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삼 형제 중 막내다. 강남에 살았지만 학원은 고등학교 때 잠시 다녔고 형들은 학원의 도움 없이 대학을 갔다. 모두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엄마표로 공부를 가르친 것도 아니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큰아이가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입시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다. 나때처럼 수능만 잘 보면 대학을 가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 수시 모집과 정시 모집으로 나뉘고 전형은 학생부 종합, 교과 평가, 논술, 면접 등으로 복잡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입시를 아이가 치러야 하기 때문에 막막한 느낌이 든다. 제대로 알고 안내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이 문제로 고민이 생길 때면 시어머니와 자주 통화한다.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복잡하고 더 힘들다던데. 입시 제도는 네가 더 잘 알 테고. 나는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먼저 나서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한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원칙은 있었지.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해주진 않았다. 예를 들어 문제집을 사달라고 해도 바로 사주지 않았다. 그럼 몇 번을 더 생각하고 서점에서 비교도 하고 끝까지 다 풀 수 있다고 하면 사주곤 했다. 원한다고 뭐든 쉽게 해주지 않았다."
간절함을 얘기하시는 것 같다. 간절함이 있어야 스스로 움직인다. 한 게 없다고 하셨지만 자기주도학습이 이뤄지도록 하신 거다. 아이들이 원하기도 전에 앞장서서 학원을 알아보고 문제집을 풀게 하는 건 끌려가는 거니까.
나름 스스로 공부할 때까지 기다렸다. 외국에 나갔다가 중학교 때 귀국했다. 같이 귀국했던 이들은 영어를 유지하기 위해 영어학원, 국어가 부족하니 국어학원, 수학이 중요하니깐 수학학원은 당연하다며 학원세팅을 하기 바빴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기도 정신없을 텐데 학원까지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탁구와 악기 학원을 보냈다. 첫 시험을 치르더니 수학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스스로 말했다. 수업만 잘 들으면 성적이 잘 나왔던 외국학교와는 달리 학원에서 배웠음을 전제로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너무 바쁘고 스킵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몇 군데 학원의 테스트를 본 후 다니기 시작하였다.
시어머니가 알려주신 또 한 가지는 자식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훌륭하게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데로 공부를 못하면 좋은 인성으로써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그것을 의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식 흉을 보는 사람과는 멀리하셨단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힘들 수는 있지만 나쁜 마음을 가지지도 하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사춘기가 극심할 때 아이를 마음속으로 미워했던 적이 있는데 뜨끔했다.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지 글도 잘 쓰신다. 나에게도 가끔 편지를 주시는데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쓰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받을 때마다 뭉클해진다. 세 아들에게도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 마음이나 편지로 전해 졌을 테니까.
입시라는 중압감에 눌려 중요한 걸 놓칠뻔했다. 간절함을 갖게하며 자식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이 전쟁을 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