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님과 조세호님이 나와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퀴즈를 푸는 예능 프로그램에 말을 맛깔나게 하는 작가님 한 분이 나왔다. 한참을 웃기던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한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마법이 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온갖 주문을 외운단다. 현실 세계에서는 과학이 힘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과학을 알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하는 거란다.
수학 공부가 그렇게 대단한 거인지까진 모르겠는데, 과학이 큰 힘을 가졌다는 건 많이 공감이 간다.
갑자기 무슨 과학 타령인가 싶겠지만, 최근 들어 난 과학이 참 대단하다 생각한다. 왜냐고? 한 달 뒤면 만날 아내 뱃속에 아이를 과학의 힘을 빌려 만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 졸여도 안되던 아이 갖기를 나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아이가 생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마음의 준비도 돼있었고, 나름의 노력도 해봤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것이 없자 아내는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난생 처음으로 난임병원을 찾아갔다.
난임병원. 나는 살면서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병원이었다.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자 혹시 내게 문제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아예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막상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서까지도 '에이, 내가 설마'하면서 현실 회피일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위로일지도 모를 생각만을 했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다고 했던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난임병원에서 받아든 결과는 너무 씁쓸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는 엄마가 되기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정상 정자수가 다른 아빠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라 자연임신이 보통의 경우보다 힘들 거라고 했다. 선생님은 자연임신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원한다면 난임시술을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과를 알고나서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많이, 아주 많이 우울했다. 의사 선생님의 자연임신이 가능하다는 스쳐지나가는 말에 한마디에 온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매달 임신에 실패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 마다 아내에겐 괜찮은 척, 태연한 척하며 금방이라도 될 것 같다는 모습을 보여봤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나한테 왜 그러냐고, 눈물 섞인 분노와 원망을 마음 속에서 수도 없이 뱉어냈다. 누구에게 화를 내고있는지도 모른채 난, 긴 시간동안 슬퍼했고, 서운해했고, 야속해했다.
아내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난임시술은 무서워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었다. 주변 지인들이나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를 통해서 시술 과정에서 겪는 부작용이나 힘듬을 모를 리 없었으니 당연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탓'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듯 하지만, 어쨌든 우리 부부의 임신이 힘든 '탓'도 나에게 있었으니 난 아내가 싫다는 난임시술을 하자는 말은 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난 그저 최대한 자연임신이 되길 바라면서 몸에 좋다는 것도 열심히 챙겨서 먹고, 짬짬이 운동도 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몸에 좋다는 약들은 약빨이 없었고, 평소 절이나 교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서인지 내 기도의 기도빨 역시 없었다. 되겠지, 되겠지 하면서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을 때쯤, 내 손을 꼭 잡고 시험관 시술 한 번 해보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내였다.
아내는 어느 봄날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는 내게 여기 와서 앉아보라 했다. 아내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하거나, 여기와서 앉아보라고 하면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이건 세상 모든 남편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는 내게 아내는 그해 여름에 시험관 시술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자기한테 잘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는 딱히 길게 말하지도 않았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그때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험관 시술을 하기 전, 내가 아내에게 한 약속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아내의 배에 놓아야 하는 배 주사를 내가 다 놓아주기로 한 것이다. 자기의 배에 직접 주사 놓기가 무섭지는 않을까 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한 약속이었다. 내 딴에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내 덜 아프게 해 보려고, 빈 주사기를 내 배에 찔러보면서 손에 어떤 느낌이 전해지는지 사전에 테스트도 해보고 그랬었다.
실제로 시술 중에 아내의 배에 놓는 배 주사는 모두 내가 놨었다. 첫 주에는 주사를 하루에 하나씩만 놓으면 됐다. 배꼽을 기준으로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그러다가 다음 주가 되자 하루에 배 주사를 두 개씩 놔야 했다. 놔야 하는 주사가 많아지면서 아내의 배에는 주사자국이 하나, 둘 눈에 띄게 늘었었다.
하루는 주사를 맞으려고 아내가 티셔츠를 살짝 들췄는데, 아내 배에 온통 주사자국이 보여서 좀처럼 주사를 놓을 마땅한 자리가 보이질 않았다. 배 여기저기에 불긋불긋 보이는 주사자국에 마음이 찡했다. 괜히 나 때문에 애먼 고생을 아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항상 귓등으로도 안 듣던 핸드폰 전자파가 몸에 안 좋으니까 바지 주머니에 넣지 마라던, 전자파 남자 건강에 안 좋으니까 컴퓨터 좀 그만하라던 엄마 잔소리를 좀 세겨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싶기까지 했다.
주사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을만큼 온통 주사자국과 멍자국 뿐인 아내의 배를 보면서 아내가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 또 큰 결심해준 거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이 찡하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주사기를 들고 갑자기 그러고 있는 나를 아내는 또 금세도 알아차리고는 여보 지금 우냐며 물었다. 괜히 별말 못하고 그냥 미안해서 그래, 고마워서 그래 이러면서 쭈뼛쭈뼛 있는 나를 아내는 놀렸다. 울보라고.
다시 정신 차리고 주사를 놓고 나자, 아내는 지금의 그 마음 잘 기억하고 앞으로 자기한테 잘하라고 했다. 나는 끄덕끄덕 알겠다고 했다. 물론 그 후로 아내에게 그날 주사기 들고 울면서 뭐라도 다 해줄 것 같던 마음가짐을 벌써 잊은 것 같다며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지만, 그래도 그때의 찡한 마음은 여전히 선명하다. 아내 배에 남아있던 주사자국만큼이나 선명하게 말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와 아내는 시험관 시술 첫 번째만에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다음 달이면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한 번만에 시험관이 성공하는 건 엄청난 운이라고 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고생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너무도 좋았다. 정말로.
앞에서 잠깐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갖게 해 준 과학이, 그러니까 의학이 대단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아빠가 될 수 있었던 것 과학이나 의학보다는 아내가 더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날 위해서, 우리 부부를 위해서, 아기를 위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불편함을 참아내 줬던 아내가 참 대단하고, 또 고맙다. 그렇게 고맙다면서 시험관 시술과 임신기간 동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은 했을까? 이 못난 남편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말로만, 글로만 그러지 말고 앞으로는 행동으로 좀 잘 하자.
한 손에 주사기를 들고, 아내 배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날 아침의 감정을 기억하자. 기억만 하지 말고, 움직이자. 뭐라도 해야 그 고마움에 보답하지 않겠니?
그리고 다시 한 번. 여보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