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해합니다
올해 80세인 친정 아빠는 무척 건강하시다. 채식위주의 식사와 꾸준한 운동, 규칙적인 수면시간과 위생 관리가 철저하셔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성격이 급한 엄마와는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아침, 저녁으로 욕실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씻는 습관, 대충 끼니를 때우기보다 밥과 물만 있더라고 인스턴트 음식은 최대한 먹지 않는 것 등 말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 편이 되어 왜 그렇게 깔끔을 한지, 라면을 먹으면 되는데 왜 밥만 고집하는지 답답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니 엄마가 말했던 아빠의 단점들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깔끔한 성격은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엄마대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빠는 다 아셨으니깐. 틈만 나면 걸레질을 하는 아빠 덕분에 집안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사내대장부가 무슨 걸레질이냐며 엄마의 타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는 집안일 도와주는 남편이 무척 고마울 따름인데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18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는 아들 둘을 낳고 친정집에 얹혀 살 때 건강한 아빠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허리며 다리며 안 아픈 데가 없는 친정엄마와 나는 아빠가 일터에서 언제 돌아오는지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이들이 아빠보다 운동을 더 잘하는 할아버지와 뛰어노는 걸 더 좋아했다. 축구며 탁구며 할아버지와 내기를 하며 이기려고 기를 썼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 엄마, 아빠보다 할아버지이야기가 더 많았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들들의 할아버지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청소년이 된 두 아들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축구를 하러 가자고 한다. 힘차게 공을 차며 손자들과 뛸 수 있는 친정아빠가 고맙다. 열심히 건강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 결국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득 생각나면 방문해서 필라테스를 하면 며칠을 끙끙 앓았다. 이제는 꾸준히 해서 50세까지 내 몸에서 안 쓰는 근육이 없도록 해보련다. 말근육 만들기 돌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