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공감이 부족해서, 어떤 사람들은 사과가 필요한 사람의 필요를 상관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했음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사과를 못한다. 또는 정말 사과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진짜 아닌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사과를 못하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다. 미안하다고 하면 무엇을 잃을 것 같은 마음, 내가 상대방보다 낮아질 것 같은 마음, 내가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면 스스로가 쪼그라들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 또는 상대방과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또는 사과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사과가 어렵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자신을 약하게 만들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 잘못된 행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건강한 자아가 없는 사람은 사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르시스트들은 사과하지 못한다. 또한 나와 너 사이의 분명한 경계가 없는 문화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 경계를 침범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공개적인 사과에는 잘못을 인정을 했을 때, 사회적 위치, 권력, 재산 등 많은 것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법적 책임이 걸려있는 경우, 증거가 명백하기 전에는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신뢰는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신뢰한다.
연구에 의하면, 진심으로 하는 사과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과 행복을 향상시키고, 스트레스를 낮춘다고 한다. 왜냐면 우리가 미안하다고 할 때, 자신의 못나고 잘못한 점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할 수 있으면, 우리는 “나는 늘 옳아야 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서 부족하기도 한 나를 데리고 좀 더 유연하게 살 수 있으며,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사과와 회복과 용서가 기능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과는 사과받지 못해 억울한 사람을 해방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스스로를 자유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