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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엣지정 Sep 29. 2021

신은 알고 있을까

단편소설


神은 알고 있을까?


 현란한 조명,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 속에 그는 불쑥 솟아 있었다. 그를 포함한 서너 명이 원형으로 모여 있었고 다들 체격이 좋았지만 그가 유독 눈에 띄었다. 보폭을 좁게 잡고 무릎은 약간 굽힌 엉거주춤한 자세로 힙과 팔을 같은 방향으로 흔들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밝게 붉은 셔츠를 흰색 라운드티와 겹쳐 입어 소매 끝선을 접었고, 라텍스 소재인 듯한 베이지색 바지도 팬티선이 드러날 만큼 밀착되게 입고 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언뜻 봐도 190센티가 넘는 키, 떡 벌어진 어깨, 어둠 속에서도 온몸에 골고루 분포된 찰진 근육과 윤기 나는 피부가 돋보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춤을 추기보다는 하룻밤에 어울려볼 짝을 찾듯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는 바로 옆에 여자가 노골적으로 유혹을 해도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리듬 타기에만 몰입해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현선이 담당 웨이터, 박지성을 불렀다.

 “에이 뭐야? 우릴 이렇게 내버려 둘 거야? 쟤는 정말 외로운 친구라니깐.

 “누나 물색 중이니까 기다려. 조금 전 손님들이 많이 들어왔어. 내가 누나들 퀄리티를 아는데 아무나 엮을 순 없잖아?”

 술이 취한 현선인 느물거리는 박지성에게 돈 값을 하란 듯이 임페리얼 17년 산을 넘치도록 따라주었다.

  

 그들이 우리 룸에 들어온 건 새벽 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두 명이 먼저 왔는데 난 바로 그의 일행임을 알 수 있었다. 박지성이 수경과 현선의  옆자리로 그들을 안내했다.

 “어서 오셔요. 같이 오신 분이 더 있죠?”

 “아, 네에. 화장실 가셨습니다.”

 난 현선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먼저 술잔을 건네며 물었다.

 여자 셋이 앉아 있는 클럽 룸에 들어오는 여느 남자들처럼 그들도 반쯤은 넋이 나가 있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이라는데 머리가 벗어져서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전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또 한 남자는 까만 이마에 석 줄 주름이 너무도 선명했고, 그걸 더 튀게 만드는 곱슬머리가 분홍색 카라넥 티셔츠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현선은 물론이고 수경이도 자기 옆에 앉은 파트너를 마음에 들어 할 리 없었다. 현선은 그들이 술 한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부담스러우시면 나가셔도 돼요.”라고 쌀쌀맞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 현선에게 눈으로 말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는 박지성에게 억지로 끌려온 듯 문 앞에서 쭈삣거렸다. 앞에 대머리가 손짓을 하자 그제야 몇 발짝 들어와서 어설프게 웃고 서 있었다. 난 내 옆자리로 안내하며 마치 VIP 고객을 응대하듯 성의 있고 친절히 대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옆모습이 조각 같았다. 활짝 웃을 때의 입 속은 무척 정갈했다. 하지만 도시적이고 세련된 풍모와는 달리 앉아 있을 땐 양쪽 무릎 위에 둥글게 주먹을 말아 올려놓았고, 대화 중에도 눈을 마주치기보다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허공을 응시하며 “네 그렇습니다”,“아닙니다” 등의 지극히 경직된 언어를 썼다. 더 마시면 실수할 것 같다고 두 번째 잔을 거절하는데,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상당히 절도 있는 모습이어서 농담 삼아 “군인이셔요?” 물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육군 장교”라고 대답했다. 나흘을 행군과 포격훈련으로 밤을 새웠고 당일 새벽 4시에 복귀해서 DMZ로 2차 훈련을 들어간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막무가내로 손을 잡고 끌고 가는 겁니다. 어딜 가냐고 했더니 제 일행이 있다더군요. 가긴 했지만 당혹스럽더군요. 그때 당신을 봤죠. 일어나서 제게 인사를 하더군요. 부하들이 있긴 했지만 당신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예의가 바르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금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해졌어요. 밝고 이지적이며 자신감도 있고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어요. 청바지를 입었지만 신비로운 매력도 보였어요.”

 고작 두 커플만이 부르스랍시고 서로 엉켜 붙어 비비적거리는 스테이지! 어깨선에도 못 미치는 나를 어설프게 안고 연신 귀속말을 해대는 그에게 심한 취기가 느껴졌다. 다시 룸으로 들어갔을 때 현선은 예상대로 그들을 내보내고 샐쭉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제 친구 마음에 드세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 근데 우린 세 명이 왔잖아요? 친구가 마음에 있다고 계속 여기 계시는 건 민폐예요. 전화번호나 주시고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시는 게 에티켓이랍니다.”

 현선이 그와 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그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그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안해요. 잘 가고 계신가요? 친구 때문에 마음 상하셨죠? 대신 사과드려요. 그래도 어쩜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가시나요?”

 그가 현선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전화번호만 휙 던져주고 나가버리자, 정작 말을 한 현선도 당황해하며 날 멀뚱히 쳐다봤다. 클럽에서 술 한 잔 받고 부르스 췄다고 내가 그에게 투정 부릴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내 일행이 나가줬으면 해서 나간 건데 왜 연인같이 굴었는지...... 그는 잘 가고 있다고 했다. 생뚱맞은 그의 반응에 혼자 후끈 달아올랐던 내 감정이 부끄러웠다. 현선이 내 기분을 풀어주느라 애를 썼다.

 “야, 넌 왜 그리 순진하냐? 걔가 뭐 중령이라고? 요즈음은 여기서 군인이 먹히나?  옛날엔 개나 소나 다 의사였는데.... 참나, 너 걔가 맘에 들었냐? 잘 생기긴 했더라. 에이 그래도 아냐. 잊어버려. 내가 보기엔 별 놈 아냐. 더 젊고 멋진 남자 해줄 테니 기다려.”

 현선의  말이 자존심을 잃고 나가는 그의 파리한 뒷목덜미와 함께 메아리로 보였다.

 ‘맞아, 새삼스럽게 뭔 주책스럽고 유치한 마음이야......’

 다음 날은 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감성이 혼란스러웠다. 그에게 문자라도 올까 전화기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난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거의 석 달을 질질 끌다 일주일 전에야 건강검진까지 마치고 어렵게 들어간 안화국 언니의 20억 종신 계약이 ‘불완전판매 건’이 되어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것도 계약자가 설계사 변경을 요구하는 민원까지 제기한 상황이었다.

 화국 언니는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 교포인데, 동대문에서 비교적 큰 양고기 전문점을 하고 있었다. 3년 전, 아는 동생 가게에서 주방일을 보고 있던 그녀가 동생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첫인사를 나누었다. 한글을 잘 모르는 그녀는 전처의 자식 앞으로 자신의 사망보험금이 설정되어 있는 타사의 건강보험증권을 내게 가지고 왔었다. 보장 범위와 기간, 생존 수익자와 상속인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불이익 없이 변경할 수 있도록 알려준 것이 인연이 되었고, 그 일로 처음엔 나를 향해 쌍욕까지 해대던 그녀의 한국 남편과도 ‘형부’,‘처제’라 호칭하며 지내게 되었다. 경계심이 많던 그녀가 한국에서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 할 때까지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마음을 트고 난 후는 사소한 일로도 밤낮없이 호출하고, 술만 먹으면 전화를 해서 몇 시간씩 울며 불며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그날도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을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신고하고 내게 와달라고 수도 없이 전화를 했던 모양인데, 내가 못 받은 게 괘씸죄에 걸렸던 것이다. 클럽에 있던 날이었다. 북경에서 큰 음식점을 해본 경험도 있던 그녀는 생활력이 강했고 배포도 컸다. 하지만 술만 먹으면 180도 변하는 그녀를 매번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계약 파기나 민원은 내가 8년간 유지해온 우수인증 설계사에 치명적인 오점은 물론 프라임 리더스클럽 등급에도 문제가 생길 터였다. 내 개인적 손실뿐만 아니라 지점, 지원단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건 불보 듯 뻔한 일이었다. 그녀의 파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지점장과 지원단장과의 동반 설득도 그녀를 돌려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수 개 월 전부터 내가 형부와 자신을 알코올 중독에 손버릇 나쁜 여자로 쑥덕거렸다면서 앞뒤가 다른 내 인성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자신을 상술로만 대한다는 것이다. 사실 변덕스러운 그녀에게 내 마음이 떠난 건 오래전 일이었다. 그녀에게 내 가식적 마음이 언제까지 통할까 조마조마했었다. 영혼 없이 보험을 판매한 응분의 대가였다. 그녀가 나를 보기 좋게 한방 먹였다.


  “해결했으면 밥이나 먹자.”

 일주일 만에 3킬로그램이 넘게 빠진 날 보더니 현선이 혀를 끌끌 찼다. 현선은 내가 보험세일즈를 한다 했을 때부터 세상 인식까지 들먹이며 하찮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 일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그게 사람 잡는 일이야. 개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지 아니? 다 때려치우고 나랑 같이 일해.”

 8년 동안 내 머릿속엔 매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사이클이 움직이고 있었다. 목표, 수입관리, 고객 발굴, 타깃 선정, 방문, 계약, 유실적, 주간 마감, 20일 최종 마감, 표준 FP, 택배, 무한 서비스......

 인생을 생로병사 주기로 나누어 기간과 목적에 맞게 필요자금을 산출하고, 경제적 정년기까지의 수입과 지출의 흐름을 분석한 후 단기에서 중, 장기 저축과 투자를 계획하여 실천하게 해주는 일, 그게 내 주요 업무였다. 교육만큼이나 사람의 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일이라 확신해서 선택했고 사명감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거기다 스토리텔링식 영업 방법은 내 적성에도 꼭 맞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었고, 육아를 비롯한 내 시간을 일과 병행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또한 큰 장점이었다. 보통 3년, 5년 고비를 못넘긴다 했지만 난 승승장구했고 회사가 요구하는 기대치에 잘 맞춰가고 있었다. 하지만 <화국언니사건>은 좀 쉬고 싶다는 내 마음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긴 격이었다.


 주말 오전, 반신욕조 안에서 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을 읽고 있었다.

 ‘모든 게 자기 책임인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우리를 살게 하기도 하지만 의욕조차 생기지 않게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 타력’이라는 기묘한 힘에서 하나의 활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대목에서 난 통곡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만큼 깊이 병든 내 마음을 나조차도 알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었다.


 그때였다. 뚜뚜르륵,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행동은 저에게 친절했던 당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으며, 무슨 영문인지 그날 이후 당신이 많이 생각납니다.’

 ‘클럽 장교’라 입력해둔 그에게 온 문자였다. 순간 옥죄였던 가슴통증이 액상 진통제를 먹은 듯 말끔히 사라졌다.

 

 우리의 문자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당신이 왜 제 생일을 묻는지 알아요. 무얼 하려는 지도 알아요. 제가 그 분야를 무척 싫어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알려줄게요. 전 1965년 6월 18일 윤달, 뱀띠고 오전 10시에 태어났어요.”

그는 질문보다 더 많은 자료를 주었다. 언제부턴가

 내 생각만으로 결론을 얻지 못하거나 결정한 일도 불안할 남보살을 찾았다. 그녀는 10여 년 전, 시누이의 혼인날을 잡으러 시어머니와 신촌 철학원 골목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만났는데, 절대로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며 크게 놀랄 일이 있을 거라 장담했었다. 화순 사는 시고모가 그 동네에선 나름 출세한 계군 아들이라 중매한 그 남자는 억대 이상의 빚에, 간호사인 시누이와 큰 애정도 없이 결혼을 서둘렀다는 걸 알게 됐고 결국 파혼하게 되었는데, 그날 이후로 난 그녀를 맹신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미신이란 걸 가까이 한건 아버지의 바람기를 잡느라 수시로 무당집을 드나들던 엄마 때문이었다. 늦게 결혼을 하든가, 나이 차이 많은 남자를 만나서 살아야 한 부엌을 지키며 산단다, 고독한 사주라 남편이 있어도 저녁상에 마주 앉기 힘들고, 바깥에 늘.....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한 때는 그런 건 없다 반박한 적도 있었지만, 서른셋에 10년을 넘게 연애한 종현과 헤어지고 고작 한 달 만난 일곱 살 연상의 희준과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될 때, 무당이나 스님들이 말한 내 팔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할 때와 이사를 할 때도 남보살을 찾아가 날을 받았다. 남편이 직장을 옮길 때는 물론 둘째 아이를 유산시킬 때, 육아기를 보내고 나의 새로운 직장을 선택할 때도 모두 남보살에게 물어 결정했다.


 “비상한 두뇌를 가졌네. 하지만 사주에 복이 너무 없어. 재복도, 부모복도, 복도, 자식복도 없다. 옷은 벗겠어. 길어야 2년 남았네. 이번 달에도 운이 들어있다. 계산이 빠르고 의타심이 많아. 아첨도 잘하는 사람이고. 이번 해부터 비운이 시작돼서 가벼운 스트레스로도 건강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겠어. 처와는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 처 때문에 망가지네. 너랑은 어떤 사이냐? 합이 들어서 벌써 불은 붙었는데 너한테 썩 도움 될 인물은 아니다.”

 3주가 지나고 두 번째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마치 여러 번 만난 것처럼 익숙했다. 바로 다음 날 이른 오후에 우린 또 만났다. 그가 하루 휴가를 냈다고 했다. 나는 세미너가 끝나고 팀 미팅을 하던 중에 그의 연락을 받고 점심을 먹다 말고 달려갔다. 우린 보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모텔로 향했다. 모텔방에 들어서자 머리가 하얘졌지만 그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내가 먼저 겉옷을 벗어 소파 한쪽에다 놓았다. 그도 나를 따라 했다. 내가 샤워하고 나오자 그가 들어갔다. 그가 나오기 전에 나는 먼저 침대로 가 누웠다. 그가 나왔다. 난 숨을 죽이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가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같이 잤던 부부처럼 덤덤히 옆으로 와 누웠다. 마치 이불을 따로 덮은 것처럼 신체의 어느 한 곳도 닿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난 생각했다. 그가 잠들 것 같아. 눈을 떴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옆으로 돌아누워 반듯하게 누운 그의 배 위로 손을 얹었다. 그제야 그도 돌아누워 나를 안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마지막 그의 가벼운 탄성까지 없었다면 한 공간에 누가 있었어도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는지 염(殮)을 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장례식 같은 사랑을 치른 후 그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말문을 열었다.


 “울산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같은 번호로 수 십 번씩 전화가 와 있어서 뭔가 하고 걸어봤더니 모두 은행과 사채업자들이었어요. 전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엄청난 빚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어요. 아내가 울부짖으며 말하더군요. 다 저 때문이라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하지만 다른 답이 없었어요. 이후 수년 동안을 한 번도 불평 없이 빚을 갚아왔어요. 2년 전 대전으로 전보를 받았고, 아이들 학교 때문에 혼자 부대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었죠. 어느 날, 몇 달만에 아내가 오겠다고 카드와 차 키를 꺼내놓고 출근하라더군요. 장을 봐서 반찬이라도 해놓고 가려나 하고 반가운 마음에 퇴근해서 갔더니 TV 앞에 난도질된 제 카드가 놓여 있었어요. 차도 바꿔 타고 갔더군요. 발바닥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 어머니 돌아가시고 제사는커녕 아버지께 안부조차 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일주일에 용돈 5만 원으로도 원망 없이 버텼거든요. 하지만 왜 제게 그렇게까지 몹쓸게 하는지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어젯밤엔 또 꼬박 잠을 설쳤어요.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전 여태 열심히 나라 지키는 일만 했고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돼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전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요.”

 ‘지금 이 남자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서 있는 그를 내 옆으로 와서 앉으라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제겐 최고의 남자이십니다. 일흔이 훨씬 넘었지만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뵌 적이 없어요. 다섯 살 때부터 절 데리고 다니며 장군님들 앞에서 취해야 할 예절을 가르치셨어요. 부모님은 모두 다감하고 조용한 성품이셨죠. 아들 하나인 저를 장군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셨는데 제가 그릇이 못된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유일한 버팀목인데, 요즈음은 문득문득 아버지까지 가시면 어쩌나, 그런 날이 올까 두려워요. 제 마음이 다칠까 봐 며느리의 잘못에도 관대했던 아버지가 얼마 전 어머니 제사 때는 저더러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라, 마음 편한 대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도 이제 절 포기하신 거죠”

 난 남보살의 점괘에 또 한 번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복도 없는 남자,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만 물려받은 고독하고 가여운 남자, 쌍꺼풀 없는 그의 눈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와 정면에서 눈이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심장이 아파왔다. 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전 2년 간은 빚을 더 갚아야 합니다. 거기다 아이들이 제 짝을 만날 때까지 부모로서의 책임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제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 희생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동안 출세욕 때문에 가족을 놓지 않은 거였냐고, 비겁한 인간이라 손가락질당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전 여태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습니다. 전역을 하면 퇴직금과 연금으로 아이들과 살라하고 전 그냥 제 갈 길을 갈 생각입니다. 빈털터리로 시작해도 저 하나야 못 먹고살겠어요?”

 그는 쓸쓸히 웃었다. 그의 잘 생긴 이목구비 어디에도 복든 구석이 없어 보였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어머니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온기 있는 여자니까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머리가 복잡하고 무거웠다.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근데 너 자신 있냐? 자기는 능력이 안되니까 만나고 말고는 네가 선택하라는 뜻인데, 그렇게 만날 수 있겠어? 불과 몇 번 보고 그런 말까지 한 걸 보면 널 마음에 들어 하긴 하는 건데, 머리도 좋은 남자다. 내 생각엔 그만 만나는 게 좋을 성싶어.”

 현선은 내 무거움과 복잡함을 해결할 간단명료한 행동지침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보살이 시어머니 사주에 며느리가 없다고 했을 때, 아들이 셋 씩이나 있고 더군다나 이미 나는 그녀의 며느리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때처럼, 그의 사주에 없는 여복을 내가 만들어주고 싶었다. 거기다 그런 얘기를 듣고 안 만나면 그가 얼마나 비참해질까? 그에 대한 연민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처음 그에게 밑반찬 몇 가지와 햇반, 잼, 통조림, 과일, 음료 등 필요할 것 같은 식료품들을 가져갈 때는 어떻게 전해줘야 할까 고민을 했다. 혹시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의외로 쉽게 받았다. 다음부터 난 그를 위해 햄버거도 만들고 김치도 담갔다. 군 식사는 아침에 항상 맛없는 죽을 준다고 했다. 점심은 하루 중 가장 근사한 음식이 나오는데 장군을 비롯한 윗사람들과 동석해서 먹다 보니 불편해서 소화가 잘 안된다고 했다. 저녁은 점심 잔반이 재탕되어 나오는데 그나마 업무 때문에 놓치기 일쑤라 했다. 숙소로 가도 라면이 아니면 대부분 굶는다고 했다. 식탐이 강한 데다 고급장교인 그가 먹는 거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게 마음을 찡하게 했다. 그 후로 나는 장을 볼 때 같은 걸 두 개씩 샀다. 대용량을 구매해서 둘로 나눴다. 꿀, 치즈, 멸치, 햄, 김, 비타민 등 집에 보관만 되어있다시피 한 음식들도 챙겼다. 그가 너무 좋아했다. 내 작은 정성이 크게 전달되었다.

 음식에만 그치지 않았다. 집이 습해서 옷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하면 겨울 코트까지 세탁해서 새 옷처럼 갖다 주었다. 안경이 깨져서 일을 할 수가 없다 하면 부대 근처 안경점을 찾아 눈 검사를 받게 하고 안경을 구매해주었다. 선크림이 필요해, 칫솔이 없어, 샴푸도, 방습제도, 전자모기향도, 쓰레기용 비닐백까지 무엇이 필요한지 메모했다가 꼼꼼히 챙겨주었다. 어떤 것도 그가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가슴이 답답해, 바다가 보고 싶어요. 난 그를 인천으로 데리고 가서 조개구이를 실컷 먹였다. 어제 야간근무는 최악이었어, 찜질방에 가서 몸 좀 풀었으면 좋겠어요. 난 그의 위수지역 내 황토막이 좋다는 찜질방을 찾아서 그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일요일 데이트를 영화보기로 시작한 날, 팝콘을 사지 않는다고 그가 아이처럼 투덜 됐다. 영화가 끝나면 바로 이른 점심을 먹어야 하니 밥맛 떨어지게 하는 팝콘 같은 건 먹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었고, 그는 영화관과 팝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당신이 사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며칠 전 적당히 술에 취한 그가 노래방을 가자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다. 그는 헤어질 때까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또 그랬다. 이번엔 나도 양보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를 부대 근처에 내려주고 차를 서울로 돌렸다. 불유쾌한 기억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체기가 심했던 날 부드러운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는 기어코 삼겹살집으로 가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는 내 앞에서 소주 한 병을 너끈히 비웠었다. 유일한 위로가 담배라길래 제일 비싼 걸로 한 보루 사갔던 날도 자기 입맛이 아니라며 불평했고, 전출되는 보좌관에게 술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했다. 그가 나를 잘못 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현선이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처지를 말했음에도 시작한 내가 문제라고 타박하면서 상습적인 사람일 수 있다고 충고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내게 행복을 주고 시름 또한 잊게 해 줍니다. 당신을 만나게 된 걸 하늘에 감사해요. 그날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가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속에서 올라와요. 절대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변할 수 없는 현실이 절망스러워서 그랬던 거 같아요. 용서해주셔요. 당신이 내 곁에 없는 걸 상상할 수 없어요. 다시는 나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할게요.”

 그에게 ‘용서’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얼마나 어렵게 썼을까 하는 생각에 빨리 마음을 풀었었다. 그러나 그는 며칠에 한번 꼴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내가 만약 당신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면 벌써 장군을 달았을 거예요.”라는 말도 자주 했는데, 그게 내조를 잘하는 여자라는 칭찬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내게 아부하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를 향한 내 머리와 가슴이 꼬여가고 있었다.


 난 두 달 동안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냉장고는 그와 반씩 나눈 음식들이 썩어갔고, 세탁실엔 분리되지 않은 빨래 거리들이 바구니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그에게 몰입하는 동안 삶이 뒤죽박죽 엉켜가고 있었다.


 북카페 <매료>, 내가 볼 땐 거기서 제일 명당인데 그날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주차장 겸 마당 앞으로는 그림 같은 집이 서너 채 있고, 끝집에서 200미터쯤 거리에 자유로가 보였다. 도로 옆으로 철조망 너머엔 강과 하늘이 맞닿아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늘 앉던 자리에 먼저 앉았다. 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서 나갔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 남녀 한 쌍이 들어왔다. 여자가 남자의 두 배가 넘는 덩치여서인지 언뜻 봐서는 어떤 관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가 커피 몇 모금을 마시더니 5분만 눈을 감고 있겠노라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그러라 하고 지난번 왔을 때 반 이상 읽었던 제임스 엘런의 <생각의 지혜>를 빼들었다. 조금 전 들어온 커플은 남자가 여자의 늘어진 턱선을 조몰락거리며 사족을 못쓰고 있었다.

 ‘저 여자는 어디에 복이 든 걸까? 예쁘지도 않은데......’

 자는 건지 아니면 눈만 감고 있는 건지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추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저러고 있을 테지? 그와 같이 있을 때 난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날 준비한 이야기는 결국 하나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피해를 줬다는 게 가슴이 아프네요. 이 놈의 처지, 진절머리 나요. 난 쥐뿔도 없지만 꼴에 장교예요. 여자한테 기대어 기생충처럼 빌어먹는 양아치로 보이기는 죽기보다 싫습니다. 당신이 그리 생각한다면 더 이상 만날 용기가 나지 않을 듯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접을 거고 그로 인한 여파로 자주 보는 게 힘들 거 같다고 했다. 또 여태껏 만나면서 그에게 서운했던 것도 몇 가지 말했다. 예상대로 그는 날 걱정하거나 위로하기보다는 자신의 망가진 자존감을 찾기에 급급해했다. 마지막 미련의 끈을 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잘 끝냈어. 오래 견뎠다. 아무리 좋아도 난 너처럼은 못해.”

 현선은 비아냥거렸다.


 석 달이란 시간은 사무실과 집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다. 우선 사무실 서랍과 개인 사물함을 비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반나절 동안 세 박스의 서류들이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됐다. 언젠간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도 원하는 사람에게 주거나 쓰레기로 버려졌다. 욕심부렸던 책들도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 건 모두 버렸다. 옷도 그랬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것들까지 과감히 정리했다. 집도 사무실도 이민 가는 사람처럼 정리했다.

 나는 무엇이든 잘 버린다. 10년을 사귄 종현을 놓아버릴 때도 친한 친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전날까지 다감했고 결혼은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었다. 내 마음이 수 천 번도 넘게 다툼을 한 결과가 타인의 눈엔 바로 그 시점,‘하루아침’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아웃’을 결정하고 나면 1초 전까지 그것들에 가진 애정이나 미련은 무서우리 만큼 깔끔하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던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군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당신을 힘들지 않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말해주세요. 당신한테 바라는 거 없다고 하면서도 끝없이 이기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반성문 같은 문자가 수시로 날아왔다. 만날 수 있냐고도 했다. 난 답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혹시 하고 기다려봅니다.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가고 싶지만 난 갈 수가 없어요. 오늘은 비까지 추절추절 내리네요. 난 비가 너무 싫어요. 날 너무 쓸쓸하게 만드니까요”

  마음 한쪽이 아팠지만 순간의 기분으로 그를 대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나이에 사랑이란 걸 처음 해봤다 하면 믿겠어요? 사랑이 어떤 건가요? 내 눈앞에 없으면 보고 싶어 눈물이 납니다. 집중해야 할 일에도 당신을 생각하면 놓쳐요.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금세 엄마 잃은 어린 새가 됩니다. 사랑이 이런 건가요?  어떤 책도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워요. 한 줄 한 줄 안에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생각이 깊어집니다. 누구라도 잡고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은 말만 듣고 싶어요. 당신이란 여자가 참 멋지다는 칭찬과 나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말,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 위로를 기대하면서요. 우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란 희망적인 얘기가 듣고싶어요.”

 그는 여전히 아이 같은 꿈만 꾸고 있었다.


 “엄마, 예전에 엄마가 절이나 무당집에 가면 내 점괘 보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 늦게 결혼해야 된다, 선생질해야 된다 말하다가 항상 끝에 어떤 말은 안 했잖아? 그게 뭐였어? 평생 바깥에다 뭐 그랬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갑자기 궁금하네. 뭐야? 이 나이에 못 들을 말도 없잖소?”

 “...... 평생 바깥에다 주인 두고 산댔지.”

 “바깥에? 주인이면 남편인가? 남편을 안에도 두고 밖에도 두고 그런다는 거야?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는 거네? 내가 남자복이 그리 많아? 하하하.”

 “그게 좋은 팔자냐? 철딱서니 없긴.......”

 남보살은 그랬다. 남편복이 없으면 남자복도 없는 거라고. 그래서 사별을 포함해서 초혼복 없는 여자가 재혼해서 좋은 남자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고.


 희준이 문막에서 팔자에도 없는 갈빗집을 낸 건 1년 6개 월 전 일이었다. 주방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직접 관리를 시작하면서 집에 오는 일이 점점 뜸해지더니 이 핑계 저 핑계로 아예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남보살이 몇 년간 떨어져 있어야지 아니면 영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에 희준이 집을 떠나 있는 건 일종의 부적이려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선이가 오크밸리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희준 가게에 들렀는데 ‘사모님’으로 불리는 여자가 있더라고 했다. 부부가 딴 이불을 쓰면 남이라는데 희준과는 문막을 가기 전부터 각 방을 썼던 더한 남이긴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표면상으론 우리 부부가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 게 상황 때문인 걸로 보였지만 내가 늘 원하던 바였는지도 몰랐다. 더구나 우리 부부를 걱정하는 소리가 양가 부모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터라 희준의 외도는 내 마음에 큰 핑곗거리를 주기에 충분했다. 남보살은 한 번씩 내게 묻곤 했다,

"너희 부분 문제없냐?." 난 없다고 늘 똑같이 대답했다. 문제란 내가 문제로 생각해야 문제인 것 아닌가?

" 어떤 문제요?."나는 오히려 되묻곤 했다.


운명에 맞춰 결혼이었으니 과 사랑 문제로 투정을 부리는 건 웃긴 일이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 많고 늦게 만났기 때문에 이혼할 일은 없는 것이다. 딸 셋이 줄줄이 이혼한 집이라는 꼬리표를 엄마한테 선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내가 원래 고독을 품고 태어난 여자니까 희준에게 여자가 생긴 것도 내 운명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매사가 짜증스럽고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보는 사람들마다 무슨 일 있냐고 한 마디씩 했다. 운전을 하다 길을 놓치기 일쑤였다. 일하는 아줌마도 여러 번 바꿨다. 드러눕고만 싶었다. 체념한 줄 알았는데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확인하고 뒤집으면 결론은 하나뿐이란 걸 알기에 가슴만 더 답답했다. 그때 난 또 한 번 내 운명을 생각했다. 바깥에 주인을 두고 사는 건 어떤 걸까?


 “정말 인연이 없는 거예요? 그 사람과는?”

 “평생을 네가 먹여 살리려면 옆에 둬라.”

  남보살이 고함을 쳤다.


  “오늘 저는 당신에게 양심선언을 하려 합니다. 처음 당신은 내 열정을 오히려 두려워했었죠. 그때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시나요? 순전히 나를 위한 열정이며 그닥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사람에게 느끼는 열정은 마른 장작과 같아서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다가도 금방 재가 되어버리더군요. 당신을 만나면서 잠시나마 행복했어요. 하지만 전 역시 속물이고 희생만으로 느껴지는 행복에 만족할 수 없었어요. 그땐 저도 몰랐어요. 제가 바라는 게 뭔지를. 돌아올 땐 매번 마지막을 외치면서도 3개 월이 넘게 당신을 향해 달려갔더군요. 솔직히 첫눈에 반한 당신에게서 내가 원하는 걸 찾길 바랬습니다. 의무와 책임만 넘치는 내 가족과 사회 역할 속에 지칠대로 지친 제게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위로였어요. 누군가의 진심 어린 토닥임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당신 스스로가 아시겠죠? 왜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는지. 상처가 있는 사람이 타인의 상처를 잘 이해하고 치유에 도움을 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당신도 이제 저를 향한 기대와 기다림을 접길 바랍니다.”

 그의 기억 속에 나란 존재를 백지화시키고 싶었다.


  “난 이제야 아주 조금 세상을 배웠어요. 그리고 본질을 잘 알아야겠다는 걸. 잠시 제 기가 살았던 건 착각이라는 걸. 내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벗어나고 싶어 용을 써도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냥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알겠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 덕분에 내 생에 가장 행복하고 애절한 사랑을 해봤습니다. 고마워요. 사랑도 제 분수에 안 맞는 사치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는군요. 부디 건강하세요.”

 그는 여전히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자기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전날 온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12월 마지막 날은 수경의 생일이었다. 1차를 이자카야에서 사케로 얼큰하게 술에 취한 현선이가 클럽에 가지고 제안했다. 그래 가자, 오늘은 위로가 되어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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