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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Nov 19. 2024

40살 상처를 직면하고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40살 상처를 직면하고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자라온 환경에 비해 썩 괜찮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하며 더 더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가 돌이 될 무렵쯤 우리는 그곳에서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나는 참 강하다 스스로를 생각했는데 이사하고 아이가 돌이 지나고 큰애가 2학년이 되면서 많이 지쳐갔다.



여러 가지 강박들이 생기고 이 행복한 시간이 꿈이면 어떡하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제 행복한데 불행이 또 닥치면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온갖 불안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강박과 불안들과 육아 스트레스는 나를 점점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늘 가시를 세우는 짜증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남편에게 네가 이런 여자일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아이들을 내가 갖고 있는 지혜로 잘못된 육아 방식으로 사랑이라 생각하며 나는 지혜롭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대로 키웠고



남편에게는 처음과 다르게 냉랭했다. 한 번 이혼한 상처를 약점 삼아 또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내게 잘하라는 태도를 앞세워 우리 집 남자 셋을 모두 힘들게 했다.



사실 남편은 내 과거를 모두 알았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지 않았는데. 나는 남편의 약점을 늘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소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더 낯선 곳에서 더 더 깊이 동굴 속에 갇혀 살기 시작했다.



둘째가 4살 28개월쯤? 내게 단 한 시간이라도 자유를 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았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내게 꿀 같은 휴식을 주었지만 잔뜩 웅크려진 나는 잘 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다니다가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이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 또래 보이는 밝은 표정의 엄마가 내게 싱글벙글하며 다가와 민재 엄마시죠?? 같은 반 한결이 엄마예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나를 아는 척하는 그 엄마가 너무 불편했다.

누구랑 말도 섞기 싫은데 왜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나 부담스러웠다.



다음 날에도 다음 날에도 자꾸만 마주치는 그 엄마가 불편했다. 아이들끼리 친한 지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하원차에서 같이 내리고 같은 단지지만 다른 동에 살아서 헤어질 때마다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때문에 우리 둘째도 동굴에 갇혀 살게 되면 어쩌나 싶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 내가 먼저 그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원하고 뭐 하세요?

-     아파트 단지 도서관 가요~

그럼 저희도 같이 가요~~



그날 우리는 아파트 단지 작은 도서관에 함께 갔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서로 좋아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원 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와 다른 밝은 성격의 한결 엄마가 신기했다.

나와는 다르게 상처 없이 잘 자랐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는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다 주어지는데 한결 엄마도 마찬가지로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더 친밀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점점 아이들 없는 시간에 차도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서로의 삶을 경청하고 나누면서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점점 내 상처를 보게 됐다.



내가 강해서도 아니고 내가 썩 괜찮아서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그게 당연한 줄 받아들이며 살았던 삶들이 그저 익숙했고 상처가 생길 때마다 꼭꼭 숨겨 두고 외면하면서 괜찮은 척 살았고 그것이 끝내 곪고 골아 나를 아프게 하고 내 주변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 가면서 나를 직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강해 나는 잘 살았어 나는 기특해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아픔을 외면하고 내 몸에 잔뜩 박힌 가시들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찔러대는 내 모습을 보게 됐을 때 내가 참 안쓰러웠고 가여웠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직면하는 나의 아픔들을 마주하고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가며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또 시원함이 주는 그런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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