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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엣지정 Sep 24. 2021

그 여자, 집

단편소설

1. 단편소설 <그 여자, 집>


 그녀의 집은 하얗다. 소파가 있던 자리 뒤쪽 벽과 아이방 천정을 빼고는 집안 전체 벽지가 흰색이다. 보일러실과 세탁실 겸 옷방 용도로 쓰였던 양쪽 베란다는 흰색 페인트질이 되어 있고 바닥도 흰색 타일이 붙어있다. 몰딩 틀이나 창틀, 문틀이 흰색 도장이고 문짝이나 가구들도 대부분 흰색이거나 흰색에 가깝다. 흰색이 더러움에 취약하다는 건 선입견이다. 흰색은 짙은 색에 비해 쌓인 먼저가 덜 보이고 다른 장치 없이 집안의 명도를 높일 수 있다. 분홍색 하늘색  회색 등 강렬한 원색을 순화시켜주는 기능도 있다.

 그녀의 집은 대문을 제외한 모든 문이 항상 열려있었다. 아이방은 입구 쪽 콘센트에 멀티탭을 연결해 전자레인지와 밥통 등 24시간 작동돼야 하는 주방용 가전을 연결해 문을 닫을 수 없도록 했다. 컴퓨터가 있는 서재는 책장과 연결된 책상이 방문 입구 1/3을 막고 있는 크기여서 애당초 여닫이문으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 부부의 침실 문도 사는 내내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었다.

 그녀가 집안 구석구석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정확히 13년 8개월 하고도 나흘을 산 집이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입주할 땐 좁게만 느껴졌던 집이었는데 철희의 부재로 빈 공간이 점점 늘어났고 아이까지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아이짐을  뺀 후 거의 빈집처럼 되어버렸다. 세 식구가 다시 모여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즈음 집을 팔았다. 밖에서 차를 빼라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녀는 급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뒤돌아 서서 또 한 번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그 집은 곧 그녀였다.


 대문은 열려있었다. 잠긴 듯했지만 개폐 스프링 스위치를 제쳐서 잠금장치를 먹통으로 만들고 최대한 밀어 놓은 것이었다. 열한 살 소녀는 살며시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세 번째 계단 화분 받침에서 작은 열쇠 하나를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대문 옆으로 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옅은 분홍빛 타일 바닥, 흰 페인트 벽면에는 오물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살짝 몸을 기울여 윤기 나는 좌변식 도기 변기 안을 내려다보았다. 암모니아 냄새가 훅 올라왔다. 코 막는 것을 또 잊었다. 공이 튕겨 오르는 속도만큼이나 머리를 재빨리 쳐들고 나와 옆에 나란히 붙은 목욕탕(실외에 있어 아주 더운 여름이 아니면 목욕은 힘들었고 세탁실에 가까운) 문을 열었다. 화장실의 다섯 배 크기는 됨 직한 욕조에는 똑똑 떨어진 물이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몇 발짝 안으로 들어가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쪽으로 갈수록 검은빛을 띠는 수조 속은 그날도 역시 소녀가 상상했던 구렁이나 뱀은 없었다. 벼운 한숨을 내뱉고 정원을 따라 뒷방으로 걸어갔다. 마당 정원이라 해봐야 제법 큰 동백나무 한 그루와 이사 오던 해에 엄마가 심은 키 작은 귤나무 세 그루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얼마 전부터 돌 틈 사이로 이름 모를 새싹들이 삐죽이 올라와 제법 풍성해지고 있었다.

 뒷방은 한 때 인천 아저씨가 살던 곳이었다. 엄마는 왜 그를 "짠물"이라 불렀는지 모르지만 소녀의 눈에는 그가 키는 작아도 피부가 백옥같이 하얘서 모든 드레스셔츠에 검정색 양복이 정말 잘 어울리는 멋쟁이라고 생각했다. 얼굴도 작고 동글동글해서 소녀가 흔히 봐온 아저씨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지나간 자리는 늘 꽃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보다 짙고 오묘한 냄새가 났다. 어디서 누구에게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소녀는 뒷방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아저씨가 나간 이후로 동네 전봇대마다 <큰방 1, 부엌 1, 큰 다락방 1, 즉시 입주 가능>이라 적힌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대략 상상할 수가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화장실 문과 똑같이 생긴 출입구 문에 채워져 있는 조그만 자물쇠를 아래로 훅 당겨본 후 소녀는 재빨리 돌아 뛰어나왔다. 누군가 그 안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골목 안은 총 여섯 개의 대문이 있었다. 입구부터 네 개의 집은 잔디가 깔린 정원에 연못이 있을 만큼 크고 근사했다. 소녀는 골목을 지나올 때마다 대문 안으로 훤히 보이는 집들을 구경했다. 소녀의 집은 골목 제일 끝집이었고 다섯 번째 집과는 대문이 기역자로 위치에 있어서 골목 입구에서 유일하게 정면으로 대문이 보였다. 다른 다섯 집에 비해 작고 구조도 많이 달랐지만 이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았다. 큰 방이 3개였고 거실과 정원과 넓은 옥상, 다락방까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처음부터 이 집을 못마땅해했다. 지역적으로 땅값이 비싸서 큰 빚을 얻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음악과 관련된 아버지의 직업이 네 개나 됐지만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 무리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엄마와 자매처럼 지내는 친구와 한 동네로 이사하기로 했고 막다른 골목 마지막 은 모두가 꺼려서 이 동네 시세에 비해 싸게 나왔으니 오히려 이런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소녀에게 그 집은 천국이었다. 단 하나 불만은 집으로 가는 골목이 비포장길이어서 비가 오면 여기저기 지렁이가 흙에서 기어 나와 꿈틀거렸다. 거기다 소녀의 집 담장 너머 버스 종점 쪽에서 키우는 닭들이 비가 오면 여지없이 넘어와 입에 지렁이를 물고 온 골목을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지렁이도 싫었지만 닭은 더 무섭고 싫었다. 비 오는 하굣길 골목으로 들어서면 소녀에게 우산은 닭 쫓는 무기가 되었다.


 그날, 비가 왔다. 소녀는 지렁이를 피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다가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 보고 한달음에 뛰어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고 마당에 서 있던 엄마가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소리는 뒷방 쪽에서 났다. 소녀는 뒷방과 가까운 공부방에서 숙제를 하기로 했다. 인천 아저씨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간간히 들렸지만 여자의 울음소리에 묻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의 아내란 아줌마는 아저씨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간혹 아저씨 방에서 나오던 아줌마는 이쁘고 날씬했는데 그 아줌마가 아니었다. 새벽녘에 소녀는 오줌을 누러 거실로 나왔다가 아저씨가 바람이 났다고 엄마가 아빠한테 말하는 걸 들었다. 엄마는 얄미워서 아저씨의 아내에게 고자질을 했다고 했다. 소녀는 어른들이 고자질을 하는 것도, 바람은 부는 건데 났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자를 울린 건 인천 아저씨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우는 아줌마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참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른이 왜 울까?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는데......'

소녀가 무얼 사달라고 떼쓰거나 잘못을 질타받을 때 눈물을 보이면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인천 아저씨가 방을 빼던 날  소녀는 더 이상 아저씨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운함이 컸지만 여자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실망감과 나흘 뒤가 추석이라는 설렘으로 위안을 삼았다. 엄마 따라 시장 가는 재미도 쏠쏠했고 부엌방 다락에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도 즐거웠다. 추석 전 날엔 세 명의 삼촌과 그 가족들까지 다 모여서 할머니를 포함해 무려 스물두 명이 모였다. 어느 방을 가도 북적거렸고 소녀는 행복했다.

 늦은 저녁때였다. 숙모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있던 부엌에서 와당탕 그릇 깨지는 소리와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촌동생들과 인형놀이를 하고 있던 소녀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할머니가 송편을 빚고 있었다. 엄마가 한걸음에 뛰어 들어와 할머니 앞에 앉았다.

"말해봐 엄마. 무슨 소린지..... 어떤 년이, 누가 또 며느리야? 나는 누구야? 내 새끼들은 뭐야?"

할머니는 석고상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고 숙모들은 할머니의 팔을 잡고 달려드는 엄마를 제지하려고 했다. 소녀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엄마가 죽을 만큼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제일 큰 숙모가 큰삼촌에게 끌려가더니 한동안 서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던 삼촌들도 서둘러 짐을 챙겨 할머니와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어떤 방법으로도 엄마를 진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거 같았다.

"너네들 모두가 나를 허수아비 취급했어. 너희 족속들과 다시 만나는 날엔 우리 다섯 식구가 살점 하나 없이 까마귀밥이 되어 있을 거야."

엄마 편은 아무도 없었다. 집은 일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는 엄마에게 몇 차례 빰을 맞았다. 엄마는 다 같이 죽자며 연탄 화덕을 방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집안 전체에 차례 음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엄마는 자해를 했다.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사정없이 찧었다. 소녀의 언니도 동생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울면서 엄마를 잡고 늘어졌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더 천하장사가 되었다. 엄마의 신체 여러 곳에서 피가 흘렀다.

'운다고 해결되지 않아.'

소녀는 외할머니 집으로 뛰었다. 낮에 심부름을 다닐 때도 한쪽이 산이라 사람 왕래가 뜸해서 무서웠던 그 길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엇이 등 뒤에서 잡아당기고 땅바닥에서 솟아 올라 소녀의 다리를 잡아끌어 마치 허공 속을 제자리 뛰기 하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달리고 또 달려가 할머니 집 대문을 두들겼다.

"할머니 할머니 엄마가 죽어요."

 그해 소녀에게 추석은 없었다.


 아버지가 3년 전, '김선자'란 여자와 소녀의 남동생보다 두 살이 적고 돌림자'태'를 쓰는 사내아이를 데리고 할머니가 사는 진주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당신 막내아들과 불화로 잠시 친정에 가 있던 숙모의 신혼방에다 그들을 하룻밤 재웠다. 진주에 살던 세 명의 숙모들은 두 해가 넘게 쉬쉬했다가 엄마가 뒷방 인천 아저씨의 외도 얘기를 하며 최근 아버지가 외박이 잦다고 의심 가는 소리를 하자 큰 숙모가 '아직도 그 여자인가?'하고 불식 간에 내뱉은 말이 난리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날도 비가 왔다. 소나기였다. 아침엔 화창해서 우산 없이 학교를 갔기 때문에 소녀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닭 쫓을 일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왕이면 덜 젖은 땅을 골라 어렵게 한 발짝씩 내딛고 있었다. 반쯤이나 갔을까? 골목 끝까지 휘 둘러봐도 닭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 보이는 무엇인가가 소녀 집 앞에 누워있었다. 굵은 빗방울에 튕기는 흙탕물을 옴팡 맞으며 부르르 몸서리를 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에겐 술냄새가 진동했고 소녀는 옆집 대문을 또 두드렸다. 아줌마는 마지못해 엄마를 집안으로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추석 전 날 이후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던 그즈음, 그런 일들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엄마는 어떤 형태로든 아버지에 대한 시위를 했다. 그 여자를 엄마 눈앞에 보여줄 때까지 그러리라 선포하고 시작한 행동이었다. 엄마를 방으로 옮겨 옷을 벗기려는데 아기처럼 오줌을 쌌다. 소녀는 따뜻한 물 타월로 엄마를 닦이고 옷을 갈아 입힌 후 목욕탕에서 비와 오줌에 젖은 엄마 옷을 빨았다. 수조 안에 구렁이만큼이나 커다란 지렁이가 꿈틀대고 있었지만 그보다 엄마가 죽을까 봐 더 무서웠다. 소녀는 빨래판에서 헛도는 엄마의 속옷에 비누칠을 하면서 소리 내어 울었다. 또 배가 아파왔다. 때 이른 겨울바람에 손이 시렸다.

"운다고 해결되진 않아!"


 엄마는 고열과 영양실조로 사경을 헤매는 날이 많았다. 소녀는 외할머니에게 엄마를 혼자 두지 말자고 제안했다. 아버지가 있을 때도 엄마는 위험했다. 심신이 들볶인 아버지도 이성을 잃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석 달째 계속되는 엄마의 비이성적 행동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지쳐가고 있었고 할머니도 소녀가 몇 번을 쫓아가야 마지못해 와보곤 했다. 소녀도 언니나 동생처럼 늘 엄마 곁을 감시하고 지켜주는 믿음직한 동생이나 누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무척 힘이 들었다.

 엄마의 안중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은 늘 살벌했다. 큰 방 문이 오랜 시간 닫혀있으면 불안했다. 유독 엄마방만 짙은 밤색 장판이 깔려 있어서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엄마가 자해를 해서 피가 범벅이었을 때도 표시가 나지 않아 크게 놀란 적도 있었다. 엄마는 집요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개인 레슨 하는 일을 포함해서 일자리  3개를 잃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무렵, 아버지가 마침내 엄마에게 항복을 했다. 엄마를 그 여자의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소녀도 동행을 했다. 그 여자 집엔 우리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상장패와 임명장 같은 것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것들을 전부 던지고 박살 내는 걸로는 부족해 수차례 거품을 물고 실신을 했다.

'김선자'란 여자는 엄마에 비해 참으로 차분했다. 엄마가 정신을 잃으면 옆에서 물을 먹이기도 하고 물수건을 머리에 대주기도 하다가 엄마가 깨어나면 무릎을 꿇고 앉아 잘못을 빌었다. 엄마에게 뺨을 맞거나 머리채가 흔들려도 별 동요하지 않았다.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수 차례 했고 소녀가 울면 눈물을 닦아주며 소녀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엄마와 소녀가 보는 앞에서 그 여자에게 잘 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여자의 집을 다녀온 사흘 뒤 드디어 엄마가 자살에 성공했다. 아버지에겐 그 여자를 보여 주면 다 용서하겠노라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가 엄마 앞에서 그 여자에게 작별을 선언하고 그 여자도 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 맹세를 했음에도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소녀가 오후반 수업을 마치고 4시가 넘어 귀가를 했을 때 대문도 현관문도 모두 잠긴 듯이 열려 있었다. 엄마는 소녀의 마지막 점검 장소인 부엌에서 발견되었다.

 소녀는 엄마가 언젠간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 여자를 보고 난 이후로도 음식을 먹지 않았고 밤낮으로 울었다. 영양주사를 맞아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면 죽을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소녀가 엄마 생명의 은인이라 했지만 이번만큼은 엄마를 살릴 수 없을 거란 걸 직감했다. 아니 소녀는 엄마를 살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가 죽지 않으면 소녀가 죽을 것 같았다. 소녀도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웠다. 편안했다.


'오늘은 한 번에 열 수 있을까?"

소녀는 기대했지만 여지없이 몇 번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조금 전 그렇게 꽂았을 댄 꿈쩍도 않던 열쇠가 맥없이 스윽 돌아갔다. 지문 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마루, 이른 봄날에 실내가 바깥보다 더 큰 한기를 품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놓고 거실 중앙을 가로질러 격자형 창살에 전체 반투명 유리가 끼워져 있는 여닫이 큰 방문을 열었다. 방 정면에는 차가운 느낌의 철제 침대가 있고 그 위엔 다홍색 문양이 현란한 담요가 덮여 있었다. 좌측 벽에는 화장대도 서랍장도 옷장도 진열장도 아닌 정체성 없는 가구, 특히 유리 달린 선반 아래 쑥 들어가 위치한 한 뼘 너비의 긴 거울의 용도가 애매한 장이 놓여있었다. 그 옆엔 7단 고단스장(엄마는 그 가구를 그렇게 불렀다) 그 옆엔 옷가지 하나 걸려 있지 않은 나무 옷걸이가 앙상한 팔을 뻗듯 처량스럽게 서 있었다. 소녀는 방에 들어가지 않은 채 천장까지 휘 둘러보고는 힘겹게 문을 닫았다. 돌아서 몇 발자국을 옮겨 오른쪽에 있는 공부방 미닫이 방문 고리를 돌렸다. 좌측 창가 쪽으로 철제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하나는 중학생인 언니 꺼고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과 소녀가 함께 쓰는 거였지만 셋 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 방은 크기에 비해 창이 크고  쪽으로 나있어 여름에도 한기가 돌았다. 소녀는 발바닥까지 시린 느낌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과 대치되는 우측 벽에는 엄마가 결혼 때 해왔다는 오동나무 소재에 봉황새 한 마리가 자개로 조각되어 있는 장롱이 놓여있었다. 오른쪽은 이불장, 왼쪽은 옷장 형태이 전형적인 구조였지만 소녀에게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다. 세월의 무게만큼 둔탁해진 장롱 문짝을 앞머리를 살짝 들어 익숙한 솜씨로 열었다.

 책장을 연상케 할 만큼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들. 세계문학전집 철학 에세이 전집 김삿갓 문학전집 톨스토이 문학선집 한국 단편문학선집. 똑같은 두꺼운 표지에 겉 케이스까지 끼워진 책들이 각각 십여 권씩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아주 작은 사이즈의 얇은 책들, 문고판이라 하는 책들도 백 권은 넘게 꽂혀있었다. 의자를 딛고 올라서면 아버지의 학교 앨범부터 가족 사진첩이 검은 실로 일일이 철해서 묶어놓은 오선지 악보들과 흘러간 옛 노래 전집이나 백과사전 같은 한 권이 어마어마한 무게와 부피를 자랑하는 책들과 나란히 꽂혀 있었다.

 왼쪽 문은 오른쪽보다 훨씬 더 뻑뻑했다. 내부 반쪽은 수납공간으로 개조해서 공구 박스 같은 것과 가방과 모자, 어릴 적 소녀와 형제들이 가지고 놀던 추억의 장난감들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 옆엔 옷걸이가 장착되어 있는 옷장이 그대로 있었는데, 거기엔 한 번도 입은 걸 본 적 없는 엄마와 아빠의 옛날 옷들이 가지런히 새 것처럼 걸려 있었다. 소녀는 그중에서도 초록색과 채도를 달리 한 또 다른 초록색이 스트라이프 되어있는 원피스를 빼냈다. 너무 부드러운 천이라 옷걸이에 다시 걸 때마다 애를 먹었지만 소녀는 매일 원피스를 입어봤다. 얼마나 더 크면 예쁘게 입을 수 있을까? 지퍼나 단추도 없고 길이도 지나치게 길어서 키가 작은 엄마도 입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원피스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 몸에서 네가 빛나게 해 줄게.'

 소녀는 원피스를 엄마를 안듯 꼭 안았다가 깊은 호흡으로 나지도 않는 엄마 냄새를 맡았다. 원래의 위치대로 정리한 후 노란 장판 위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져 있는지 점검했다. 문을 닫고 큰 방과 공부방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 뭔가 꼭 숨어있을 것만 같은 그곳을 숨바꼭질할 때처럼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스텐레이스 요강과 희끄무레한 초록색 뚜껑이 덮인 청자 빛깔의 도기 요강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늘 그 위치 그대로였다.

 소녀는 부엌방으로 갔다. 비로소 온기가 느껴졌다. 큰 방 침대 위에 놓여 있던 것과 색깔만 조금 다른 담요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소녀는 그 방에 있는 다락문과 부엌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릇장과 냉장고 사이에 세워져 있는 상을 펴고 그 옆 선반에 놓인 쏘니 미니 컴포넌트 오디오에 전원을 꽂고 스위치를 올렸다. 라디오에서 잔잔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음악을 들으며 숙제를 하고 책을 읽을 계획이었다. 소녀는 매일 반복되는 이런 평온한 일상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그 집은 결국 경매 처분되었고 열  남짓한 방 두 개짜리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했다. 불과 2년도 채 안되게 살았던 막다른 골목 마지막 집. 그 여자, 집은 소녀에게 너무도 잔인한 기억의 아지트였다.


 숙경이 간 밤에 또 그 꿈을 꾸었다.

 시꺼먼 페인트가 칠해진 철제 대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집을 소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즐겨 듣던 엘칸도르 파사(El condor pasa)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녀는 구슬픈 백파이프 연주곡보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르는 번안곡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팝송이 훨씬 좋았지만 아버지는 늘 경음악 버전을 틀었다.

 화장실 목욕탕 뒷방 큰방 공부방 부엌방.... 늘  그리했듯 순서대로 집 전체를 샅샅이 둘러봤다. 그 집의 부분 부분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림자까지도 선명히 보였다. 꿈속에서 소녀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을 꼭 했다. 부엌으로 나가는 미닫이문을 여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늘 보고야 말았다. 비쩍 마르고 비틀어져 아이같이 조그만 엄마가 선혈이 낭자한 부엌 바닥에 고꾸라져 죽어 있는 것을........

 "엄마......"

숙경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기분 나쁜 습기가 침대 시트에 흥건했다. 휴대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 일도 없다."

아버지는 숙경이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하면 엄마 꿈을 꿨다는 걸 알아서 평소보다 훨씬 더 냉랭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 아버지도 술이 거하게 취하면 늘 자신이 죄인이라며 울어댔다.

 숙경은 그 사건 이후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엄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불편하게 하면 속 넓고 우아했던 그 여인에게 우리를 버리고 가버릴까 봐 무서웠고, 철이 들어서는 아버지에 대한 무한 연민이 생겨서였다. 사실 숙경은 엄마의 죽음을 외가 식구들처럼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이지만 익숙한 위치에서 찾은 담배에 불을 댕기고 현관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조간신문을 챙겼다.

사회면에 10대 시절의 특수 경험에 대한 분노와 우울감이 인생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언니도 동생도 이혼을 했고 자신도 평범하게 살고 있지 않으니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환경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마치 큰 연구 결과라도 되는 것처럼 지면을 가득 채워놓은 게 웃겼다.


 엄마에게 죽을 자유를 주었을 때 소녀는 엄마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그 반대였다. 늘 밝고 자신감에 차 있던 여자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 이유가 오로지 한 남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면 그게 과연 사랑이었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셋 씩이나 둔 엄마이기도 한 그녀가 '배신'이란 극한 분노를 다스릴 방법이 죽음밖에 없었을까? 엄마의 삶은 숙경이 성장할수록 삶에 화두가 되어갔다.

 엄마의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 중에서도 격정과 집착을 보이는 마니아적인 사랑이었고 결혼을 한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기도 했다. 결혼은 현실과 이성이 결합한 프라그마적인 사랑을 실천할 자신이 있을때 할거라 생각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숙경이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샤르트르의 사랑에 심취해 있을 때 철희를 만났다. 밀란쿤데라의 '에로틱한 우정'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철희도 숙경과 비슷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 문제에 부딪히면 "여기는 대한민국이지 이태리나 미국이 아니야."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결혼 6년 차에 우연적 사랑에 목숨을 걸고 나왔다. 숙경은 그보다 여덟 살이 많은 철희의 운명적 여자를 지방 변두리 술집에서 소개받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

숙경이 남의 일을 대하듯 입가에 미소까지 띠며 말했다.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진 않아. 네가 말한 대로 그녀는 지금 내 감성을 흔들고 있지만 곧 지나갈 우연일 거야. 넌 내게 필연인 거고. 지금 내겐 저 여자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만 네가 내 곁에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

숙경의 빙의라도 된 듯 토씨 하나 안 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철희를 보며 그녀의 자존심이 바닥을 쳤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결혼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질투로 경쟁하듯 혼외정사에 열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상대방의 대상을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부부라도 서로의 삶과 자유에 간섭하지 않는 이성적이고 비감상적 관계여야만 진정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해온 숙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에 철희가 숙경을 호출했다. 여름옷과 트렁크 팬티 볼링 백을 가져와달라는 거였다. 숙경은 그가 좋아하는 멸치젓갈로 파김치를 버무렸다. 엿기름 많이 들어간 걸쭉한 식혜에 들기름으로 잰 김, 꼬들하게 말린 코다리로 조림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처럼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필 여름에 다시 볼링을 시작하겠다는 건 뭐야? 사타구니에 땀이 차 짓무른다고 툴툴대면서......'


 일주일간 경주에서 신혼 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숙경은 자신이 건축한 모듈러 주택으로 입주를 서둘렀다. 두 번째 그녀의 집은 자연광보다는 조명에 더 신경을 쓴 집이었다. 밖이 훤한데도 실내는 비교적 어두웠다. 실내가 너무 밝아 얼굴 주름이 너무 선명해 보이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바닥도 벽도 모두 자주 계통의 색을 썼다. 백색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조그만 발버둥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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