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돌봄>을 읽고
"너네 엄마 너무 한 것 아냐? 네 성적에 실업계를 왜 가? 너네 아빠가 일을 안 하면 엄마가 돈 벌어야 하는 것 아냐? 희생하는 게 부모 아니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공공의 역할 부재 때문에 가족 내에만 책임 전가하며 각자도생을 부추긴 사회현상을 알지 못한 채, 내가 해야만 했던 선택의 구체적인 원인을 설명할 길이 없어 친구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가고 싶다고 말을 못 하는 내 마음을 친구들은 모를 것이었다.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는 아버지는 3개월을 일하면 그만큼 꼭 쉬어야만 했다. 그에 따라 흔들리는 가정경제를 그들은 알까. 지겹게 들어야 했던 어머니의 하소연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야 하는 내 사정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매우 위험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안정적인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과 교육 제공이 미비했던 사회 시스템 결핍 탓에 그 절망감을 해소하고자 아버지가 술 마시며 도피했던 것이라는 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지만, 어릴 때에는 다섯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당신의 무능함을 질타하기 바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선택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를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처럼, 친구들도 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이 책 속의 성희가 연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아버지도 이해받지 못했다. 우리는 부재했던 것이다. 심리적인 돌봄에 있어서도.
그래서 돌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이 책이 반가웠다. ‘성인 여성’이 아이 혹은 노부모,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살피는 노동을 ‘돌봄’인 것으로 이해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돌봄’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덮었다.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마음 한편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억압받았던 어린 시절을 치유하지 못한 채 세상과 부딪치며 마주했던 내 한계들이 떠올랐다. 아, 내가 어릴 때부터 겪어야만 했던 것들이 모두 ‘돌봄’과 관련되어 있었구나,라는 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돌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걸, 어린아이들도 돌봄 수혜자가 아닌 제공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성인 남성도 가족 돌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돌봄’의 진짜 의미에 대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돌봄을 경험했던 이 책 속 7명의 이야기를 보며 해답을 찾고 싶었다. 다시 펼쳤다. 용기 내어 완독 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수없이 깨지는 것을 느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저자의 주장에만 매혹되어 변화를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온한 일상 속에서 책만 읽고 깨달음만 갖지 말고 변화를 실천해 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야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이 책 ‘새파란 돌봄’의 저자 조기현 작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돌봄’ 문제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책을 발간했다. ‘정상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돌봄 제공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옥쇄를 채우고 있는지, 나 혼자만 겪는 듯한 고통과 고립감이 얼마나 깊은지, 돌봄을 선택할 수는 없는지, 영 케어러가 돌봄 주체인데도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왜 어른들에게 의존하는 것인지, 돌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약한지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돌봄’의 여러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 속 인터뷰이는 성희, 푸른, 희준, 아름, 형수, 경훈, 서진 총 7명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렵지 않게 내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 속 모든 영 케어러의 사연들이 내 과거의 어느 지점마다 교차점을 이루며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비 얘기가 나오면 바로 돌아섰던 성희의 할머니처럼, 도움을 요청한 푸른에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서도 한 푼도 도와주지 않으려 했던 푸른의 큰아빠처럼,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분수령과 같은 ‘돈’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을 나도 겪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아플지 예고하지 않는 돌봄은 술과 담배에만 의존했던 아버지가 쓰러짐으로써 더욱 깊어졌고, 병원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돌아섰던 아버지의 형제들을 원망하게 했다. 혈육으로 맺어진 ‘정상가족’은 불리한 상황이 되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돌봄’은 이렇게 한 사람의 생에 깊이 스며들어 그 주변마저 뒤흔들고 갈라놓기도 한다.
특히 서진의 이야기가 내 상황과 가장 많이 닮아 있었다. 서진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빠른 취업을 위해 실업고 진학을 원했던 부분에서, 그녀가 학생 때 아버지가 쓰러진 장면에서, 아픈 아버지를 살피고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모든 상황이 내 상황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유독 서진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처럼 모든 영 케어러가 경험한 ‘돌봄’의 공통점은, 경제적인 위기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영 케어러라고 부르며 사회적 지원을 하거나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령화, 저출산, 높은 이혼율, 노인 아닌 인구의 만성 질환과 중증 질환 증가, 산업 재해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돌봄’ 대책을 더욱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인장기요양 인정조사표에 적절한 등급표를 매기는 일, 주돌봄자 존재 여부 등 조사표 개선을 통한 돌봄 부담을 완화하는 일, 영 케어러가 학업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복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 초중등 의무 교육 과정에 돌봄 교육을 넣는 일, 영국의 ‘하우징 퍼스트’ 정책처럼 주거 안정을 보장하는 일, 타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보다 가족 요양보호사에게 적은 임금을 매기는 현 정책을 개선하는 일, 가족을 혈연이나 혼인으로만 한정하지 않은 ‘가족 구성권’을 인정하는 일, 이것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재정 부담, 점직전 접근,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과정, 제도 악용 방지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앞서 열거한 여러 개선 항목들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확실하게 그런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돌봄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경제적 지원과 심리 지원 두 가지로 나누었다. 미래에만 넣어두었던 희망을 더 빠르고 올바르고 확실하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데에서 촉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라고 되어있다. 이처럼 ‘돌봄’은 노인, 아픈 사람, 장애인 등 약자뿐만 아니라 육아, 이웃에 대한 관심도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과 심리 지원 두 가지 지원 중 우리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돌봄은 ‘심리 지원’이다. 과거의 나와 아버지가 심리적인 돌봄에 있어 부재했던 것처럼, 성희가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가족해체 사유’에 대해 질문을 받자 화를 냈던 것처럼, 가정사라 치부되어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무수히 많은 돌봄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다가가며 지원할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으로 한동안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177페이지에 소개된 트론토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돌봄에 관해 토론할 때조차 대부분은 돌봄 수혜자가 아니라 돌봄 제공자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바로 이런 불평등이 우리 자신을 돌봄 수혜자로 인정하고 상상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그의 말처럼 돌봄 제공자였던 7명의 영케어러들의 증언에서는 그들이 돌봄을 받은 적이 있고 받고 있다는 인식을 처음에는 찾기 어려웠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픈 부모를 모시면서 돌봄 수혜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가정경제 붕괴와 기약 없는 돌봄의 연장선 위에서 두려움에 잠식되는 순간을 계속 겪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돌봄 수혜자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목소리를 내는 많은 돌봄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공과 수혜의 이분법적 구분을 없애고 돌봄의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로 묶어서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았다. 또한 ‘돌봄’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가족이 받아야 하는 여러 정책의 허점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들로서 증언하는 기록이라고 본다면, 꼭 돌봄 제공자의 관점이라고 한쪽에 치우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돌봄을 하면서 무엇을 받았을까?’라는 고민을 강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아무것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아빠를 볼 때마다 거북한 연민이 밀려온다는 성희에게서,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킨 이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푸른에게서, 엄마의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기억하는 희준에게서,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다 조현병을 얻은 엄마를 종일 쫓아다니며 챙겼던 아름에게서, 알코올 중독자인 동생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고 해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는 형수에게서,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자 자책하며 ‘돌봄’하기로 선택했던 경훈에게서, 12년 동안 해온 돌봄의 끝이 죄책감으로 남았던 서진에게서, 차근차근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기억에 가닿아보면 ‘수혜’ 받았던 기억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들도 그런 상황에 겪게 될 것이라는 자각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보다 강할 것이다.
다만 당사자들이 현재의 ‘돌봄’이 너무 힘들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것일 뿐, 그들도 스스로의 증언과 행동을 통해 본인들도 수혜 받은 기억을 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에게 ‘수혜 받은 과거 혹은 현재도 수혜를 받고 있다.’라는 느낌을 강요하기보다는,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지금까지 잘 애써왔다고, 이제 그 손 놓지 않겠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지쳐있는 영 케어러의 마음을 보듬는 유일한 ‘심리 돌봄’이 될 테니까.
우리 생애 주기는 이미 재편되고 있으며 재편돼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돌봄은 삶의 걸림돌이나 예외가 아니라 다른 생애 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실천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유명무실한 정책만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년 심리지원 바우처’에 선정되어 이를 이용하고자 심리 상담 센터에 문의했으나 번거롭다는 이유 때문에 그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과거의 나처럼, 경제적 지원도 돌봄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올바른 정책이 성립될 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는 우리부터 출발해야 한다. 바로 가까운 가족, 친척, 이웃의 관심, 이러한 ‘관심’ 자체가 ‘심리 지원’의 한 획이 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쌓인 사회가 첫 번째가 되어야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돌봄이 일상이 되어야 ‘심리 지원’ 하나라도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 책임은 재정 부담 등의 문제를 덜고 ‘경제적 지원’에 포커스를 맞추며 더 나은 사회로의 첫 발을 뗄 수 있을 것이다.
불현듯, 이 책 속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니 중학생 시절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온기가 감돌던 타인의 손을 잡았던 기억이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넣어두어 빛이 바랜 내 이야기를 이 지점에서 고백하고자 한다.
“너 몇 학년 몇 반이니?”
어느 날, 짧게 커트한 머리를 꼬불꼬불하게 파마한 국어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물걸레질을 열심히 하던 내게 질문을 건넸다. 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묻는 건 그분이 처음이었다. 바닥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손에 잡히지 않아 물걸레 전에 비질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던 중이었다. 마트에서 껌을 떼어내려고 바닥을 긁던 남직원 얘기를, 어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했었다. 그 남직원을 보고 옆에 있던 아이 부모가 저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회가 그러하니 너희들도 그런 말 듣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던 선생님 때문에, 바닥에 붙어 손에 잡히지 않는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더 애썼다.
“3학년 X 반이요.”
내 대답을 듣고는 그저 미소 지으면서 토닥거리고 지나가셨다. 왜 물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또 아빠가 일 안 나간다고 매일 울던 엄마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가면 장학금 받고 입학할 수 있으니 경제적인 부담도 줄어들 테니까, 장학금 얘기는 꼭 해야 했다.
그날도 교무실에서 열심히 청소하던 중이었다. 자리에 앉아계시던 국어선생님께서 잠시 탕비실로 가시더니 나를 향해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온기가 감돌던 그분의 손은 지금 생각해도 선명하게 전해져 오는 듯하다.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누군지 궁금했단다. 따로 알아보니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너만 괜찮다면 내가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주고 싶은데 괜찮겠니?"
내 손에 봉투를 쥐어주시며 마음을 건넸던 그분을 보며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를 지속적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진짜 있었구나, 세상에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어느 누구도 안쓰럽다고만 말할 뿐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지 않았다. 효녀라고만 말할 뿐, 아버지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려하지 않았다. 아버지 형제들조차 ‘돈’ 이야기를 꺼내자 연락을 끊었는데, 그저 ‘불우한 가정 형편’이라고 치부되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나날이 힘겨웠는데, 이런 나를 관심 갖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처음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달받았던 그날, 집에 돌아가고 나서 오래도록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관심과 지지가 그렇게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교무실에서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여전히 세상에 화를 내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남았을 수 있다. 그때 내가 교무실을 열심히 청소했던 이유는 억울해서였다. 나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한 진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마트 남직원도 사소한 일을 열심히 행했던 그 모습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사실 상황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평가한다. 대학으로, 직업으로, 직장으로. 적절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본인 탓이라고,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은 네 탓이라고, 그렇게 한 사람에게만 책임 전가 하는 상황 때문에 늘 괴로웠다. 그런 편견 때문에 사회가 정한 틀에 따라가지 않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고, 사회의 프레임에 맞춰 생활하는 것을 불가하게 만드는 ‘돌봄 수혜자’를 미워하게 한다. 난 그때 정말 듣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 탓을 하는 그런 말들 말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네 탓이 아니었다는 그 말을.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애써주고 있다는 격려를. 어떤 일을 하든 넌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그 당시 그분이 내게 전달해 주신 것은 그런 따뜻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돌봄 민주주의’가 구체화되려면 타인에 대한 바른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는 지점이었다.
책을 덮었다. 새벽부터 읽어 내려간 책이었는데 밀도가 높아 한참을 되새겨야 했다. 돌봄에 대해 생각하니,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속 떠올랐다. 용기 내어 펜을 들었다. 지금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쓰고 싶었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도 너무 듣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생전 전하지 못했던 이 말이 부디 아버지께 가닿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이 그의 영혼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 잘 지내시죠?
며칠 전에 아버지 기일이라 친정식구들과 함께 아버지 뵈러 갔었어요. 꿈 이야기하다가 아버지가 꿈에 나오실 때마다 숱 많은 검정 머리에 얼굴은 함박웃음을 하고 계셨다고 말했는데, 오빠도 제가 본 것과 동일하게 젊은 시절의 아버지 모습으로 꿈에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하늘에서도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급하게 편지 써요. 늘 술을 마시며 달래야 했던 공허함 속에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이 가득하셨을 텐데, 이제야 철이 좀 들어서인지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신 탓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언젠가 돌봄 제공자가 언제든 돌봄 수혜자가 돼도 괜찮은 사회가 구현된다면, 그런 사회에서 우리 꼭 다시 부녀 사이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전하고 싶었어요. 딸로서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다음에 딸로 태어나면 아버지의 힘든 마음 외면하지 않고 그 손 꼭 잡아드리면서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후회 없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고, 당신이 애써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아버지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요.
그래서 ‘돌봄’ 하기 괜찮은 사회가 구현되려면 저부터 무언가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요즘 하나둘씩 실천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요, 우선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릴게요.
어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귀가하는 길에, 우리 아이와 같은 학년의 여자아이가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걸 봤어요. 평소에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할아버지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라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 왜 곁에 아무도 없는지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누구를 기다리냐고 물었더니 엄마랑 가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9시 5분이 되었는데도 무슨 일이 있는지 그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서, 더 이상 수업에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그 아이 손을 꼭 잡고 다시 학교로 향했어요. 교실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집에 오니, 일상 속의 이런 관심들이 분명 ‘돌봄 제공자가 언제든 돌봄 수혜자가 돼도 괜찮은 사회’의 첫걸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을 향한 올바른 관심이 당연한 사회, 바른 이해가 정립된 미래를 빨리 앞당겨서 다음 생애에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까지 탄탄한 사회가 구현된다면, 모두가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미래를 향해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테니까요.
이제 아이가 일어날 시간이 되었어요. 오늘도 ‘돌봄’의 하루가 시작되었네요.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약속하며, 그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상 속에서 따뜻한 관심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또 만나요. 너무 그립고 많이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큰딸 올림.
편지를 다 쓰고 나니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듯 잠시 몸을 움찔거리던 아들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무더위 속에서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린 것은 땀뿐만이 아니었다. 눈물을 삭이기 위해 적어도 몇 분은 필요할 것 같았다. 까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때 그 말을 전하지 못한 건 네 탓이 아니라고, 이제라도 그 마음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다행이라고 토닥이는 듯한 까치의 울음소리에 또다시 ‘돌봄’ 받는 내 마음을 느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돌봄’이라는 새로운 물결은 이제 시작이다.
이상, 총 수상한 내역은 더 많지만 그중 5개만 소개해봤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뛰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느릿느릿 가는 달팽이다. 그래도 글을 이만큼 사랑했노라고, 꾸준히 글을 붙잡고 지금까지 왔다고, 그 근거로 부끄러운 글을 이곳에 담아보았다.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하던 과정에서 처음 도전했던 때가 떠올랐다. 임신했을 때 태교 삼아 우연히 도전했던 첫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그 이후 성취감보다는 상금때문에 매년 도전했었다. 출산 후 마주한 사회불평등에 분노하며 독후감에 녹여냈고, 과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글에 담아냈고,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뒤늦게 마음을 헤아리며 눈물로 적어냈다. 그 과정에서 속물적이었던 마음이 점차 순수한 목적으로 치환됐다.
지금은 그냥 책 보고 끄적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인정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진심을 담아 녹여낸다면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는 것이 세상 이치다. 노력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으면 지금은 무명일지언정 언젠가 누구 한 명이라도 알아봐 주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독서하면 무엇이 좋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간다. 정말 좋은 한 가지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메타인지력이 높아져요.
그래서 화를 내지 않게 돼요.
스스로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제 어떤 걸 써야 할까. 핵가족이 대부분인 시대에 합가 했던 이야기를 써볼까, 공모전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곧바로 다른 소재를 생각하는 나. 방황하면서도 글 쓰는 나. 여러 번 도전 끝에 고작 하나 됐어도 그 성취에 기뻐 눈물 흘리는 나. 그래도 괜찮다. 책이 함께하는 인생이니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