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하고 그가 나의 삶의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자 나는 그를 설득해야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나는 사뭇 단호하고 차가운 어조로 내 가족의 비극을 읊은 후,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비장하게 선언하리라. 지금까지 설득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딱히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나는 평생 ’아버지의 죄‘를 은폐한 채 살아왔다.
‘아버지는 가해자가 아니고, 어머니는 피해자가 아니다.’
그를 변호하고, 그를 이해하기로 택한 나는 어머니를 연민하지 못했다. 나는 기꺼이 아버지를 이해했고, 심리적 공범이 되었다. 나의 이해는 정당하다. 매우 객관적인 판단이다. 그렇게 여겨왔던 이유는 나의 인생 전체가 그의 우주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가치관은 나에게 단단하게 뿌리내려 내 인생 전체를 지배했고 나는 이미 완성된 그의 우주 속에서 갈등 없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외도'를 처음 알게 됐을 때 내가 나의 우주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 했을 거라는 식으로 되려 어머니를 비난함으로써 나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는 비겁한 시도였다. 한술 더 떠 '제3자는 그것을 함부로 죄라고 비난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내적갈등을 합리화하며 나의 우주, 나의 유일한 애착을 지켰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진지하게 가족얘기가 나오면 사뭇 단호하고 차가운 어조로 내 가족의 비극을 읊은 후,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비장하게 선언했다. 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내게 반박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 삶에 대한 정당성을 굳혀갔다. 안심이 됐다. 그로 인해 나의 우주는 안전하게 흘러갔다. 회피와 무지로부터 오는 확신은 나의 가짜 행복을 지켜주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우주 속에서 살아온 30년간 나의 삶은 꽤 괜찮아 보였다.
어느 날 때가 왔다고 여긴 나는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나 그렇듯 간단히 설득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날 나의 궤변은 그를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잘못하셨네 ‘
그의 입에서 (그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문장을 들었을 때, 강한 반항심의 파도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곧 그보다 더 거대한 해소감의 바다가 나를 집어삼켰다. 그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냉정했고, 누구도 나에게 해주지 못한 말을 단호하게 뱉었다.
그 순간 나의 우주는 쩍 하고 갈라졌다. 거대한 틈이 드러났고 나는 변호할 힘을 잃었다. 아니 힘을 잃고 싶어졌다. 그가 나의 우주의 멱살을 잡고 대차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의 검은 우주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와 나의 우주를 쾅쾅 내려쳤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라고 여겼다.
어린 시절 공부에 전혀 뜻이 없었지만 고3 때, 학력고사를 단, 세 달 남겨둔 시점에서 서울대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3개월 후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참 여러 번도 들어온 무용담이지만 나는 매번 자랑스러웠다. 그의 자식임이 자랑스러웠고 나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너는 나를 쏙 빼닮았다‘고 얘기했다.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무용담과 넌 나를 닮았다는 마법의 문장을 조합하면 나는 주문에 걸린 듯 알아서 움직였다. '맘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자랐다. 안타깝게도 조금만 노력하면 뭐든 그럭저럭 해냈고 믿음은 단단해져 갔다. 그렇게 나약함을 용납할 수 없는, 나르시시즘으로 무장한 완전체가 되어갔다.
뭘 하던 전투적으로 임한 끝에 20대 초반, 나름의 성취들을 이룬다. ’수능대박, 전속계약, 예대합격 3종 세트’ 였다. 하지만 으쓱함은 잠시였다. 서울대를 간 것도 아니고 데뷔를 한 것도 아니다. 이 정도 성과로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없었다. 크게 성공해서 내가 뛰어난 존재임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아마 나의 아버지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리라 추측해 본다. 그의 우주가 고스란히 나에게 복제되었기 때문인지 우리 부녀의 ‘유대감’만은 하늘을 찌를 듯 깊었다. 그가 아무리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해도, 또한 나의 어머니에게 좋은 남자가 아니었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여성성 안에 불안과 불신을 뿌리 깊이 심어두었던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요일 낮, 늦잠을 자고 있는 아빠의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면 그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숨이 조금 막혔지만 따뜻하고 안심이 됐다. 아빠가 잠에서 깨면 피곤할까 봐 나는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며 그 이불속에 함께 웅크린 채 한참을 있었다. 그 일요일 낮에 그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를 사랑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와 나의 ’유대감‘이 깊어갈수록
나의 ‘자각’은 하루하루 유보되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그의 죄를 인정했을 텐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라는 말씀을 방패 삼아 스스로 자신의 죄를 사하고 나의 입과 나의 사유를 다물게 한 나의 가여운 우주에게 타격 없는 돌멩이 한 무더기라도 실컷 던져봤을 텐데.
그랬다면 좀 더 빨리 나 자신을 발견했을 텐데.
당신과 맞서보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