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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Nov 19. 2024

2014년 내가 낳은 둘째 아들


2014년 내가 낳은 둘째 아들



우리는 간단히 웨딩 촬영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나는 초대할 가족도 친구도 없어 결혼식은 부담스러웠고 남편도 재혼을 떠들썩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집은 남편이 전처와 마련한 신혼집에서 그냥 시작했다.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집을 정리하고 새로 이사하려 했으나 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그냥 괜찮았다. 어차피 나도 돈도 없고 내세울 거 하나도 없으면서 화려한 결혼식은 꿈도 안 꿨다.



그리고 전처와의 신혼집이라 마음이 조금은 불편했으나 그 불편한 마음보다는 설레는 기쁨이 더 많았기에 불편보다는 기대가 더 많았다.



내가 일하던 미용실들은 전부 다 아파트단지를 끼고 있는 장소였고 나는 늘 그런 아파트를 보면서 누가 살고 있을까 저런 집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평생 살아볼 수 있을까 하고 그저 꿈만 꿀 수 있는 집이었다.



당장에 몇 천만 원짜리 전세 빌라에만 살아도 내 인생은 로또였기에 아파트는 그저 평생에 살아볼 수 있을까싶은 집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집이 내 꿈을 이뤄주는 로또보다 더한 아파트였다!



세상에나!!



24평에 방이 세 개고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 엄청나게 크고 따뜻한 그 집은 그전에 누구와의 미래를 꿈꾸던 집이었는지와 상관없이 나를 더없이 설레게 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해서 지금은 몇 번의 이사를 했고 집은 점점 넓혀 30평대 신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날 때 화장실을 쓰고 주방을 사용할 때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너무 신기할 정도이니 그때엔 내 마음이 더 더 더 주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어릴 때 초경을 시작하고 쭉 생리가 불규칙했다.

산부인과를 그때부터 결혼 전까지 수없이 다녔어도 돌아오는 답은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고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갖고 싶을 때 그때 열심히 병원을 다니면 된다고 했다.



아이를 갖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 나를 늘 불안하게 했는데 내가 낳아줄 수 없어도 우리 남편은 이미 아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내가 낳지 않은 5살짜리 남자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초보 엄마에게 너무나 힘들었다. 이미 일 년 동안 꾸준히 함께 만나고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예쁜 이모에서 (아들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쁜 이모라고 불렀다.) 엄마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시어머니의 갖은 참견과 잔소리 아이 앞에서 내 권위를 무너트리는 행동들과 핀잔들 남편의 무조건적인 아이 편을 드는 행동들은 나를 더없이 멘붕에 빠지게 했다.



그래도 나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막상 결혼을 하니 우리를 닮은 내 아이가 갖고 싶었고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있어야 시어머니의 저 시집살이도 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는 더 열심히 임신을 시도하려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찾아다닌 일 년 동안 임신을 실패하고 좌절한 나는 다시 더 힘을 내 난임 전문 센터를 찾아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내게 들려온 검사 결과에 더 좌절했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궁벽이 전체 단단해지고 두꺼워지는 자궁 선근증이라는 질환이 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와 남편에게 임신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이가 안전하게 자궁에 착상을 해도 유지도 힘들고 끝까지 출산할 확률도 낮다고 무서운 이야기 (산모 중에 어떤 분은 임신 7개월 자궁파열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니 딱 세 번만 시도하고 안되면 포기하고 자궁적출 시술을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자궁선근증은 종양처럼 단독으로 시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궁전체가 혹이 되어 가는 거라 자궁 전체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또 다른 합병증이 많아 적출을 권유받았다.



다행히 지금은 아이를 건강히 출산하고 몇 년 전 적출 수술을 했다.



남편 앞에서는 자신 있게 3번만 시도하고 안되면 포기하자 했지만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에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뭐 이리 평범한 게 하나도 없을까?

정말 너무나 속상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시도를 했고 첫 번째 시술을 했으나 부작용이 와서 일 년을 쉬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술 후 나는 임신에 성공했고 10개월 무사히 품고 나와 남편의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임신해 있는 동안에도 그냥 쉽게 넘어갈 리 없는 내 팔자는 임신 소양증이라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10달 내내 가려운 고통 속에 울며 불며 잠도 못 자며 버티고 버텨 아들을 만났다.



감격과 기쁨 속에 둘째를 안고 있는 병원에 큰아들이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큰아들을 보니 눈물부터 났다.



너도 이렇게 힘들게 세상에 나온 귀한 아이였구나.



너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가 미안하구나.



앞으로 엄마가 더 잘할게



그렇게 우리는 완전한 가족이 되기를 꿈꾸며 둘째 아들을 맞이했고 둘째가 태어남으로 또 다른 우리의 인생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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