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나고 몇 달이 흘렀다.
엄마는 다시 엄마의 삶으로 돌아갔다.
늘 그랬듯 여기저기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동시에 또다시 두려웠다.
엄마의 고단한 삶이 언제쯤 끝날까.
엄마는 새아빠랑 사는 동안 줄곧 파지와 고물을
줍는 고된 일을 했다.
새아빠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했는데 그때 엄마가 찾아간 곳은 파출부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다양한 일을 했다.
나를 키우며 했던 식당일부터, 어느 집의 가사도우미,
환자를 돌보는 일, 건물 청소까지.
배움도 국민학교 3학년이 전부이고
글씨만 겨우 읽고 쓸 줄 아는 엄마가
마땅히 다닐 만한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엄마 곁엔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만나 일은 하지 않고 술과 노름
낚시나 하러 다니는 그 남자는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나는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그 삶을 택했다.
그렇다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엄마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가 원주로 가자고 했다.
엄마는 나의 만류에도 기어이 아무도 없는 원주로 떠났고
그곳 파출부 사무실을 통해 엄마는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원주로 간 지 얼마 뒤 그 남자는 다른 여자 문제로
엄마와 헤어졌고 엄마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엄마의 삶엔 기쁨이란 게 없었다.
늘 가난해야 했고 작고 여린 몸으로 늘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출산을 다섯 번이나 하고도
몸조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엄마의 몸은
늘 피로와 통증에 시달렸다.
나이 예순이 되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몸으로 지금까지의 삶의 풍파를 견디며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이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해도 자기 이름으로 된 방 한 칸 없는 신세가 엄마의 비참함을 더했다.
그 모든 감정이 엄마가 늘 내게 쏟아내던 말이었다.
“내가 누구한테 말하냐. 너밖에 더 있냐.”
그건 엄마의 하소연이자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유일한 통로였다.
원주에 혼자 남게 된 엄마는 그곳에서도
삶을 놓지 않고 억척같이 버텼다.
방 한 칸, 화장실 하나, 싱크대 한 칸 달린 4층에
자리한 원룸. 엘리베이터 없는 원룸을 얻어 아픈 무릎으로 매일 같이 오르내리며 아파트 청소 일을 했다.
고된 일을 마치면 그곳에서 친해진 친구와 서로의 삶을 나누며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엄마는 늘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속의 엄마는
어느 날은 자신의 인생을,
어느 날은 같이 일하는 누군가의 흉을,
어느 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신경질을 쏟아냈다.
외로움이 컸던 엄마는 누군가와 마음을 열고 친해지면
본인의 힘든 과거 일이나 현재 처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결국 엄마에게 상처로 남았다.
“엄마, 절대로 금방 친해졌다고 해서 엄마 이야기를 하지 마.
엄마가 이렇게 살았다. 저렇게 살았다. 그런 얘기하면 엄마 앞에서는 ‘너 힘들었겠구나’ 하겠지만 결국엔 다 엄마 약점이야. 사람들이 전부 엄마를 가엾게 생각하지 않아.
뒤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어.”
“얘기하다 보면 나오는데 어떻게...”
“엄마는 그 나이에 남편도 집도 돈도 없고 몸은 병들었잖아.
사람들이 다 가엾게 생각할 것 같아?
아니야. 저 여자는 이 나이 되도록 왜 저렇게 사냐, 그렇게 생각해. 엄마 성격은 특히, 좋다 싫다 앞에서 다 티 내잖아.
그런 성격 나나 받아주지 사람들은 다 저 아줌마 성격도 더럽네 할걸? 그래서 이번에도 그 아줌마랑 싸운 거잖아.
엄마, 이제는 누가 엄마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단단 해졌을 때 그때 말해. 엄마가 다 이야기해 놓고 그 사람이 무시한다고 이렇게 싸우고 일자리까지 잃고, 이게 뭐야. 나도 진짜 지쳐.”
“나쁜 년, 너 잘났다 이년아.
그래서 네가 나한테 뭐 해준 거 있어?”
결국 통화는 그렇게 끝나곤 했다.
나는 속상했다.
엄마가 좀 더 강해지길 바랐다.
세상에 스스로 초라하게 무너지지 않길 바랐다.
나 역시 무너질 때 하나님을 알게 되어 치유되고 일어섰던 것처럼 엄마도 그러길 진심으로 바랐다.
술만 마시고 고된 일만 하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무거운 짐이 될 것만 같아
종종 두렵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