, 과장을 위한 사실의 선택이었다.


이 긴 시간 동안 양 진영은 서로를 혐오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웠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에서 썼던 표현을 빌리면 이런 공포는 2차적 공포, 파생적 공포다. 2차적 공포는 “그런 위협과 직접 마주쳤던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침전물”이다. 이 파생적 공포는 “계속해서 마음을 구획하는 프레임”의 역할을 한다. 이 프레임의 견고한 구축을 위해 우린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다. 공중파 방송에선 <전우>, <3840 유격대> 같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을 방영했었고, <똘이 장군> 같은 만화에선 북한 군인과 김일성을 멧돼지 같은 괴물로 묘사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북한과 그 정권에 대해 공포와 혐오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1992년 소련의 해체 때까지 이 담쌓기는 계속됐다.


사적 냉전 시대의 그늘

이제 장벽은 사라지나 했다. 그런데 이제 개인 간의 장벽이 더 높아졌다. 인터넷을 비롯한 소통의 기술과 그 도구는 진보하고 다양해지는데 담은 더 높아졌다. 남녀가 서로를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는 서로를 이기주의다, 꼰대다 말한다. 냉전도 끝나고, 지역 색도 좀 넘어서나 했더니 그보다 더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혐오의 시대는 냉전 시대의 현상을 그대로 모방, 반복하고 있다. 서로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서로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스파이를 활용했던 냉전 시대처럼 더 많은 정보를 더 깊이 찾으려 한다. 이 속에서 서로의 혐오스러운 현상을 경쟁하듯 올린다. 서로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해 더 극단적인 표현을 하고, 가상의 광장에서 세를 불린다. 발언자의 실체 없는 프로파간다로 선동하고 그 선동 속에서 내부는 결속되고 외부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그 위치와 위상이 더 견고해진다.


이 새로운 냉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전문가들마다 말이 많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 탓을 하고, 어떤 이는 발달된 인터넷과 스마트 폰, SNS 탓도 하고, 정규직과 계약직 등 세분화되고 차별화된 노동 시장 탓을 하기도 한다. 그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이런 시대, 혐오와 공포의 시대를 다시 살아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서로를 외면하는 걸 넘어서서 오직 자기 길만을 가는 성과 주체들이 넘쳐나는 시대,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타자를 혐오하고 그 타자가 격리되길 원하는 시대, 혐오하지 않던 타자조차 혐오받아 마땅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시대, 개인이 개인을 적으로 대하는 이 시대가 우리가 극복해야 될 사적 냉전 시대임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넌 다르고 틀리다.

이 새로운 냉전시대의 승리를 위해 개인들은 넷 상에서 끝없는 연대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어느 편인지 확인하기 위함이기에 그 연대엔 깊이가 없다. 그래서 접시에 담긴 물처럼 작은 진동에도 요동치며 찰랑거린다. 이 찰랑거림에선 내 편과 네 편이 끝없이 유동하기에 피아 식별을 위한 정보 탐색을 멈출 수 없다. 그 정보는 타자를 가깝게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확실히 구별해 내기 위해 쓰인다. 이 구별은 혐오의 대상을 멀리 떨어트리고 격리시키는 전제로 사용된다.


이 격리를 위한 정보 확인과 이로 인한 타자의 분리수거는 전선(戰線)의 끝없는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 확장은 백인 중심의 나라에선 인종 차별과 그에 반발하는 테러나 소위 묻지 마 폭력으로도 나타난다. 타자를 향한 혐오는 주체의 공포와 고통을 잊게 하는 상징적 행위다. 어디까지나 상징적이다. 타자를 아무리 혐오해도 우리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내 고통은 그대로 있고 타자의 고통만 증가할 뿐이다. 그러니 사회 전체의 고통은 오히려 증가한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지적했듯이 테러는 자살의 다른 표현이다. 자기혐오가 타자의 혐오로 이어진 것이다. 타자가 불명확한 나라에선 자살을 많이 한다. 일본이 그랬고 우리도 그렇다. 그러나 프랑스 같은 곳에선 과거 식민지의 이민자들이 있어왔고 최근엔 난민도 들어와서 서로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그렇다. 어찌 보면 자학적이고 가학적이다. 난 그대로인데 나보다 더 괴로운 타자를 생산함으로써 상대적 위안을 받는 이런 현상은 국가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낭비다. 우리의 세금이 타자의 고통,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어떤 형태로든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벽을 극복하는 방법, 똘레랑스

이런 경계와 벽을 허물기 위해 우린 이런 현상을 누가 만들었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발원지로 이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 벽을 허무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50여 년 전에 이 혐오의 벽이 무한히 늘어만 가는 혐오의 시대를 예견한 이가 있다. 미셀 푸코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 실린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 한 강연에서 “우리는 서로서로의 전쟁 상태 속에 있다. 전선은 지속적․영구적으로 사회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우리 각자를 한 진영 또는 다른 진영에 위치시키는 것은 바로 이 전선이다. 중립적인 주체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모두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내부의 적에게 이기기 위해 서로를 파헤친다. 서로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해 더 극단적인 표현을 하고, 가상의 광장에서 세를 불린다. 발언자의 실체가 불분명한 프로파간다로 선동하고 그 선동 속에서 내부는 결속되고 외부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은 그 성격이 더 진해진다. 이제는 혐오와 경계심으로 형성된 사적 냉전의 벽을 허무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관용(寬容)과 영어의 tolerance, 불어의 똘레랑스의 의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한 사회, 공동체, 개인이 낯선 타자를 그 개인, 사회, 공동체의 이해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냥 그 다름 자체를 받아들이는 거. 이것을 관용이라 할 수 있다. 한 사회, 개인, 공동체가 관용적이라는 건 구성원과 공동체가 다양해지면서 그 다름의 스펙트럼이 아무리 많아져도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내적으로 버티고 견뎌주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야, 이건만큼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하면 그 사회의 관용은 거기까지다.


이 관용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개혁 시기의 개종의 문제가 함축된 한 사건을 들여다보자. <성 바르톨로뮤 날의 학살>이라는 사건이 있다.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프랑스의 구교와 신교 측이 화해를 해보겠다고 모여서 결혼식을 하기로 한다. 이 밤에 구교 측에서 신교 측을 몰살시킨다. 어디서 자고 있고, 먹고 있고 놀고 있는지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자객을 풀어서 암살한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룬 <여왕 마고>를 보면 칼을 들이댄 후 개종을 약속한 자는 살린다. 우리가 타자를 이해한다는 건 내 틀 안에서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예로 들면 가톨릭의 맥락에서 개신교를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 관용은 다름을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그 사람의 다름을 내 인식의 틀 안에서 해석하여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저 날의 학살 같은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전에 저런 대립조차 없다.


역설적으로 관용으로 타자의 다름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 다름을 너무 찬찬히 관찰하거나 샅샅이 알려는 노력이 없어야 한다. 한자의 뜻 그대로 관용(寬容), 즉 멀리 거리를 두고 타자를 봐야 한다. 신뢰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지 않는 상대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뢰는 사회학자 제임스 콜만(James Coleman)이나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등이 말했던 사회적 자본이 되어 이 성벽의 높이를 낮추고 궁극적으로 허물 것이다.



타자에 대한 연민

덧붙여 이 1차 세계대전의 지루하고 참혹했던 참호전 같은 대치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레비나스의 말에서 더 찾아보자. 그는 <시간과 타자> 첫머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은 주체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사실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자체임을.", 그리고 몇 페이지 지나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자아는 자기 자신에 의해 방해받는다는 것, 그리하여 유물론자의 물질성과 내재의 고독에 사로잡힌다는 것, 노동과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짐을 짊어진다는 것."이라고.


이 레비나스의 문장을 이전에 썼던 칼럼에서 말했던 연민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설국열차>에서처럼 앞 칸으로 가 봤자 어차피 기차 안이고, <빌리지>처럼 높이 담을 쌓아 봤자 지구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인생사 희로애락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임을, 그 존재의 동일함을 인식하고 살면 이 혐오의 전선은 해체되지 않을까?


영화의 위로 무삭제판, 첫 번째 꾸러미가 마무리됐다.

지금도 물론 영화의 위로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다시 25개가 쌓이면 그때 다시 연재하려 한다.

다음 주부터는 코로나 시기의 딸과 함께 보낸 2년이 연재된다.

주로 작년, 그러니까 딸의 3학년 시기를 담고 있다.

1학년 시기를 담았을 때보다 아빠의 생각이 좀 더 들어가 있다.


이 연재가 끝나면 카피라이터가 마주친 많은 사물과 개념에 대한 생각을 써 놓은 원고를 연재할 생각이다.

뭔가 쓸 때는 그럴듯해 보였는데 출판을 위해 백몇십 페이지 써 놓고 나니 이상한 글이 되어 버린 원고다.


이 연재가 끝나면 한 때 사랑했던 시-내 젊은 날은 시의 전성기였다.-를 중심으로 다시 위로 글을 써보려 한다.

아니면 생계형 카피라이터의 꼰대와 훈수 사이를 오가는 노하우 전수나...

지난 20여 년간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돌아보는 글을 연재할 수도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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