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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13. 2024

화려한 경력 30년 뒤에  

자리한 옹고집

보통 헤어디자이너 하면 세련되고

젊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여기 남성컷 전문점에서 만난 분들은 거의 대부분 40대 이후의 선생님들이었다.

특히 50대, 60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대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경력 30년"


한 분야에서 30년이란 시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을 테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일할 수 있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은 경력 30년 말고도 늘 하는 이야기가 있으신데,


"옛날에 나는 "


이라며 꺼내놓는 그 시절 화려한 경력이다.

사업을 하신 이야기, 연예인들을 상대로 일했던 이야기, 서울에서 잘 나가던 이야기 등등 말이다.


그런데 가끔 30년 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때로는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 옹고집"(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 또는 그런 사람.)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신 건 아니다.

나와 함께 일하시는 점장님도 60이 넘은 연세에 여전히 세련되고 누가 봐도 고수의 느낌이 나는 분이지만, 지금도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은 받아들이시고 고객들의 원하는 니즈를 잘 살펴서 서비스를 해드린다.


그렇지만 가끔 옹고집 선생님들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가게는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커트를 무료로 해드린다. 그래서 어르신들 고객님들이 종종 오시는데, 한 번은 80대 할머님이 가게에 찾아오셨다.


"동네 노인정에서 여기 가면 머리를 무료로 잘라준다고 해서 왔어. 나는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냥 이 스타일에서 조금만 다듬어 주기만 했으면 좋겠어.

너무 짧지 않게 말이야."


그때 그 고집이 센 선생님이 자신의 경대로 할머님을 안내했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 엄마들은 머리 길면 관리하기도 힘들고, 길면 귀찮기만 하지. 그냥 짧게 자르시는 게 깔끔하고 이뻐"


" 아니야 나는 짧은 머리는 싫어

   그냥 조금만 다듬어줘"


" 나이 먹고 늙어서 머리 길면 지저분해 보이고 안 이뻐 그냥 시원하게 잘라드릴게!"


선생님은 할머니의 말씀을 무시한 체 조금만 다듬어 달라는 머리를 짧은 쇼트커트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봐도 속상한데 할머니 본인은 얼마나 속이상하실까....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예쁘게 늙고 싶은 거 아닌가?

우리 눈에야 거추장 스러 보인다 쳐도 할머니는 그게 아니실 텐데...

아니, 할머니가 싫다고 하시는데 왜 본인의 생각을 우겨서 머리를 다 잘라 버렸을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상하실 할머니를 나는 위로한답시고


"어머니~ 머리 시원해 보이고 더 젊어 보이세요!

어머니 얼굴이 고우셔서 짧은 머리도 너무 잘 어울리세요~~! “


하고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서 선생님이 또 한마디 거든다.


"나는 우리 엄마 머리도 짧게 다 잘라드려요. 엄마들이 관리도 못하면서 길어서 다니면 그거보다 보기 싫은 게 없어."


정말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고집을 내세우다니. 대단하다.


속이 상하신 할머니는 마지못해 고맙다 한마디 남기고 가게를 나가셨다.

무료로 해준다더니 대충 막 해서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하실 것만 같아서 나는 너무 할머니가 신경 쓰였다. 그런 취지로 무료로 해드리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나는 선생님께 물어봤다.


"할머님이 머리 조금만 다듬고 싶어 하셨는데 왜 다 잘라드리셨어요?

할머니 속상하시겠어요."


선생님은 여전히 내게 아까와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몇 달 뒤, 그 선생님이 그만두시고 안 계실 때,

할머님이 오셨다.

속상해서 다시는 안 오실 줄 알았던 할머님이 오셨을 때 나는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그날 할머니가 원하시는 데로 머리를 조금만 다듬어 드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께 대신 사과를 드렸다.

그날 선생님은 어머님 머리를 편하게 관리하실 수 있도록 잘해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니 오해는 하지 말아 달라고.


미용사는 자기만의 신념과 철학은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고객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중심을 잡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고객이 원하지 않는 일을 끝까지 내 고집대로 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된 경력에서 나오는 경험이라고 해도 내 가무조건 옳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우리 점장님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일을 하게 된다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나의 신념과 철학을 지키면서,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미용인이 될 수 있도록 10년 뒤 2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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