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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y 31. 2024

5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5월 20일 월요일


대형 초식동물 없는 숲은 바이올린 없는 교향악단이다.

_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숲에서 우주를 보다>, 60p


이 부분을 읽다가 2008년 겨울 어떤 아침 출근길이 떠올랐어요. 대표이사 보고가 있는 날이라 5시에 일어나서 머리도 못 말리고 사과 한 쪽 깨물어 먹으며 공동현관을 나오는 순간. 사슴을 만났어요. 북한산 자락에 건설한 은평뉴타운에 그해 추석에 이사오고 엄마가 사슴을 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안 믿었어요. 먹을 게 없어진 사슴이 새벽에 내려왔다가 승진에 목마른 고대리를 만나 거죠. 먹던 사과는 떨어뜨리고 마을버스를 타러 뛰어갔어요. 그 사과 네가 먹었니?

이제 그 산에 사슴은 없어요. 멧돼지만 가끔 다녀요. 바이올린이 없는 교향악단의 연주만 들은 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제 그 소리가 더 어색할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는 악기를 하나씩 잃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인간 독주회 하는 거예요?

05월 21일 화요일


사람들은 다들 이 세상에 없는 데를 가고 싶어해.

_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950쪽


진절머리 나는 내용도 있었지만 그만큼 내가 어디 살고 있지, 현실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어요. 비유와 묘사에 밑줄을 잔뜩 그었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세상만사를 다 돈으로 보는 사람들, 그들의 전시하는 삶의 이미지가 귀신처럼 저를 따라다녀요. 근데 나는 거기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큰 소리로 욕할 게재인가? 몇 년 후에 다시 읽고 싶어요. 그때는 누구에게 이입하여 읽을 것인가?

05월 22일 수요일


신뢰할 만한 통계가 있는데 우리의 실생활이 그렇지 않으니까 못 믿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삶의 경험을 상상하지 못하는 거죠. 90%의 믹스커피는 누가 먹어요? (..) 90%의 삶을 우리는 모른다는 거죠.

_ 정희진, <정희진의 공부 23년 1월호, 지금 무슨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까> 중


국내 수입되는 커피콩의 90%는 믹스커피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다년간 많은 기관 통계 공통이라고.) 도대체 그 믹스커피 누가 다 먹나, 통계가 잘못 된 거 아니냐, 나도 내 친구도 다 아메리카노 먹는데. 정희진 님이 강의에 이 통계 자료를 보여 줄 때마다 듣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믹스커피는 각종 노동의 현장에서, 병원, 미용실, 웬만한 자영업자의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통계를 안 믿었어요. 그러다 90%의 삶을 우리는 모른다는 말이 따갑게 느껴졌어요.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바보 멍청구리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자주 가는 카페(무려 엔트러사이트)에서 드립백을 사다가 시간을 들여 내려 마시고 있었는데 이런 행동이 허위의식 같아서, 같잖아서 다 내린 커피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네요.

05월 23일 목요일


일기인의 고민은 배수아의 어느 소설 제목과도 같았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_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195쪽


오늘 하루는 무엇이 달랐나요?

1. 1년 만에 만난 친한 친구와 압축파일을 풀듯 1년 묶은 수다를 떨고 나니 마음이 차오르면서도 희한하게 허전한 기분을 느꼈어요.

2. 어제까지 앉았다 기는 게 안되던 9개월 된 딸은 오늘 아침에는 그걸 어제도 했던 것처럼 하더군요.

3. 며칠 전 아빠와 마찰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네요. 엄마가 되고 나서 그래요. 이렇게 정서적으로 조금씩 독립하게 되는 걸까요?

쓰면서 인지하게 되네요. 며칠 전부터 아빠에게는 페이스타임(아기를 보여드리는)을 하지 않고 있어요. 또 언젠가 일기에 오늘 다시 아빠에게 페탐을 했다고 쓰게 되겠죠?

05월 24일 금요일


숙제는 계속했지만, 펄떡펄떡한 속내 같은 건 안 꺼내게 된 것이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겨우 용기를 내서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일기장에 더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_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198쪽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마음,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하는 마음.

이 두 마음이 누구든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야 겨우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는 펄떡펄떡한 속내를 말하고, 쓸 수 있겠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를 궁금해하나, 누가 나를 궁금해하나 생각해 봤어요. 그 범위가 무척 좁네요.

또, 내가 나를 궁금해하는 마음도 중요하겠다 싶어요. 그래야 내 속내를 스스로 잘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밀린 일기장을 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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